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는 다양한 예술가들 중에서도 여성, 장애인, 소수 민족, 성소수자 예술가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이 사회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정립해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다. 본 칼럼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관객을 포용하기 위한 국내·외 예술단체의 기획을 통해 예술이 새롭게 나가야 할 길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국외 사례로 먼저 카네기홀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뮤지컬 커넥션'이 있다. 그 중 자장가 프로젝트는 위탁보육시설, 노숙자 쉼터, 고등학교, 교정시설 거주 중인 부모, 임산부들과 예술가들이 일대일로 팀을 이뤄 자장가를 완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부모들이 작사, 음악가들이 작곡해 아이를 위한 자장가를 완성한다. 참여 부모들이 음악을 통해 행복감을 느껴 아기에 대한 애정이 건강하게 형성되고 부모와 자녀의 유대감이 강화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내에서도 2년 전 위성 프로젝트 ‘엄마의 작은 노래’가 진행된 바 있다. 사회참여음악가네트워크, 카네기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함께한 이 프로그램에서는 부모들의 음악적 취향이 반영되어 댄스풍의 자장가, 옹알이 랩 등 자장가의 고정관념을 깬 작품들이 완성되어 참여한 부모들은 물론 참여 음악가들에게도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가 되었다.
다음은 이스라엘 필하모니의 'Sulamot' 프로그램이다. 히브리어로 사다리와 음계를 의미하는 Sulamot의 이름에는 음악적 경험을 통해 사회 속에서 성공적인 사다리를 밟아가길 바라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사회의 변화를 위한 음악”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운영되는 Sulamot는 음악을 가르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음악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함께 연주하는 시간동안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책임감과 협동심을 키우는 것이 이스라엘 필하모닉이 추구하는 프로그램의 본질이다.
그들의 운영 철칙 중 인상적인 것은 홍보를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오·남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사진촬영이 불가하다. 이스라엘 사회의 신념이 듬뿍 반영된 Sulamot는 어린이를 사랑으로 포용하는 자세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음악 교육 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아동들의 생활 전반을 지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실제 사례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세 번째는 싱가포르 에스플레네이드 공연장의 자페 스펙트럼 아동들을 위한 연극 교육 공연이다, 싱가포르 작가의 창작 동화를 재구성한 연극으로 이 중 일부 회차를 'Playtime! for Sensory Friendly kids'라는 타이틀로 자폐 스펙트럼 아동을 위한 공연으로 재편성했다. 무대와 객석을 일반 공연보다 밝게 하고, 큰 소리에 취약한 아동들을 위한 사운드 레벨 조절, 자유로운 출입을 가능케 한 배려, 소규모 그룹의 관객, 아이들이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진정할 수 있는 공간을 로비에 따로 만들기 등 공연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줄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들은 공연장에 직접 와서 관람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공연 전체에 깔린 세심한 배려와 즐거웠던 공연 분위기, 성공적인 관람 후기는 모든 아동들이 예술을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예술가들이 관객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소수 관객층을 위한 공연들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고 공연예술계 자체가 어려운 이 때 더욱 더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신나는 예술여행'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하는 문화복지 사업으로 지역사회를 찾아가 공연을 하는 국가 지원 사업으로 군부대, 복지관, 정신병동 등 다양한 관객들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관람한 몇몇 공연 중에서, 교정시설 수감자들과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의 공연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 중 하나이다.
교정시설에서의 공연은 그나마 모범수들만 접할 수 있었는데 교화를 목적으로 한 연극이라 분위기 자체도 무겁고 분위기도 진지했다. 연극 연출가가 공연 전 날 전화를 걸어와 “기가 많이 뺏기고 힘드실 거예요. 고기 드시고 오세요.”라고 당부했던 것까지 기억이 생생한데, 그만큼 쉬이 접할 수 없는 특별한 공기가 감돈 공연이었다.
열악한 환경의 정신병원의 공연은 다른 의미에서 분위기가 무거워진 공연이었다. 환자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어 이렇게나마 공연을 보는 것이 그들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사회에서 잊힌 그들- 특히 교정시설 수감자-을 포용하는 것에 불편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은 사회의 극단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사회 전체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특정 계층에만 비교적 편향되어 향유되던 예술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는 사회가 현대 예술에 내 준 새로운 숙제이다. 모든 관객층을 포용하는 예술은 어렵지만 다양한 관객을 위한 다양한 형태는 예술계가 질적·양적 모든 차원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소수를 위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이 때, 기존 관객층을 위한 공연이나 기존의 형태를 답습하는 예술의 형태는 비판의 소지도 많아진다. 10년 전만 해도 별탈 없이 넘어갔던 여성에 대한 표현들이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소수자가 더 이상 그늘에 가려지지 않는 시대가 된 지금 예술이 사회가 던지는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 되어 다양한 관객층을 포용해 나간다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까.
<필자소개>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