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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251> 은사님 회고 2-임기흥 교수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8-06-20 09:38 수정 최종수정 2018-06-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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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1967년 대학 1학년 때 임기흥 교수님의 약용식물학 첫 수업 시, 어떤 식물의 전초(全草) 그림을 그려내라는 숙제를 받았다. 나는 공책에다가 볼펜으로 대충 그려서 제출하였다. 며칠 후 공책을 되돌려 받아보니 “너는 도대체 학교엘 다니려고 하느냐?” 라는 교수님의 코멘트가 큰 글씨로 쓰여 있었다. 나는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정태현 (鄭台鉉) 식물도감의 해당 식물 그림 위에 유산지 (硫酸紙, tracing paper)를 대고 4H 연필로 모사(模寫)해야 하는 것이었다.

 

임교수님은 일요일마다 근교의 산으로 약용식물 채집을 나가셨는데, 그 때마다 학생들 보고 “오기 싫은 사람은 안 와도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참석하지 않으면 학점을 안 줄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셨다. 막상 참석해 보면 교수님은 앞장 서 올라가시면서 ‘이건 무슨 풀인데 뭐에 쓴다’고 설명을 하시는데, 내가 겨우 따라 잡으면 벌써 설명을 마치시고 다시 저만치 멀리 올라가시곤 하였다.

식물 분류가 전공이던 교수님은 약용식물학 강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지껏 논문을 쓸 때 계속성 초본을 continuous plants, 불계속성 초본을 uncontinuous plants라고 이름 붙여 왔는데, 최근에 알고 보니 불계속성은 영어로 uncontinuous가 아니라 discontinuous이더군, 하하하” 하시는 것이었다. 1968년경 임교수님은 육수학회(陸水學會)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다. 이 학회는 1982년에도 존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임교수님은 우리가 학부 재학 중일 때에 박사 학위가 없으셨다. 당시에는 박사 학위가 없는 교수님이 더 많았다. 언젠가 약화학 전공의 채동규 교수님이 강의 중에 “임교수님이 논문을 써서 제출하였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 심사를 하지” 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 학위를 줄 수 없다는 말씀 같았다. 그 정도로 임교수님은 한글로 글을 쓰시는 것이 서투셨다. 교지(校誌)인 약원(藥苑)에 실린 교수님의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마침표가 글 맨 끝에 단 한 개만 있을 정도로 문장이 끝나지 않고 줄줄이 연결되어 있는 등, 아닌 게 아니라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임교수님은 1916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만주에 있는 봉천제1중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만주의과대학 약학전문부를 졸업한 후, 의예과 생물학 교실의 조교를 역임하였다. 그 후 광복 때 남하하여 서울대 사범대 강사로 지내던 중 김기우 약대 학장의 배려로 1949년초부터 약대 전임강사가 되셨다. 이처럼 임교수님은 만주에서 공부를 하셔서 중국어는 완벽하지만 우리말, 특히 글은 매우 서투셨던 것이다.

임교수님은 1968년 서울대학교 졸업식 (아마도 2월)에서 그토록 간절히 원하시던 약학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그 해 10월 28일 연건동 약대에서 열린 대한약학회 총회 및 학술대회에서 그논문을 구두로 발표하시고 나와서 혈압으로 쓰려져 작고하셨다. 1916년 생이시니까 그 때 겨우 만 52세이셨다. 두 형님도 다 혈압으로 먼저 작고하셨다고 한다.

한번은 조윤상 교수님 (당시 조교?)이 무슨 일인가로 청량리에 있는 임교수님 댁 (철도청 관사를 불하받음)에 심부름을 가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댁에 전화가 없는 교수님이 많아서 용건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가서 보니 교수님은 안 계시고 사모님만 계셨는데, 사모님은 사과 궤짝 위에 종이를 펴 놓고 아드님이 볼 참고서인 전과지도서 (全科, 전과목 참고서)를 빌려다 하나하나 베끼고 계셨다고 한다. 조 교수님은 그 절약 정신과 함께 자식 교육을 위한 정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임교수님에 대한 회고담은 1983년 11월 1일자 ‘서울대학교 동창회보’ 제68호 6페이지에 실린 바 있다. 임교수님의 제자인 고 정보섭 교수님가 쓰신 글이다. 이 글의 일부 사항은 그 글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임교수님도, 제자인 정교수님도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하셨으니, 세월의 무정함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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