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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40> 전자담배와 약의 제형 이야기
정재훈 약사
입력 2019-08-07 09:40 수정 최종수정 2019-08-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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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정재훈 약사
전자담배로 갈아타고 나서 불면증이 생긴다. 말이 안 될 거 같지만 사실이다. 평소 커피를 즐겨마시던 흡연자라면 그럴 수 있다. 커피 속 카페인을 대사하는 효소 때문이다.

담배 연기 속에는 약 7000종의 엄청나게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이들 중 70종은 발암물질이다. 이토록 해로운 연기를 매일 같이 들이마시는데 우리 몸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간에서 CYP 1A1, 1A2, 2E1과 같은 대사효소의 발현을 끌어올린다. 쉽게 말해 흡입되어 들어온 화학물질을 얼른 청소해서 내보내기 위한 공기정화시스템을 더 열심히 가동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담배 연기로 인한 해를 전부 막을 수는 없고,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역으로 발암물질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효과는 있는데, 바로 카페인의 대사도 빨라진다는 것이다. 담배 연기 속 화학물질을 내보내려고 더 많이 만들어낸 효소가 카페인을 청소해서 내보내는 일도 함께 맡고 있기 때문이다. 흡연자가 커피를 여러 잔 마셔도 아무 걱정 없이 잠잘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뒤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사효소 덕분이다.

그런데 전자담배에는 종전의 궐련형 담배와 달리 불로 태울 때 발생하는 연기 속 화학물질이 거의 없다. 화학물질이 안 들어오니 인체도 굳이 청소를 위한 대사 효소를 더 많이 준비할 필요가 없다.

궐련형 담배에서 전자담배로 바꾸고 나면 그런 이유로 체내 대사 효소가 원래 수준으로 돌아간다. 금연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전처럼 하루 너댓 잔의 커피를 마셨다가는 불면증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CYP 1A2로 대사되는 약물(디아제팜, 에스트로겐, 메타돈, 니페디핀, 와파린, 테오필린)을 복용 중인 사람도 금연이나 전자담배로 바꾸고 나서 약의 용량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자담배는 궐련형 담배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금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니코틴 흡수가 빠르기 때문이다. 약의 효과는 약성분이 얼마나 빠르게 흡수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북미에서 아편계 진통제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메타돈 유지요법이라는 치료가 대표적인 예다.

치료를 원하는 마약중독자들에게 메타돈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를 매일 약국에 와서 마시도록 한다. 메타돈은 지속시간이 매우 길고 입으로 삼키는 방식으로 복용했을 때는 효과가 매우 느리게 나타나서 마약중독자들이 혹시라도 마약을 사용했을 때 느끼는 도취감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동시에 금단증상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자담배와 달리 금연보조제의 중요한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니코틴 패치, 껌, 로젠지(사탕) 등의 금연보조제에도 담배와 똑같은 니코틴이 들어있다. 하지만 흡수 속도가 다르다. 담배는 니코틴을 뇌에 가장 신속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담배를 피우면 15초 만에 니코틴 성분이 뇌 속으로 들어간다. 흡수가 빠를수록 약의 효과가 강하게 느껴지고, 그럴수록 중독성이 크다. 담배를 끊기가 어려운 이유다. 이에 반해 금연보조제는 소량의 니코틴이 서서히 흡수되도록 하므로 담배를 피울 때와 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덜하다.

담배 대신 니코틴을 넣어주는 약을 니코틴 대체제라고 부르는데, 이같은 약을 사용했을 때 니코턴의 혈중농도는 담배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낮은 수준이라서, 오히려 담배에 대한 욕구를 줄여준다. 낮은 수준으로라도 니코틴의 혈중 농도가 계속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그로 인한 보상감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코틴 대체제를 사용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흡연만 할 때보다 혈중 니코틴 농도가 더 높아져서 그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니코틴 껌은 껌처럼 계속 씹는 게 아니라 두 번 씹고 나면 잇몸과 뺨 사이에 껌을 물고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혈중 니코틴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약을 서서히 흡수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혈중 니코틴 농도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때 금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지만, 계속해서 조금씩 간식을 하고 있던 중에는 밥맛이 떨어지는 원리와 비슷하다.

똑같은 니코틴이지만 금연을 도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커피 속 카페인에 둔감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약은 성분에 따라서만 달라지지 않는다. 제형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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