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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편집부
입력 2022-05-07 16:14 수정 최종수정 2022-05-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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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교향곡 이전의 전원 교향곡>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있지만 자연에 대한 경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알면 알수록 자연에 대해 경탄하게 되지요. 문학과 미술 등 많은 분야에서 경이로운 자연을 표현해왔고 이는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을 그려낸 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곡이 바로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이 작곡한 교향곡 제 6번 전원(Sinfonia Pastorale)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1808년 초연된 <전원 교향곡>은 총 5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악장마다 베토벤이 직접 붙인 제목들이 붙어 있지요. 널리 알려진 그 제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 즐거운 감정이 일어남 
2악장: 시냇가에서의 풍경
3악장: 마을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 뇌우, 폭풍 
5악장: 목동의 노래. 폭풍이 지나간 후의 기쁘고 감사한 감정.

베토벤은 작품의 1악장 악보에 “(음악적)회화 보다는 감정의 표현(Mehr Ausdruck der Empfindung als Malerei)”이라고 적어놓으며 이 작품이 자연을 그저 단순히 묘사하기만 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 자신이 회화적인 음악을 비웃었던 것도 이러한 메모 작성의 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H. Berlioz, 1803-1869)가 <전원 교향곡>을 가리켜 “이 놀라운 풍경화는 푸생이 구성하고 미켈란젤로가 그려내기라도 한 것 같다.”고 감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묘사 자체도 매우 뛰어나지요. 2악장 끝에 등장하는 유명한 새소리의 묘사나 4악장에서의 폭풍 장면은 이러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연에 대한 묘사의 측면에서, <전원 교향곡>의 모델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스승이기도 했던 하이든(F. J. Haydn, 1732-1809)의 오라토리오<천지창조/Die Schöpfung>와 <사계/Die Jahreszeiten>, 그리고, 유스틴 하인리히 크네히트(J. H. Knecht, 1752-1817)의 교향곡<자연의 음악적 초상 혹은 대교향곡/Le Portrait musical de Nature ou Grande Symphonie>입니다. 
작곡가 유스틴 하인리히 크네히트 (출처: wikidata.org)

하이든과는 달리 크네히트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곡가가 아닙니다. 독일 남부 출신인 그는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 그리고 음악 이론가였으며 또한 교사이자 교회의 음악감독이기도 했습니다. 제목부터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크네히트의 교향곡 <자연의 음악적 초상>은 베토벤이 아직 고향인 본을 떠나 빈으로 오기 전인 178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전원 교향곡>이 작곡되기 20여년 전이었지요. <자연의 음악적 초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작품에서도 <전원 교향곡>에서 들을 수 있는 새소리와 시냇물, 그리고 폭풍 등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전원 교향곡>과 관련하여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바로 작품의 구성이 아닐까 합니다.

교향곡 <자연의 음악적 초상>은 <전원 교향곡>처럼 5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베토벤이 훗날 그랬던 것처럼 크네히트도 각 악장마다 제목을 붙였지요. 짤막한 베토벤의 제목들과는 달리, 크네히트의 제목들은 상당히 긴 편인데, 그 제목들과 그 흐름은 <전원 교향곡>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해가 빛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며, 새가 지저귀는 아름다운 곳에서(1악장), 서서히 폭풍이 다가오고(2악장), 강력한 폭풍이 몰아치다가(3악장) 서서히 잠잠해진 후(4악장), 자연은 창조주에게 달콤하고 평안한 노래로 감사한다(5악장).’ 또, 폭풍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묘사한 2악장부터 폭풍이 끝나고 창조주에게 자연이 부르는 노래가 들어있는 5악장에 이르기까지 악장 사이에 쉼 없이 계속해서 음악이 이어지는 것도 <전원 교향곡>의 3악장에서 5악장까지의 흐름과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원 교향곡>보다 20년 정도 앞서 작곡된 이 작품을 보며 가장 궁금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베토벤은 크네히트의 이 작품을 알고 있었을까?’ 베토벤이 이에 대해 언급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베토벤과 이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학자 그로브(G. Grove, 1820-1900)는 그의 유명한 저서 <베토벤과 그의 9개의 교향곡들>에서 베토벤의 초기 작품인 세 개의 <선제후 소나타>와 크네히트의 교향곡이 1784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이 두 작품의 광고가 같은 페이지에 실렸다고 적었습니다. 그로브는 아마도 어린 베토벤이 크네히트의 교향곡의 각 악장 제목들을 이를 통해 알았을 것이라 추측했지요. 베토벤 전기를 쓴 솔로몬(M. Solomon, 1930-2020)도 이 견해를 따랐습니다. 물론 이와는 결이 다른 견해도 있는데 음악학자 게크(M. Geck, 1936-2019)는 각 악장에 붙인 베토벤의 제목들과 고전적•낭만적 문학과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베토벤이 <전원 교향곡>을 작곡할 때 크네히트의 작품을 알고 있었는지는 상관이 없다는 견해를 비추었습니다.

‘전원 교향곡 이전의 전원 교향곡’이라 할 수 있는 크네히트의 <자연의 음악적 초상>과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비교하며 감상해 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그 흥미로운 비교에서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가 하는 것이지요. 이 위대한 작품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 탄생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준 인물들과 작품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왠지 모를 겸허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게 영감을 주고 받으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음악의 역사의 흐름이 앞으로도 풍성하게 이어져 가기를 기대합니다. 

추천영상: 크네히트의 교향곡 <자연의 음악적 초상> 전곡입니다. 25분 정도 연주되는 이 작품을 감상하며,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과의 유사성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o6Q-6FAsL0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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