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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연 약사의 필리핀 여행기②
16세기부터 이어져온 뿌리 깊은 식민지 역사의 나라
입력 2006-03-13 09:11 수정 최종수정 2006-09-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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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앞세운 스페인 300여년 식민 통치 뒤이어
美도 40년 간 지배해…아시아의 ‘작은 미국’화
철저한 우민화 정책으로 소진 당한 설움의 민족
여성 상위에 백인 혼혈 동경하는 사회 분위기


솔직히 나는 필리핀의 역사를 잘 모른다.

6.25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 되었다는 것도 거의 잊은 지 오래고 보라카이해안, 수빅만, 아키노 상원의원, 마르코스 대통령, 물론 이멜다는 기억하지만 그 외에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내 나라 문제도 만만치 않은데 남의 나라 역사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거야 없는 것이지만, 희한하게도 차 안에서 이것저것 얘기를 듣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우리의 역사와 비교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고난의 세월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대륙의 끝에 돌출된 그 활용 가치 때문에 헤일 수 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고 역사상 태평성대를 누린 적이 별로 많지 않은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 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만 본다면 누가 뭐래도 핍박과 가난의 과거가 있고 또 현존하는 유일의 지구상의 분단국가이며 그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세계사에 고난의 주역으로서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개인적 문제로까지 들어가면, 마치 ‘과거에 우리 집만 가난했고 남들은 그래도 견딜만은 했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경우다.

왠지 인간은 자신만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고생을 많이 하고 어려운 시절을 견뎌 온 것으로 착각하거나 그 생각에서 잘 빠져나오기 힘든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개인 뿐 아니라 국가적 또는 국민전체의 역사에서도 그런 우를 범할 소지가 다분히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튼 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필리핀은 일찍부터 열강들이 군침을 흘러내릴만한 충분한 나라였다.

그 첫번째가 1500년대 중기쯤 한창 바다를 돌아다니던 스페인의 마젤란이다. 홍길동처럼 돌아다니던 이 친구의 필리핀이 눈에 띈 건 당연한 결과이다.

해서 1521년3월31일, Samar섬에 십자가를 가져다 내리 꽂는다.

어떤 이는 이렇게 카톨릭을 이곳에 전파하지 않았으면 당시 남부 아시아로 해서 계속 북상하던 무슬림들이 필리핀을 거쳐 한국이나 일본까지 상륙했을 것이라 예측하기도 하는데,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젤란이 첫 발자국을 남긴 이래 5회에 걸쳐 야금야금 함대를 파견한 스페인에 결국 속절없이 필리핀은 당하고 만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는 왜구가 한반도를 수년에 걸쳐 침공하지만 이순신을 필두로 우리는 버텨낸다. 이렇다 할 대항조차 변변찮게 하지 못하고 무너진 필리핀!

이때부터 무려 400년에 이르는 기나긴 식민지 시대로 들어간다.

일제 36년 만으로도 지금까지 왈가왈부 잔재의 청산으로 시끄러운 한국은 어찌 보면 참으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전 국민의 80%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은 결국 스페인이 철저히 필리핀을 식민지화 하기 위한 포석으로 종교를 전파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7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나라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려니 정신적 통일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일환으로 가톨릭의 전파는 물론 混血정책과 철저한 愚民化 정책까지를 연결시켜 결국 국민 체력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데까지 가게 된다.

남자는 될수록 가르치지 않고 힘없는 여자들을 우선 교육시킨다. 또 혼혈아를 최대한 우대
하는 풍토를 조성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혼혈의 경우는 스페인과의 혼혈을 말한다.

해서 지금의 필리핀은 자연스럽게 여성 상위 시대가 유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너도나도 혼혈로 태어나기를 기대하고 하얀 피부색을 끝없이 동경하는 사회가 되고 만다.

이렇게 300여년을 스페인의 통치로 가다보니 필리핀 원주민들은 결국 자신이 누군지 조차 모르게 되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종교가 일률적으로 통제 되다보니 국민들은 그저 스페인 총독이 하라는 대로 살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필리핀은 식민통치 300여년이 흐른 뒤인 1900년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독립운동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개화기와 비슷한 시기이다.

스페인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호세 리잘'이라는 걸출한 사람이 중심이 되어 독립 투쟁을 시작 한다.

들은 바로는 그는 상당한 천재로 12개 국어에 능통하였고 안과 의사이자 시인으로 재주가 많았던 사람이다.

결국 파리 강화조약을 통해서 필리핀은 스페인의 기나긴 식민지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그 독립전쟁은 미국의 도움으로 되었기에 결국 독립과 더불어 다시 미국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우리의 ‘8.15 해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이다.

이때부터 다시 약 40여년간 미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데 그중 2년은 영국이 잠시 지배권을 갖기도 했고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4년간은 일본군의 지배에 또 들어가게 된다.

아! 정말 속된 표현으로 ‘지겨운 식민의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중국은 15세기 이전에 이미 필리핀에 상륙하여 교역도하고 여러 가지 농경기술도 가르쳐주었다는 데 스페인식의 지배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모양이고 미국은 40여년간 지배는 했으나 그 당시 동양권에 하나의 미국 모형을 뿌리 내리기 위해 많은 물적 제도적 원조와 시스템을 심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 교육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작은 미국’을 하나 만든 셈이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36년간 우리가 고통 받고 독립운동을 하고 있을 시기에 필리핀은 미국의 도움 하에 많은 성장을 했음이 틀림없다.

아시아의 첫번째 공화국으로 불리고 민주제도가 제일 먼저 정착된 나라로 기록 된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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