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타이틀 텍스트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45> 강아지 구충제와 항암제 이야기
정재훈 약사
입력 2019-10-16 09:40 수정 최종수정 2019-10-17 16:25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정재훈 약사▲ 정재훈 약사
펜벤다졸은 강아지용 구충제다. 지난 4월 영국신문 데일리메일의 인터뷰 기사에서 소세포폐암으로 진단받았던 미국 오클라호마의 조 티펜스라는 사람이 이 약을 먹고 암에서 나았다는 경험담을 소개하여 화제가 됐다. 9월에는 같은 내용이 한국어 유튜브 동영상으로 올려져 인기를 끌며 약이 품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조 티펜스는 2016년에 암 진단을 받고 2017년에 암이 간, 췌장, 방광, 위장, 골수 등으로 퍼져서 생존기간을 3개월로 예측한다는 걸로 듣고 펜벤다졸 투약을 시작했다. 티펜스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222mg씩 3일 복용 후 4일 쉬는 식으로 매주 반복했다고 한다. 이후 3개월이 지난 PET 검사에서 암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암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경험담이다. 하지만 아직 조 티펜스의 경험담만으로 펜벤다졸을 암 치료에 이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는 강아지용 구충제만 복용한 게 아니라 다른 항암신약 임상시험에도 참여했으며 토코페롤, 커큐민, 대마유 등의 다른 건강기능식품도 함께 복용했다. 조 티펜스의 경험만으로는 이들 중 어떤 약이 효과를 낸 것인지, 순전히 우연에 의한 일이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펜벤다졸은 먹어도 체내로 흡수가 잘 되지 않는 약이다. 펜벤다졸과 구조가 비슷하며 사람에게 사용되는 메벤다졸이란 구충제의 체내 흡수율이 10%에 못 미친다.

추측건대 펜벤다졸 222mg을 복용해도 실제 체내로 흡수되어 작용할 수 있는 분량은 22mg에 불과했을 테고 이 정도로 적은 양으로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구충제로 사용할 때는 이렇게 체내 흡수율이 낮은 점이 유리하다. 몸속으로 흡수가 잘 안 되므로 전신 부작용은 적게 나타나고 장내에 그대로 남으니 기생충 박멸에는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벤다졸, 펜벤다졸과 같은 기존 약의 항암효과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 유명한 다른 사례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벤 윌리엄즈 교수가 있다. 그는 1995년에 50세에 악성뇌종양으로 진단 받았는데 여드름 치료약(isotretinoin), 항고혈압약, 수면제 등의 암과는 관련성이 전혀 없어보이는 약으로 치료를 시도했고 놀랍게도 암이 완치되었다. 그는 2013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한두 사람의 사례만으로 약효를 입증할 수는 없다. 연구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기존 약의 새로운 항암효과를 알아내도 제약회사는 특허가 이미 만료된 약으로 돈을 벌기 어렵다. 그러나 기존 약 중에서 특정 표적에만 작용하지 않고 여러 곳에 다양하게 작용하는 약들에 미처 몰랐던 약효가 숨어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일단의 연구자들이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ReDO(Repurposing Drugs In Oncology)라는 비영리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약의 항암효과를 연구 중이다. 당뇨약(메트폴민), 고지혈증 치료제(스타틴), 구충제(메벤다졸), 위장약(시메티딘), 무좀약(이트라코나졸), 여드름치료제(이소트레티노인) 등의 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희망적이지만 반대로 강아지용 구충제에 지나친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ReDO 프로젝트에서 현재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리스트에 올려둔 약의 가짓수만 291개이고 이 중에 약간이라도 근거가 있는 게 70종이다.

펜벤다졸 하나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때는 몰랐다가 이렇게 많은 기존 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뭘 어떻게 먹어야 하나 혼란스럽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이번 강아지 구충제 논란에서 조금 부정적 입장을 취한 이유이기도 하다. 효과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있어도 아직 확실한 근거가 없고 정확히 얼마만큼을 어떻게 얼마동안 사용해야 할지, 부작용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사람용 구충제 메벤다졸도 항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여러 건 진행되었으며 강아지용 구충제인 펜벤다졸과 비슷하게 작용하지만 많은 양을 사용할 경우에는 부작용이 있다.

과거 기형 유발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되었다가 항암제로 다시 출시되었던 탈리도마이드도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없는 약은 아니다. 언젠가 기존 약에서 부작용이 덜하고 항암 효과가 높은 또 다른 약을 찾아내기를 바라마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기대를 하지는 말아야 할 이유다.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기사 더보기 +
인터뷰 더보기 +
남들보다 작은 우리 아이, 성장호르몬 치료 괜찮을까?
[레츠고 U.P-바이오시밀러 7] “도입만으로도 약가 인하·치료 접근성 확대 등 파급효과”
비만 넘어 심혈관계 질환까지 잡은 치료제 ‘위고비’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45> 강아지 구충제와 항암제 이야기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45> 강아지 구충제와 항암제 이야기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