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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편집부
입력 2021-11-05 06:59 수정 최종수정 2021-11-2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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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연주자들이 입장하지 않은 무대에는 의자와 보면대가 가득합니다. 이윽고 조명이 밝아진 무대 위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입장합니다. 의자에 앉은 단원들이 각자 가볍게 손을 풀다가 악장이 등장하여 음을 맞추고 나면, 콘서트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은 조용히 지휘자가 나오기를 기다리지요. 박수 속에 지휘자가 나오면, 단원들은 잠시 일어나고, 청중들을 향한 지휘자의 인사가 끝나면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지휘에 맞춰 연주를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일반적인 오케스트라 음악회는 이러한 광경으로 시작됩니다. 협연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연주 내내 무대위에 서 있는 사람은 지휘자 한 명 뿐이지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 광경은 사실 18-19세기의 오케스트라 음악회에서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처럼 서서 연주에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앉아서 연주할 수밖에 없는 첼로 파트 등 일부 파트의 단원들이었지요. 

다만,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앉아서 연주하는 것만큼 보편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요. 아쉽게도 어느 오케스트라가 언제까지, 그리고 어떤 파트를 제외하고 서서 연주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지는 않습니다. 19세기 오케스트라의 연주 관습에 대해 연구하였던 코우리(D. J. Koury, 1926- )의 저서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서서 연주하는 관습이 19세기 말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유서깊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였지요. 

서서 연주하는 관습은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도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1842년에 열렸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창단 공연에서 단원들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처럼 서서 연주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반면, 빈에서는 앉아서 연주하는 관습이 일찍이 자리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유명한 음악 평론가 한슬릭(E. Hanslick, 1825-1904)도 앉아서 연주하는 관습이 처음으로 자리잡은 곳이 빈일 것이라 추측했지요.

서서 연주하는 관습은 언제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앞서 언급하였던 자료의 불충분함으로 이를 명확히 밝히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된 주목할만한 기록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 단원들이 1905년경까지 서서 연주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의 기록이지만,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이 관습이 널리 행해졌던 나라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사라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또, 이 기록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가 따로 언급된 것을 보면, 아마도 관악기 파트 단원들은 이보다는 먼저 앉아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고요.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장대한 규모의 작품들이 많아진 것도 서서 연주하는 관습이 점차 사라져가게 한 요인이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서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보면, 이런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다. “다리 아프고 힘들어서 공연 내내 어떻게 서서 연주하지?” 1884년에 독일 마이닝엔의 오케스트라가 서서 연주하는 것을 본 한슬릭도 앉아서 연주하는 것이 힘을 아낄 수 있다며, 이 관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는 단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부주의함을 방지하고자 하는 일종의 보험일 뿐이라고 폄하했지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가디너의 공연 장면. (출처: jarijuhanikallio.wordpress.com)

그렇다면, 이 관습의 장점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2018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슈만(R. Schumann, 1810-1856)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가디너(J. E. Gardiner, 1943- )는 팀파니와 첼로, 그리고 더블 베이스 파트를 제외한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서서 연주하게 하는 파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그보다 몇 해 전에 같은 오케스트라와 멘델스존(F.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의 교향곡들을 연주하며,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 단원들만 서서 연주하게 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행보였지요. 

가디너는 이것이 멘델스존이 슈만의 교향곡들을 지휘했을 방식이라고 하면서, 특별히 현악기 파트에서 달라지는 점을 주목하였습니다. 의자가 없으면 단원들이 서로 더 가까이 설 수 있고, 서로를 잘 들을 수 있으며 지휘자를 바라보는 시야도 더 좋아진다고 주장했지요. 단원들은 마치 솔로 연주자들처럼 연주할 수 있다고 하며, 이것이 연주에 추가적인 에너지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솔로 연주자들처럼 연주할 수 있다는 발언이 자칫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현악기 파트 단원들이 서서 연주할 때, 몸을 보다 더 자유롭게 움직이며 연주할 수 있고, 이것이 앉아서 연주할 때와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부여한다고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 관습 및 환경은 변화를 거듭하였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크기와 악기 배치, 사용 악기들, 연주 장소, 조율음 등 많은 요소가 변하였지요. 앉아서 연주하는지 혹은 서서 연주하는지의 여부도 많은 변화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습도 처음부터 당연하지는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되지요.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오케스트라 연주 관습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습니다. 아울러, 가디너가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신선한 행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추천영상: 가디너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슈만 교향곡 2번 중 1악장을 연주한 영상입니다. 대다수의 단원들이 서서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상으로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신선한데, 당시 연주회장에 있었던 청중들에게 이 시도가 어떻게 다가왔을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가디너의 언급 때문에 생긴 선입견일수도 있겠지만, 한결 자유로워 보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움직임이, 음악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듯 합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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