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히어리(Corylopsis coreana)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가협회회원 권 순 경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히어리’라고 하는 나무가 있다. 숲 속에 숨어 있어서 주변에 자라는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히어리는 전라도 지리산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고 경기도 광덕산, 백운산에도 분포하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조록나뭇과에 속하는 2~4미터 정도 높이로 자라는 작은 낙엽관목으로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자란다. 비교적 커다란 둥근 모양의 잎을 갖고 있고 서로 어긋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다.
3~4월 잎이 돋아나기 전에 노란색 꽃이 피는데 8~12개의 꽃으로 이루어진 이삭처럼 생긴 꽃송이가 아래를 향해 주렁주렁 매달린다. 꽃받침, 꽃잎이 각각 5개씩이고 수술 5개 암술대는 2개이며 꽃밥은 갈색이다. 최근 들어 고궁이나 식물원에 식재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자생지에는 개체 수가 줄어들기에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것은 꽃가루받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충매화인 경우는 곤충이 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이고 풍매화인 경우는 나뭇잎이 바람에 의한 꽃가루 이동에 방해가 되므로 이를 피하려는 것이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므로 꽃가루받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결실을 보게 하는 것은 종족 보존을 위한 일생일대의 막중한 사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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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생체시계로 밤의 길이와 기온변화를 감지하여 꽃피는 시기를 조절한다. 밤의 길이가 짧아지면 즉 낮의 길이가 길어질 때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장일성식물(長日性植物)이라고 하고 봄꽃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는 반대로 밤의 길이가 길어지면 즉 낮의 길이가 짧아질 때 꽃을 피우는 식물을 단일성식물(短日性植物)이라 하고 가을꽃이 여기에 속한다. 밤과 낮의 길이와 무관하게 꽃을 피우는 식물을 중일성식물(中日性植物)이라하고 계절과 관계없이 꽃을 피운다.
‘히어리’라는 식물명을 처음 접했을 때 어감이 토종 우리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외래종 식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히어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924년 일본 식물학자 우에키 호미키 박사가 전라도 조계산 송광사 부근에서 히어리를 처음 채집했고 송광납판화(松廣蠟瓣花)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발견 장소가 송광사 부근인 점을 고려하여‘송광’에 ‘납판화’란 한자를 더한 것이다.
납판화는 꽃받침과 턱잎이 마치 투명한 종이에 밀랍 먹인 것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1960년대 초 서울대 이창복 교수는 전남지역 식물조사단과 동행 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에 주목하게 되었다.
가사 내용은‘뒷동산 히어리에 단풍들면 우리네 한 해 살림도 끝이로구나’였다. 가사 속‘히어리’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송광납판화를 가리켰다. 송광납판화라는 딱딱한 한자 이름이 못마땅했던 이 교수는‘히어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학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송광사 인근 마을의 사투리인‘히어리’의 어원의 뜻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십오리→시오리→히어리로 변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이 있다. 히어리가 십 오리에 하나씩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속명 코리로프시스(Corylopsis)는 희랍어로 ‘개암’을 뜻하는 코리로스(corylos)와 ‘닮았다’다는 뜻의 오프시스(opsis)의 합성어로‘개암나무를 닮았다’는 뜻이다. 코레아누스(coreanus)는‘한국’을 뜻한다.
말린 뿌리껍질을 민간약으로 사용하는데 열이 나서 오한이 올 때 또는 구역질이 날 때 끓인 물을 마신다. 알려진 성분으로 베르게닌(bergenin)이 있고 잎에는 퀘르시트린(quercitrin)을 함유한다. 가을에 노랗게 단풍도 예쁘게 들므로 관상식물로도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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