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성적 순(順)이 아니잖아요?’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대체로 옳은 말이다. 나는 인생은 성적순이라기 보다는 사랑 순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두 아들과 두 며느리 및 그들에서 태어난 네 손주가 있다. 사실 요즘은 이 식구들을 보는 재미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딴에는 최선을 다해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가끔 우리가 각자 자기를 다른 아이보다 덜 사랑해준다고 삐치거나 투정을 부린다. 때로는 어이가 없고 난감하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랑은 양(量)보다 순서(順序)가 더 중요하다’라는 사실이다. 내가 받는 사랑의 양이 아무리 많더라도, 남보다 조금이라도 적게 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곧 남을 시샘하고 질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질투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모자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공감이 간다. 어쨌거나 자식들이 서로 시샘과 질투를 하지 않도록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 주는 일은 보통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어쩌면 끝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자식은 하나만 두어야 사랑하기 편하다는 말이 있을까?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사랑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공통적인 필수 요소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 심지어 화초나 나무 같은 식물까지도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 번째로는 성경 도처(출20:5, 출34:14, 신5:9, 신6:15, 수24:19)에 언급되어 있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에 주목하게 되었다.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사랑 받기를 강력하게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질투’는 사랑의 시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은 ‘사랑’이실 뿐 (요일4)만 아니라, 스스로도 사랑 받기를 원하시는, 우리와 같은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골(毛骨)이 송연(松煙)해지는 깨달음이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생명체는 공통으로 사랑을 필요로 할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이 안에 있어야 생명이 온전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 것처럼,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남의 사랑을 잘 받을 수 있다.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해도 선생님 앞으로 가까이 오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아이는 십중팔구 제대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이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남을 제대로 사랑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의 인생을 온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란 의미에서, 사랑은 인생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묘약(妙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이 있다. 자식에 대한 내리 사랑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본능(本能)이라는 말인 듯 하다. 저절로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자식 사랑은 사실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반대로 자식의 부모 사랑은 굳은 결심을 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선 애들과 달리 늙은 부모는 저절로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 좀 추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추하게 보이는 부모를 저절로 사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을 효(孝)라고 하고, 효를 행하는 일을 효도(孝道)라고 하는데, 이는 효도 하기가 도(道)를 닦는 일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이처럼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도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그 차이를 단적(端的)으로 말해 주고 있다.
만약에 하나님이 자식 사랑은 하기 어렵고, 부모 효도는 저절로 하게끔 만들어 놓으셨다면 세상이 어찌 되었을까? 아마 인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동물이 이미 멸종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사랑법칙의 오묘함에 놀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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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성적 순(順)이 아니잖아요?’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대체로 옳은 말이다. 나는 인생은 성적순이라기 보다는 사랑 순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두 아들과 두 며느리 및 그들에서 태어난 네 손주가 있다. 사실 요즘은 이 식구들을 보는 재미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딴에는 최선을 다해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가끔 우리가 각자 자기를 다른 아이보다 덜 사랑해준다고 삐치거나 투정을 부린다. 때로는 어이가 없고 난감하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랑은 양(量)보다 순서(順序)가 더 중요하다’라는 사실이다. 내가 받는 사랑의 양이 아무리 많더라도, 남보다 조금이라도 적게 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곧 남을 시샘하고 질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질투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모자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공감이 간다. 어쨌거나 자식들이 서로 시샘과 질투를 하지 않도록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 주는 일은 보통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어쩌면 끝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자식은 하나만 두어야 사랑하기 편하다는 말이 있을까?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사랑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공통적인 필수 요소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 심지어 화초나 나무 같은 식물까지도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 번째로는 성경 도처(출20:5, 출34:14, 신5:9, 신6:15, 수24:19)에 언급되어 있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에 주목하게 되었다.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사랑 받기를 강력하게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질투’는 사랑의 시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은 ‘사랑’이실 뿐 (요일4)만 아니라, 스스로도 사랑 받기를 원하시는, 우리와 같은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골(毛骨)이 송연(松煙)해지는 깨달음이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생명체는 공통으로 사랑을 필요로 할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이 안에 있어야 생명이 온전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 것처럼,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남의 사랑을 잘 받을 수 있다.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해도 선생님 앞으로 가까이 오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아이는 십중팔구 제대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이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남을 제대로 사랑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의 인생을 온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란 의미에서, 사랑은 인생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묘약(妙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이 있다. 자식에 대한 내리 사랑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본능(本能)이라는 말인 듯 하다. 저절로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자식 사랑은 사실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반대로 자식의 부모 사랑은 굳은 결심을 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선 애들과 달리 늙은 부모는 저절로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 좀 추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추하게 보이는 부모를 저절로 사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을 효(孝)라고 하고, 효를 행하는 일을 효도(孝道)라고 하는데, 이는 효도 하기가 도(道)를 닦는 일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이처럼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도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그 차이를 단적(端的)으로 말해 주고 있다.
만약에 하나님이 자식 사랑은 하기 어렵고, 부모 효도는 저절로 하게끔 만들어 놓으셨다면 세상이 어찌 되었을까? 아마 인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동물이 이미 멸종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사랑법칙의 오묘함에 놀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