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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연 약사의 필리핀 여행기④
입력 2006-03-27 16:07 수정 최종수정 2006-08-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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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에서 나는 열대과일. 망고스틱
이쯤에서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면, 1940년대 중반에 독립을 하여 50~60년대 까지는 우리보다 월등히 잘 살았던 게 분명한 필리핀이다.

그들은 원래 매장 자원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하였고 일제 식민지와 6.25를 겪으며 초토화된 우리가 폐허에서 맨 주먹으로 살아보고자 발버둥칠 때 저들은 풍부한 자원과 미국의 발달된 제도를 받아들여 상당 수준으로 발전했음이 분명하다.

1970년대까지 정치적으로 우리와 아주 비슷한 군부독재 체제로 내달음 칠 때 그 와중에도 중화학 공업을 기치로 내세우고 하나하나 기틀을 다진 우리와 달리 필리핀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1980년대 이후로 민주화의 길을 밟으며 올림픽을 유치하고 월드컵을 치르면서 나아갈 때 필리핀은 무엇을 어떻게 한 것인지 잘은 알 수 없다. 원래 못살던 나라가 지지부진하면 당연 그러려니 할 터이지만 잘 살던 나라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면 ‘왜 그럴까?’하고 생각을 해보게 마련인 것이다.

필리핀 400년 식민 지배에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땅 하늘 들판 나무 아직 풍부히 남은 지하자원, 혼혈에 혼혈이 거듭되긴 했지만 그래도 동양의 얼굴모습, 스페인식 말과 언어 그리고 미국식 간판과 영어, 중국식 생활 방식과 전통, 영국식 생활 습관과 일본식 침략주의 일부 그리고 여성 우대 사상과 상대적으로 빈약한 남성의 파워 등등이 혼합된 필리핀의 문화를 쉽게 얘기하기는 상당히 힘든 게 사실이다.

또 저런 거창한 물음에 답할 위치에 필자가 있지도 않다. 다만 필자는 그냥 여행 후의 느낌을 말할 뿐이지만 이 글이 조금이라도 필리핀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보다 지하자원도 많고 인구도 많고 먹을 것도 많던 필리핀이 오늘날 동남아의 경제빈국으로 떨어진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식민통치를 장기간 받아 왔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서 일찍이 우리보다 앞섰던 나라인데 말이다. 잘은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현상유지가 된 나라이기에 우리처럼 절박하지 않아서 그렇지는 않았을까? 자원 없고 그냥은 도저히 먹고살기 힘든 우리는 어떻게든 농경 산업에서 2차산업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공업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니 비슷한 군사 독재시기를 거쳤지만 결과는 엄청난 차이로 나타나게 된 것 아닐까?

필리핀을 여행하면서 끝임 없이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마르코스가 20여년 간 독재를 하며 주요 국가 재산을 팔아넘기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현재의 필리핀의 가난을 원인으로 삼기에는 뭔가 허전한 감이 든다. 마르코스 이후에도 많은 지도자를 거쳤지만 아직 이렇다 할 특출한 리더는 나오지 않은 게 아닌지. 리더가 없어도 국민들이 알아서 잘 하면 안 되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여러 복잡한 변수가 혼재하는 것이 국가 발전이겠지만 결국 국가란 땅과 국민과 제도와 사람들의 열정과 습성 등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다고 볼때 그런 총체적인 역량의 차이가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 본다.

우리도 입만 열면 지도자 타령에 날이 지샌다. 그리고 끝없이 정치 풍토를 욕하고 질타한다. 하지만 우리는 뭔지 모를 국민의 힘 같은 것이 늘상 위기 상황마다 분출됨을 느낀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국민이 모두 근면 명석해서인지 창의력이 풍부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저절로 잘 되고 있는 건지 하느님이 보우하사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행을 하면서 적어도 우리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축복을 받은 나라이고 또 前道가 양양한 나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우리가 많은 고난의 역사로 점철된 것은 사실이지만 근세에 와서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기나긴 식민통치를 받은 필리핀이야 말로 고난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난의 동지격인 필리핀의 재도약을 기원해 마지않는다.

반만년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뿐더러 로마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는 로마에 비할 바 없는 긴긴 역사를 이루고 있지 않는가? 함께 여행을 하던 다른 분들도 대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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