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7월 17일 사립장훈학교(현 중구 장교동 장교빌딩 자리)에서 최초의 약학강습회가 열린 다음해인 1915년 6월 12일 (약춘161의 6월 13일은 오류), 같은장훈학교에서 1년제 야간조선약학강습소가 개교되었다. 강습소는 3년 뒤인 1918년에 폐지되고,같은 해 6월 21일 2년제조선약학교 (신입생 99명)가 개교되었다.
조선약학교는약춘 164에 정리한대로 잠시 옛 동대문 분서 (分署) 자리와, 남미창정 284번지 (남대문시장 남쪽)를 거쳐 1919년 5월 23일 옛 훈련원 부지 (현 중구구민회관 부지)에 목조 기와집을 낙성하여 자리 잡은 후 1920년부터 매년 2년제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4년부터는 매년 2년제 졸업생과 3년제 (본과라 부름)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즉 1924년 3월 22일에는 제5회 2년제 졸업생 (43명, 이중 한국인 14명)과 더불어 3년제 1회 졸업생 (2명)을 배출하였다.그러므로 우리나라 근대약학교육에서 3년제 교육이 시작된 것은 1921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약학교는1926년11월 29일에는 연구실을, 1928년 5월 17일에는 강당을 신축 낙성하고, 1930년 4월 1일에는 3년제의 경성약학전문학교 (약전)로 승격 개교하게 되었다. 당시조선약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약전으로 편입시킨 후 다음 해인 1931년 3월 28일 제1회 약전 졸업생으로 졸업시켰다. 약전으로 편입하지 않은 학생들은 1931년 같은 날 제8회 (마지막회) 조선약학교 졸업생이 되었다. 1933년에는 신축교사 낙성식 겸 문부성 지정 축하회를 개최하였다. 조선약학교가완전히 폐지된 것은 1932년 5월 1일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광복이 되자, 일본인 교장 등은 학교를 미군정에 넘기려고 하였다. 이에 반대한 학생들 및 도봉섭 (교장)과 이동선 (이사장) 등의 공으로 그 해 9월 학교를 인수받았다. 1946년 미군정이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키기로 하자 약전도 그 이름을 (사립)서울약학대학 (3년제)으로고치게 되었다. 약전은 1947년 2월 5일 제17회로 마지막 졸업식을 가졌다.
그리하여 1948년부터는서울약학대학의 이름으로 졸업생을 배출 (동년 6월 17일 제1회 3년제 졸업생 92명)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8.15) 후인 1949년, 제2회 (97명)와 제3회 졸업생 (94명)을 5개월 간격으로 배출하였다.
한편 1948년부터 서울약학대학은 전문부 (3년제)와 학부 (4년제)로 개편되어 희망자는 1년을 더 수학하여 총 4년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1950년 3월 11일 및 5월 11일에 각각 제1회 및 제2회 4년제 학부 졸업식 (각 11명)을, 5월 11일에는 제4회 3년제 서울약학대학 졸업식 (110명)을 거행하였다. 이미 1946년에약전에 입학한 학생 중 일부 희망자가 4년 후인 1950년 3월에 첫 4년제 졸업생이 된 것이다.
한편 이화대학 행림원(의약대학의 명칭)은 1945년에 3년제 약학교육을 시작한 후,1947년에는 편입시험을 통해 희망자에게 4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1949년 7월, 한국 최초의 4년제 약학사 55명을 배출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4년제약학사의 배출에 있어서 이화여대가 서울약학대학보다 8개월 앞서게 되었다.
1950년 6.25 동란과 9.28 수복을 거친 뒤인 9월 30일 한구동 등의 노력으로서울약학대학은 국립서울대학교 (초대학장 한구동)에 편입되었다. 한편 전시, 즉 부산 피난 시절에는 성균관대, 부산대, 중앙대, 숙명여대 등의 약학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한 동안 을지로 6가에 있던 약학대학 교사는 서울대 음악대학 자리로 교사를 옮겼다가, 1959년 8월 17일 종로구 연건동 28번지로 다시 옮겨교사를 신축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6년 후인 1975년 8월 25일에는 다른 단과대학들보다 뒤늦게서울대 관악캠퍼스로 이전 합류하여 오늘의 관악 시대를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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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7월 17일 사립장훈학교(현 중구 장교동 장교빌딩 자리)에서 최초의 약학강습회가 열린 다음해인 1915년 6월 12일 (약춘161의 6월 13일은 오류), 같은장훈학교에서 1년제 야간조선약학강습소가 개교되었다. 강습소는 3년 뒤인 1918년에 폐지되고,같은 해 6월 21일 2년제조선약학교 (신입생 99명)가 개교되었다.
