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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67> 창피했던 공항 소동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0-11-24 10:27 수정 최종수정 2010-12-0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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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4월 9일 일본 문부성 초청 장학생 33인 중의 한 명으로 선발된 나는 동경행 비행기를 탔다. 동경대학에서의 유학 생활 3년 반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이런 저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을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았다. 일례로 1983년 11월 ‘신일본기’라는 글을 약업신문에 발표한 적도 있다. 여기서는 그 글 중 ‘일본은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라는 주장 부분을 조금 확장해서 써 보기로 한다.

1980년 겨울, 어느 일요일, 아버지 회갑 잔치에 참석하러 가족과 함께 일시 귀국했다가 동경으로 돌아 가는 길이었다. 장소는 당시 국제공항인 김포공항. 나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KAL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일본 사람들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금요일 저녁에 워커힐에 와서 도박을 하고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동경에 돌아가야 하는 샐러리맨 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사정이 생겨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하는 그들로서는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카운터에 가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묻기도 하고 항의도 하느라 웅성거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카운터 직원들의 태도였다. 승객들의 질문과 항의에 지친 그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버렸다. 당시 그들의 서비스 수준은 그 정도이었던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화가 나 있었다.

그 때 성미 급한 한 한국인 남자가 카운터를 훌쩍 뛰어 넘어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러고는 ‘이 XX 들 다 어디 갔지?’ 하면서 항공사 직원을 찾기 시작하였다. 일본인들은 이 사람이 항공사 직원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단체로 몰려 가더니 항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언제 비행기가 떠나느냐? 만약 오늘 못 가면 무슨 대책을 세워주고, 안내라도 제대로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는 내용이었다.

카운터 안쪽에 있던 한국인 남자는 처음에는 짧은 일본어로 나름대로 상황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내자 드디어 그는 자제력을 잃었다. “야, 이XX들아, 왜 떠들어? 나도 승객이야 임마, 내 나한테 시비야? 그리고 여기가 일본이냐? 여기가 너희 나라야? 왜 떠들어? 내가 일본 가서 이렇게 떠든 적 있냐? 조용히 해, 이 XX 들아”.

한국 남자의 우렁차고 걸쭉한 욕설에 공항 카운터 앞은 한 순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무리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저게 욕이구나 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뒤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나는 우선 창피하였다. 일본 사람들, 심지어 관공서에 근무하는 일본 사람들마저도 얼마나 간 빼먹으려 들 듯 친절한지를 1년간 충격으로 경험했던 나로서는, 정말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KAL의 서비스는 무슨 꼴이며, 게다가 직원도 아닌 사람이 카운터를 뛰어 넘어가 상스런 욕설까지 퍼붓다니, 이게 무슨 나라 망신이란 말인가? 그런데 묘한 것은,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문 일본 사람의 모습에 한편으로 대한남아 (大韓男兒)의 기개 (氣槪)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극복할 수 없었던 유치한 민족적 열등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이 때부터 나는 “일본 사람은 사람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사람은 특히 한국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쿠데타나 월드컵은 물론, 때로는 사람마저 거칠고 무례하게 몰아치는 한국 사람이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일본의 어린이 교육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라’라는 소심한 내용으로 시작되지만, 우리는 내 새끼가 ‘기죽지 않고 크기만’을 바란다.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란 광고 카피도 같은 맥락은 아닐까? 일본의 교육이 꼭 옳은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조금은 사람을 무서워할 줄 아는 그런 민족이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 이야기이긴 하지만, 공항에서의 난동은 분명 부끄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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