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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커튼 콜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무대 속 이야기_뮤지컬 시카고

편집부

기사입력 2021-06-18 11:22     최종수정 2021-06-18 11:4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의 세계로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깃거리죠.” 막이 오르면 등장하는 뮤지컬 ‘시카고(Chicago)’의 첫 대사다.
1975년 초연됐다. 사실 70년대 브로드웨이 공연가는 흔히 침체기 혹은 암흑기라 명명한다. 급격하게 줄어든 관객 탓이다. 안방극장이라 불리는 TV가 등장했고, 젊은이들의 문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부모가 아이들 손을 잡고 공연장을 향하지 않았다. 뉴욕 상업 공연가의 절반 가량이 문을 닫았다는 기록도 있다. 대중문화의 모든 것이라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컬 산업으로선 그야말로 ‘때 아닌 날벼락’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바로 이 시기 브로드웨이 불세출의 명작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시카고’다. 1920년대 격변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여동생과 바람난 남편을 죽인 보드빌 여가수 벨마 켈리와 남편 몰래 만나던 애인이 이별을 선언하자 복수를 한 유부녀 록시 하트가 얼렁뚱땅 언론과 배심원을 속여 어떻게 무죄 선고를 받는가가 주요한 줄거리다. 돈만 밝히는 변호사 빌리 플린과 교도소장 마마 모튼, 하이에나처럼 썩은 냄새 나는 사건만을 쫓는 선정적인 언론과 기자들이 공모자로 가세한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무죄 방면된 두 살인녀가 자신들처럼 정직한(?)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 미국을 찬양한다는 대사가 나오면 뒷맛 씁쓸한 이 작품의 묘미는 절정을 이룬다.

대부분 흥행작들이 그렇듯, 이 뮤지컬 역시 수많은 뒷이야기와 풍자 속에 감쳐진 진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감상법이다. 늘 그렇지만 공연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기’ 마련이다. 

먼저 기자들이 그렇다.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사건만 쫓는 뮤지컬 속 신문기자들은 온갖 자극과 센세이션만을 찾아다닌다. 꼭두각시처럼 록시를 무릎에 앉히고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이야기를 꾸며대는 변호사 빌리 플린의 기자회견에 꼼짝없이 농락당하는가 하면, 결심공판의 마지막 순간에는 기관총으로 수십명을 살해했다는 또 다른 경악할만한 법정 살인사건을 취재하려 우르르 몰려나간다. 심지어 “보이는 것과 본질은 다르다”는 빌리의 마지막 변론과 함께 여성스러웠던 메리 선샤인 기자의 가발이 벗겨지면 굵직한 팔뚝의 우락부락한 사내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요즘 온라인상에서 흔히 거론되는 ‘기레기’들처럼 언론이나 기자들의 속성을 발가벗겨 버린 것 같아 “시원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과 ‘낚시질’이 판을 치는 요즘 인터넷 세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뮤지컬에 등장하는 신문기자들의 모습은 오늘날이 아닌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바로 일전신문(Penny Paper)시대의 전형적인 선정주의 언론, 떼거리 저널리즘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선 급격한 산업화가 등장했고 도시화도 빠르게 전개됐다. 신문이 지닌 박리다매의 경제적 가치를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미국 17개 도시에서 일간지를 발간했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자극적인 보도로 최고의 발행 부수를 기록했던 조지프 퓰리처가 피 튀기는 신문 판매 경쟁을 벌였다. 퓰리처가 발행했던 ‘뉴스 월드’의 일요일판에선 노란 옷을 입은 소년이 등장하는 만화가 연재됐는데 워낙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리자 허스트의 ‘모닝 저널’이 바로 이를 흉내 내는 등 온갖 자극과 선정적 보도 경쟁이 판을 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때 생겨난 이름인 ‘옐로우 저널리즘(황색 언론, Yellow Journalism)’이란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파행적인 언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퓰리처상은 그 당시 선정적인 언론보도로 엄청난 부를 쌓았던 퓰리처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재산 일부를 들여 만든 콜롬비아 대학 신문학부 창설 기부금으로 제정된 것이다. ‘갈 때까지 간’ 신문이 스스로 자정(自淨)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낸 이른바 인위적인 권위인 셈이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신문기자들은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봐야 더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풍자적인 이미지와 존재들이다.  


오랫동안 우리말 무대가 인기를 누리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시카고를 거쳐간 여배우들로는 옥주현, 인순이, 전수경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바쁘다. 하지만 단연 히로인이라면 역시 최정원이다. 그녀는 우리말 초연 당시 록시로 나왔으며 지금은 벨마로 변신해 한국어‘시카고’의 산 증인이라 불린다. 오로지 변함없는 것은 그녀가 어떤 역할로 무대에 등장하면 늘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열정을 뿜어낸다는 ‘사실’뿐이다. 최정원의 일거수일투족에 쏟아지는 관객들의 웃음과 박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운 볼거리다. 

2021년 코로나 19의 팬데믹 속에서 막을 올린 올해 앙코르 무대에선 뮤지컬 배우 윤공주, 가수 출신의 실력파 배우 아이비, 최근 블루칩으로 급부상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민경아 가 등장한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였던 티파니도 티파니 영이라는 무대명으로 합류했다. 정식 오디션을 통해 선발돼 화제가 됐는데 직접 무대와 안무를 구상하고 참여해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아이돌 스타들의 무대가 일취월장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마케팅 차원을 넘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반가운 만남도 자주 볼 수 있어 반갑다. 

2000년대 초반엔 뮤지컬 영화도 인기였다. 변호사 빌리 플린 역의 리차드 기어도 좋았지만, 르네 젤위거와 캐더린 제타 존슨이 펼치는 관능미 대결은 지금 다시봐도 여전히 짜릿하다. 영화는 무대의 흥행과 반비례가 아닌 비례관계였다. 영화가 무대로부터 거리를 두는 파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무대를 아는 사람들은 영화의 변신이 궁금해 스크린을 찾고, 영화로 처음 ‘시카고’를 접한 사람들은 원작의 예술성이 궁금해 공연장을 찾는 경우가 흔했다. 비대면의 일상화가 낯설지 않은 요즘이지만 무대와 영상을 비교해가며 감상해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같은 배경 탓이다. 기억해둘 만한 요즘 문화예술계의 핫 트렌드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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