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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
편집부
입력 2022-05-13 18:32 수정 최종수정 2022-05-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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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아우르는 음악 3 –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책 속의 글자도 쉬어가는 곳이 있고, 자동차가 달리는 고속도로에도 쉬어가는 곳이 있고, 해님도 달님도 쉬어가는 곳이 있고 바람도 쉬어가는 곳이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도 지금 쉬어가는 중이다.”

일상에 쉼표가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쉬어가는 곳을 만들어주는 음악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베네수엘라 빈민가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경제학자이자 음악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창단한 음악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베네수엘라 아동 및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국민적 시스템을 위한 국가재단’이라는 긴 정식명칭 대신 엘 시스테마(el Sistema)로 잘 알려져 현재는 한국, 미국, 캐나다, 영국, 포르투칼, 필리핀, 페루, 독일까지 전 세계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신화이자 모델로 자리잡았다. 2021년 1만2천여 명의 청소년, 성인들이 모여 ‘세계 최대 오케스트라’라는 기네스북에 도전하며 다시 한번 전 세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엘 시스테마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엘 시스테마는 대략 40년을 거슬러 1975년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된다. 경제학자이자 이상주의였던 호세는 11명의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총 대신 악기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소리가 2015년에는 베네수엘라 전역에 400여 개의 센터와 85만 명의 아동이 함께하는 거대한 울림이 되었다.

현재는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프로그램이 더욱 체계화되어 단계적 레파토리 체계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를 배워나간다. 유아기에는 노래로 접하기 시작해 아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3개월마다 레퍼토리를 하나씩 완성해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참여 청소년들은 자연스레 빈민가 거리를 방황할 시간에 안전한 센터에서 하루에 4시간씩 연습에 참여하게 된다. 특히 오케스트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아이들은 지역의 대표 청소년 교향악단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기도 하니, 자연스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전문 음악인으로서 진로를 개척하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뽑힌 청소년들은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인 BBC 프롬스 외에도 스위스의 루체른 음악제,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엘 시스테마의 최정상 청소년 교향악단격인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에서 연주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 밖에 엘 시스테마의 교육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은 프로그램의 원리 및 교육 방법을 잘 알기 때문에 교사가 되어 다시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하고, 이곳에서 사용하는 악기의 수리와 제작을 담당하는 아카데미에서 일하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은 모두의 예상을 훌쩍 넘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첫 번째 대표주자로 LA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작은 도시 바르키시메토 출신으로 음악가인 부모님 밑에서 성장해 엘 시스테마에서 본격적으로 지휘를 수학, 18세에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Youth Orchestra of Los Angles를 창단, 현재는 미국 내 많은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그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에딕손 루이스도 엘 시스테마를 통해 전문 연주자로 성장해 최연소 베를린 필하모닉 자리를 꿰찬 엘 시스테마의 성공 신화 주인공 중 한 명이다. 그는 엘 시스테마가 추구하는 목표 그대로 빈민가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거칠게 성장하던 중 엘 시스테마를 통해 음악을 접하고 전문 음악가의 진로까지 개척할 수 있었던 대표 사례로, 처음에는 주위의 권유로 엘 시스테마에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에 즐거움을 느낀 그는 비올라를 거쳐 콘트라베이스로 전공을 바꾸고 15세에 미국의 폴리스 국제 콩쿠르 1위, 17세에 최연소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으로 멋지게 성장했다.

이 외에도 플루티스트 페드로 에우스타체,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인 에드워드 풀가르, 오보이스트 겸 지휘자인 나탈리아 루이스-바사 등이 엘 시스테마의 수혜자로 해외 활동을 활발히 하고있는 음악인들로 손꼽힌다.
엘 시스테마를 거쳐간 많은 이들은 공통된 목소리로 “오케스트라 과정을 통해 ‘가족’의 소속감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함께 음악을 만들어간 시간은 안전한 환경을 제공받는 것 이상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성장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엘 시스테마는 정서적 안정부터 진로 문제까지 모두 안전한 환경과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누구나 해결 가능한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오케스트라’는 여러 악기가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정체성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엘 시스테마는 그들이 음악을 통해 사회에서 협동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법, 그리고 책임감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정신적인 ‘쉼표’를 만들어 주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청소년기에 악기를 배우는 대부분은 입시 제도를 위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음악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보다 합격을 위한 압박감 속에 있는 경우가 많다. 불합격의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음악을 즐길 여유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누구도 쉬이 답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엘 시스테마는 이런 음악교육에도 반문을 던져준다. 음악이 청소년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있는가? 함께 연주하고 완성해나가는 울림을 통해 음악을 즐겁게 경험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가? 진정한 음악교육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음악교육 역시 진정한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할 때가 왔다. 47년의 명맥을 이어오며 질적, 양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엘 시스테마에 참여한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우리의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의 현주소는 어디인지, 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 진지하게 고찰할 차례이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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