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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41> 약을 끊고 싶다면 약을 도와주세요
정재훈 약사
입력 2019-08-21 09:40 수정 최종수정 2019-08-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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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2017년 덴마크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자. 40-60세 성인 1,069명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심장질환을 겪을 위험이 크다는 진단을 받았다. 예방을 위해 약과 생활습관 개선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호하는가?” 962명은 생활습관 개선을 택했다. 열에 아홉은 고혈압 약 대신 생활습관을 조정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혈압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이 약을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한다. 영양제처럼 이름은 약인데 음식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아닌 이상 약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질적 화학물질로 여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으니, 약을 적게 먹고 싶다면 약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30-45분씩 걷기처럼 가벼운 운동을 일주일에 세 번 해주면 혈압이 떨어진다. (수축기 10.3mmHg/이완기 7.5mmHg) 과체중일 경우 체중을 4.5kg 줄여주면 혈압이 떨어진다. (7.2/5.9) DASH로 알려진 고혈압을 막기 위한 식단(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을 따라 식습관을 조정하면 혈압이 상당히 많이 떨어진다. (11.4/5.5) 하루 마시는 술을 2.7잔 줄여도 혈압이 떨어진다. (4.6/2.3) 하루 섭취하는 나트륨을 1.8g 줄이면 (소금으로 치면 4.5g에 해당한다) 혈압이 떨어진다. (5.8/2.5) 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혈압 수치와 비교하면 효과가 그리 강하진 않다. 하지만 최소한 약을 더 적게 먹는 데 도움이 된다.

고혈압 약을 끊을 수도 있다. 역시 약을 도와주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보통 혈압약을 끊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혈압 상태로 돌아간다. 짧게는 이삼일, 길어야 6개월이다.  그러나 드물지만 혈압약을 끊고 나서도 1-2년 이상  정상 혈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에 언급한 생활습관 조정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일수록 고혈압 약을 끊고 나서도 정상 혈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생활습관 조정을 해준 사람의 경우 39%가 약을 끊고 나서 4년이 지난 시점에 계속해서 정상혈압을 유지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비율이 5%에도 미치지 못했다.

생활습관이 원래대로 돌아가면 고혈압도 재발할 가능성이 90%가 넘는 셈이다. 약으로 치료를 시작한 시점에서 혈압이 낮을수록 단 한 가지 혈압약으로 혈압이 조절되는 사람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고혈압 약의 가짓수가 적다는 건 그만큼 약을 잘 도와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젊은 고혈압 환자일수록 성공적으로 약을 끊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 방송이나 인터넷 기사에서 고혈압 약을 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혈압약을 끊으면 신속하게 고혈압 상태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

불행히도 이때 특별히 자각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약을 끊고 나도 괜찮다고 안심했다가 고혈압 상태를 방치하여 뇌졸중, 심근경색, 심부전, 만성신장병, 치매와 같은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로는 약물 치료 이전보다 혈압이 더 높아지기도 한다. 일부 약물의 경우 갑자기 중단하면 그로 인한 금단 증상으로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심혈관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스스로 약을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기보다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조심스럽게 감량해나가는 게 좋다.

평생 혈압약의 도움 없이 정상 혈압을 유지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나이들면 항고혈압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당뇨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항우울증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으며 항고지혈증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약 이름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고혈압과 싸우거나 우울증과 싸우거나 고지혈증과 싸우는 약이다. 약이 이들 질환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약을 도와줄 수도 있고 약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서 해당 질환을 도와줄 수도 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현명한 선택을 위해 하나만 기억하자. 싸움의 결과를 거두는 건 약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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