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멸의 신화’ 아더왕 전설이 또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6세기 영국, 혼란했던 시대를 정리할 단 한 명의 영웅은 아무나 주인이 될 수 없다던 보검 ‘엑스칼리버’를 거머쥐고 연이어 승리의 깃발을 올렸다. 영웅이란 존재는 당시 사람들에게 빛이자 희망이었다. 운명처럼 만난 기네비어 이야기나 랜슬럿을 비롯한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나눈 무용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이 설화는 서양 판타지 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하며 끝없는 생명력을 입증했다. 이번에 소개할 뮤지컬 ‘엑스칼리버’ 역시 그 맥을 잇는다.
<사진제공 : EMK>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지난 8월 17일 재연으로 돌아왔다. 2019년 초연 당시 새로운 대작의 등장을 알리며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올 시즌을 맞아 탄탄히 재정비를 마쳤다. 덕분에 마치 새로운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만큼 꽤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우선 스토리를 강화해 전체적인 흐름이 훨씬 부드럽고 촘촘하게 전개될 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가 갖는 성격과 사연도 더 뚜렷해졌다. 상황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 변화 또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여기에 다섯 가지 넘버를 추가하고 기존 넘버들도 다듬으면서 본디 작품이 가지고 있던 웅장함은 살리고 섬세함을 더했다. 그만큼 곳곳에 애정 가득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작품은 오는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전설의 영웅 아더 역에는 뮤지컬 배우 김준수, 카이, 서은광, 도겸이 캐스팅됐다. 그리고 이지훈·에녹·강태을이 랜슬럿 역을, 신영숙·장은아가 모르가나 역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이 밖에도 민영기·손준호(멀린 역), 최서연·이봄소리(기네비어 역), 이상준(울프스탄 역), 이종문·홍경수(엑터 역)가 가세하며 에너지 가득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천지개벽을 알리는 듯한 북소리가 들리면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더 펜드라곤왕이 일으켰던 전쟁은 모두를 끔찍한 지옥으로 몰았다. 무자비한 영토싸움 끝에 갈기갈기 찢긴 나라는 수많은 백성의 희생을 대가로 했다. 하지만 잔혹했던 왕이 품은 탐욕은 단지 영토를 빼앗는 데서만 그치지 않았다. 결국 그릇된 욕망으로 탄생한 아들 아더가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바위산에 꽂힌 엑스칼리버를 뽑아 들어야 하는 운명을 지게 된다.
어려서부터 아더와 형제처럼 자라온 친구 랜슬럿과 용맹한 여전사 기네비어도 새로운 왕의 곁을 지키며 눈앞에 닥친 위험을 막아내려 한다. 그 와중에 호시탐탐 침략 기회를 엿보던 색슨족과 아더의 이복 누이 모르가나가 협력해 온갖 술수로 그들을 압박하고, 이 모든 상황을 예감한 마법사 멀린은 왕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슴 아픈 일들을 뒤로 한 채 그가 혼자 걸어야 할 길은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었기에 더 안쓰럽다.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그런 아더왕의 여정을 쭉 지켜본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흥미로운 모험담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대로 인해 더욱 빛난다. 거대 규모를 자랑하는 무대 장치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만큼 실감 나는 연출과 어우러져 극적인 효과를 배가한다. 특히 무서운 기세로 압박하던 색슨족의 진격과 쏟아지는 빗속에서 벌어진 최후 전투는 보기 드문 명장면이다.
등장인물을 색으로 표현한 부분도 재미있다. 모든 캐릭터는 인물이 처한 상황 또는 심리 변화에 따라 의상 색깔을 달리하거나 다양한 색의 조명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존재감을 분명히 한다. 아더의 경우 초반에는 순수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청년다운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밝은색 의상을 입지만, 극 중반부터 검은색 의상을 착용하며 인물이 처한 상황의 무게와 분노를 드러낸다. 또 마법사이자 예언가인 멀린은 신비로운 보라색,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살아야만 했던 흑마법사 모르가나는 초록색, 그리고 잔인무도하면서도 공격적인 색슨족 수장 울프스탄은 빨간색 조명을 써서 각 캐릭터가 가진 이미지를 부각했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각인된 감상은 히트메이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만든 넘버들과 어우러져 작품이 가진 신비로운 분위기에 흠뻑 젖어 들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아더의 대표 넘버 ‘왕이 된다는 것’과 신곡인 ‘결코 질 수 없는 싸움’, 랜슬럿이 부른 ‘없는 사랑’, 기네비어의 진심이 잘 드러난 ‘붙잡으려 해도’는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넘버들이다.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났지만 미숙한 부분도 많았던 한 청년은 온갖 어려움과 맞선 끝에 결국 진정한 왕으로 거듭났다. 사랑과 우정, 음모와 배신이 얽힌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멋지게 성장한 아더가 더욱더 대단하게 여겨진 까닭은 어쩌면 그 모습이 지금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 당당한 자태로 우뚝 선 그는 오늘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 평범한 영웅들의 모습 그 자체다.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전한 용기와 희망은 많은 이들에게 따스한 격려로 남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