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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편집부
입력 2021-12-17 10:12 수정 최종수정 2021-12-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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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2월이 되면 어김 없이 들려오는 머라이어 캐리의 목소리, 그 중에서도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이하 ‘All I want’)는 아기 예수 대신 크리스마스의 심볼이 된 듯하다. 발매한 지 25년이 훌쩍 넘게 흐르는 동안 이 곡은 유수의 문화콘텐츠들과 함께 언급되어 왔다. 2003년 관객들을 만난 후 역시 이 시즌에 가장 보고 싶은 영화로 손꼽히는 ‘러브 액츄얼리’(감독 리차드 커티스)가 대표적이다. 머라이어 캐리와 브라질 출신의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월터 아파나시프가 함께 작곡한 ‘All I Want’를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열 살을 갓 넘긴 소녀의 앳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수많은 에피소드와 인물들이 얽혀 있는 이 영화에서 ‘샘’은 최근에 엄마를 잃은 소년이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게 그 슬픔을 이겨내고 있지만 학교 친구 조애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서툴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 드럼을 연주하며 그녀의 눈에 띄고자 하지만 인기 많은 조애나에게 고백을 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영화는 샘을 통해 조애나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면서도 정작 그녀는 베일 속에 감춰 두었다가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공개한다. 관객 모두를 기립하게 만드는 공연이 끝나면 무대 커튼이 열리면서 또 다른 주인공인 영국수상의 진한 키스신이 이어진다. 

대다수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밝혀지고 갈등이 풀어지는 절정부를 수놓기에 ‘All I want’ 선곡은 신선하지는 않을지언정 적확한 것이었다. 여기서 코러스와 밴드, 댄서를 대동하고 화려하게 등장해 능숙한 노래 실력을 뽐낸 이는 1992년생의 올리비아 올슨이다. 활발하지는 않으나 최근까지도 배우 및 작가로 활동을 간간이 이어오고 있다. 

‘러브 액츄얼리’에는 ‘All I Want’ 외에도 크리스마스 성가는 물론이고 ‘All You Need is Love’, ‘Christmas is All Around’ 등 귀에 익숙한 명곡들이 계속 흘러나온다. 그 여파로 ‘물랑루즈’(감독 바즈 루어만, 2001), ‘위대한 게츠비’(감독 바즈 루어만, 2013) 등의 음악을 맡았던 작곡가, 크레이그 암스트롱의 스코어가 묻힌 것이 다소 아쉽지만 영화의 유전자에 더할 나위 없는 선곡이었음은 분명하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부디 당신에게 318분의 러닝타임이 행복할 수 있기를 ‘해피 아워’


25분짜리 드라마 에피소드 한 편을 보는데도 스마트폰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한 관객들에게 5시간 18분짜리 영화는 고문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당장 지난 달 개봉한 ‘이터널스’(클로이 자오, 2021)의 흥행성적(관객수 약 300만명)은 엔터테이닝 무비의 최고봉에 있는 마블 코믹스 시리즈조차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속화시킨 OTT 콘텐츠의 붐 앞에서 무기력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시국에 액션도 천재지변도 없는 318분짜리 영화를 개봉시키다니, 이 영화의 관계자들은 동시대의 문화적 기류를 거스르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해피 아워’(하마구치 류스케, 2021)는 의외로 보다 느리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세상에 꽤 많을 거라는 전제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아주 천천히 주인공들의 일상과 감정에 스며들면서 그들의 결정에 동의하게 되는 경험을 하고픈 사람들, 영웅서사와 자극적인 표현들에 지친 사람들, 몇 시간이라도 핸드폰을 손 멀리 치워놓고 싶은 사람들, 대개는 남다른 취향을 가진 그들이 이 영화를 볼 준비가 된 관객들이다. 그 기저에 뭐가 있든 특별한 것만은 사실이다. 

‘아카리’(다나카 사치에), ‘사쿠라코’(기쿠치 하즈키), ‘후미’(미하라 마이코), ‘준’(가와무라 리라)은 성격도 직업도 다르지만 자주 모이고 여행도 함께 다니는 친한 친구들이다. 아카리는 이혼하고 혼자 사는 요양병원 간호사이며, 준은 외도를 해 이혼 소송 중이고, 후미와 사쿠라코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부에는 꽤 묵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네 주인공이 모였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각자가 처한 상황과 해결점에 대해 토론과 반목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덧 천천히 진행되던 개별 사건들이 결말에 도달한다. 준이 사라져 버리고 아카리가 다리를 다치는 중반부, 사쿠라코와 후미가 결혼 생활을 끝내려 하는 결말부 사건과 문제의식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모든 신들을 가능한 한 담담하게 풀어낸다. 

가령, 사쿠라코와 후미가 남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들은 공히 조용하고 이성적인데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누는 현실 대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연출자가 어떠한 경우에도 감정을 자제하고 논리를 앞세우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개인적 성향인지는 알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그가 시끄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는 점일 것이며, 이것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화 곳곳에 다큐멘터리처럼 길게 이어지는 진득한 대화신들을 배치해 등장인물들 각자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보게 한다. 때로는 스파크를 일으키며 오가는 말들 속에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의 힘과 가능성이 느껴진다. 그 끝에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는 결론이 있다 할 지라도 진솔한 대화는 슬픔과 분노,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주는데 예외 없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318분의 러닝타임이 당신에게 ‘해피아워’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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