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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베토벤의 청각 장애에 대하여

편집부

기사입력 2020-08-28 06:29     최종수정 2020-08-28 08:1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종종 역사에 ‘만약’을 붙여 상상하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같은 것들이죠. 클래식 음악사에도 흥미롭게 이야기되는 상상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것을 들 수 있겠네요. “만약 모차르트가 오래 살았다면…” 만일, 초점을 베토벤에게 맞춰보면 어떤 상상들이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베토벤이 모차르트에게 배울 수 있었다면…” “베토벤이 결혼했다면…” 이런 상상들도 흥미롭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베토벤이 계속 들을 수 있었더라면…”

베토벤(1770-1827)이라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그의 청각 장애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청각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예술가’와 같은 표현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요. 베토벤의 청각 이상은 언제부터 있던 것이었을까요?

베토벤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청각에 이상이 있음을 밝힌 것은 1801년, 의사이자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베겔러(F. G. Wegeler, 1765-1848)에게 보낸 편지에서였습니다. “내 청력이 지난 3년 동안 계속해서 약해졌어…” 베토벤의 말대로라면, 1790년대 후반, 그러니까 그의 나이 20대 후반에 자신의 청각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죠. 당시 그가 받았을 충격과 절망,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 귀를 바라보며 느꼈을 초조와 불안은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이듬해인 1802년 작성한,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고통과 그로 인해 결국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심정마저 들어있는 이 유서는 사람들을 오해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베토벤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베토벤의 글을 보면 이런 오해를 할 만하기도 한데, 전기작가 솔로몬은 베토벤이 불안에 사로잡혀 청각이 나빠지던 초기 상태를 극적으로 과장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내 청력이 지난 3년 동안 계속해서 약해졌어…” 라는 글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베토벤의 청각 장애는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솔로몬에 따르면, 청각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1812년 이후라고 합니다. 이듬해 그는 보청기 제작을 지시했지요. 1818년부터 사람들이 베토벤과의 의사 소통을 위해 노트에 글을 썼던 것을 보면, 보다 심각해진 그의 청각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베토벤의 청각은 그의 생애 말년에도 완전히 상실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1824년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열광적인 박수 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당시 그의 청각은 실질적으로 상실된 것과 거의 동일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습니다.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좌)와 베토벤이 사용했던 보청기들(우). 
                                                             출처: Beethoven-Haus Bonn)

베토벤의 청각 장애는 그의 음악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적어도 작곡 분야에는 그의 청각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청각 장애로 인해 그만의 예술을 더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이죠. 생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가 창조해낸 뛰어난 작품들, 특히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그의 후기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이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러나, 작곡 분야와 달리, 순간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연주 분야에는 그의 청각 장애가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14년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던 작곡가 슈포어(L. Spohr, 1784-1859)는, 한 때 빛났던 베토벤의 연주가 심하게 망가져 있는 것을 보고 탄식하였습니다. 

연주에서 소리를 세게 내야 하는 부분은 너무 시끄러울 정도로 컸고, 여리게 내야 하는 부분은 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죠.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의 위험이 고스란히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 결국 베토벤은 이듬해인 1815년, 자신의 가곡 “아델라이데”의 피아노 반주를 끝으로 공개 연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휘는 더 오래 했지만, 그의 지휘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가 어긋났는데도 그가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죠. 1822년, 자신의 오페라 “피델리오” 리허설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지휘와 연주가 어긋났지만, 베토벤은 리허설이 잘 끝났다고 생각했지요. 결국에는 극장 측에서 베토벤에게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그의 지휘 활동은 고통스럽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음악가로서, 그리고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베토벤은 청각 장애로 인해 커다란 고통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겪었던 고통 덕분에 우리는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와 다른 이들 간의 소통을 위해 사용되었던 대화록 덕분이죠.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작성된 이 대화록은 그와 그를 둘러싼 당시 상황들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글의 서두에 나왔던 상상처럼, 만약 베토벤이 계속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청각 장애를 갖지 않은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그의 예술적 창조력이 장애에 의해 결코 저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의 예술성은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빛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위대한 베토벤을 작품을 통해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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