조선약학교는약춘 164에 정리한대로 잠시 옛 동대문 분서 (分署) 자리와, 남미창정 284번지 (남대문시장 남쪽)를 거쳐 1919년 5월 23일 옛 훈련원 부지 (현 중구구민회관 부지)에 목조 기와집을 낙성하여 자리 잡은 후 1920년부터 매년 2년제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4년부터는 매년 2년제 졸업생과 3년제 (본과라 부름)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즉 1924년 3월 22일에는 제5회 2년제 졸업생 (43명, 이중 한국인 14명)과 더불어 3년제 1회 졸업생 (2명)을 배출하였다.그러므로 우리나라 근대약학교육에서 3년제 교육이 시작된 것은 1921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약학교는1926년11월 29일에는 연구실을, 1928년 5월 17일에는 강당을 신축 낙성하고, 1930년 4월 1일에는 3년제의 경성약학전문학교 (약전)로 승격 개교하게 되었다. 당시조선약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약전으로 편입시킨 후 다음 해인 1931년 3월 28일 제1회 약전 졸업생으로 졸업시켰다. 약전으로 편입하지 않은 학생들은 1931년 같은 날 제8회 (마지막회) 조선약학교 졸업생이 되었다. 1933년에는 신축교사 낙성식 겸 문부성 지정 축하회를 개최하였다. 조선약학교가완전히 폐지된 것은 1932년 5월 1일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광복이 되자, 일본인 교장 등은 학교를 미군정에 넘기려고 하였다. 이에 반대한 학생들 및 도봉섭 (교장)과 이동선 (이사장) 등의 공으로 그 해 9월 학교를 인수받았다. 1946년 미군정이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키기로 하자 약전도 그 이름을 (사립)서울약학대학 (3년제)으로고치게 되었다. 약전은 1947년 2월 5일 제17회로 마지막 졸업식을 가졌다.
그리하여 1948년부터는서울약학대학의 이름으로 졸업생을 배출 (동년 6월 17일 제1회 3년제 졸업생 92명)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8.15) 후인 1949년, 제2회 (97명)와 제3회 졸업생 (94명)을 5개월 간격으로 배출하였다.
한편 1948년부터 서울약학대학은 전문부 (3년제)와 학부 (4년제)로 개편되어 희망자는 1년을 더 수학하여 총 4년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1950년 3월 11일 및 5월 11일에 각각 제1회 및 제2회 4년제 학부 졸업식 (각 11명)을, 5월 11일에는 제4회 3년제 서울약학대학 졸업식 (110명)을 거행하였다. 이미 1946년에약전에 입학한 학생 중 일부 희망자가 4년 후인 1950년 3월에 첫 4년제 졸업생이 된 것이다.
한편 이화대학 행림원(의약대학의 명칭)은 1945년에 3년제 약학교육을 시작한 후,1947년에는 편입시험을 통해 희망자에게 4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1949년 7월, 한국 최초의 4년제 약학사 55명을 배출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4년제약학사의 배출에 있어서 이화여대가 서울약학대학보다 8개월 앞서게 되었다.
1950년 6.25 동란과 9.28 수복을 거친 뒤인 9월 30일 한구동 등의 노력으로서울약학대학은 국립서울대학교 (초대학장 한구동)에 편입되었다. 한편 전시, 즉 부산 피난 시절에는 성균관대, 부산대, 중앙대, 숙명여대 등의 약학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한 동안 을지로 6가에 있던 약학대학 교사는 서울대 음악대학 자리로 교사를 옮겼다가, 1959년 8월 17일 종로구 연건동 28번지로 다시 옮겨교사를 신축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6년 후인 1975년 8월 25일에는 다른 단과대학들보다 뒤늦게서울대 관악캠퍼스로 이전 합류하여 오늘의 관악 시대를 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