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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54> 무상 급식과 마음의 상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0-04-13 09:58 수정 최종수정 2010-05-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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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그러니까 1950-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는 가끔 학생들에 대해 여러 가지 ‘가정조사’를 하였다. 가정 조사서에는 부모님의 학력은 어떤가? 집에 시계, 재봉틀, 라디오, 자전거 따위는 있는가? 등을 적는 란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학력에 대해서는 1-2 단계씩 졸업 학교를 상향 조정 (?) 해서 써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집안 살림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적어 내는데 큰 거리낌이 없었다.

최근 오래 전에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가 어렸을 때 이런 저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고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자존심이 강하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이 친구는 더 심했던 것 같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에 매우 공부를 잘 했었단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별도의 과외 공부를 받을 수 없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담임 선생님이 특별히 그를 무료로 과외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하셨단다. 그러나 이 친구는 공부를 안 하면 안 했지, 돈을 내고 공부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 혼자 무료로 과외를 받기는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제안을 사양했지만 그 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작지 않았다고 했다.

이 친구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집안 사정을 시시콜콜히 적어내야 하는 가정조사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도대체 왜 이 따위 가정조사를 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집에 시계나 라디오가 있으면 어떻고 또 없으면 어떻다는 것인지? 부모가 학교를 안 다녔으면 어쩌라는 것인지? 이제와 공부를 시켜줄 것도 아니고, 시계나 라디오가 없다고 사 줄 것도 아니면서 꼬치꼬치 묻기는 왜 물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아이들을 통해 손쉽게 국민들의 생활 형편을 조사해 보자는 정부의 행정편의적인 생각 때문이었겠지만, 이는 도무지 아이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헤아려 보지 않은 참으로 비교육적인 처사가 아니었던가 싶다. 가정조사가 죽기보다 싫었던 아이도 있지 않았을까? 덜 가진 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과거의 이런 정책은 과연 오늘날 우리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잉태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 전원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하도록 급식제도를 바꿀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부 학생들에게만 무상으로 급식할 것인가가 얼마 앞으로 다가온 교육감 선거의 최대 이슈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집 아이에게는 지금처럼 유상으로 급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부자집 아이까지 무료로 급식할 돈이 있으면 다른 더 급한 곳에 쓰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한다. 전원 무료 급식은 좌파적인 주장이라고 몰아치기도 한다. 한편 전원 무료급식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무상 급식이 초등학교 의무교육 원칙에 맞을뿐더러, 또 경제적으로 그 정도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급식 문제는 더 이상 돈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 가정조사 때문에 받았던 것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식 문제는 마음의 상처와 돈을 저울에 올려놓고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를 저울질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교육 지도자들이 아직도 마음의 상처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전원 무상급식은 시기 상조라 할 것이고, 상처 문제가 돈보다 더 심각하다고 판단한다면 전원 무상급식은 서둘러야 할 것이다. 다만 필자의 저울질로는 마음의 상처가 훨씬 더 무거운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옳은 결론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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