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합창 교향곡과 송년 음악회
편집부
인류애가 강조된 쉴러(F. Schiller, 1759-1805)의 <환희의 송가, Ode an die Freude>가 삽입된 베토벤(1770-1827)의 교향곡 9번 <합창>은 특별한 순간에 자주 연주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1989년 크리스마스에 베를린에서 울려퍼진 합창 교향곡일 것입니다. 같은 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는 음악회였지요.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리라” “모든 사람들아, 서로 포옹하라” 라는 텍스트가 담긴 합창 교향곡은,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누던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기에 더없이 적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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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콘서트홀의 오프닝 공연에서도 합창 교향곡은 자주 연주되었습니다. 1888년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Concertgebouw), 1963년 베를린의 필하모니(Philharmonie), 1986년 도쿄의 산토리 홀(Suntory Hall)의 첫 공연에서 모두 합창 교향곡이 울려퍼졌죠. 1872년 바그너가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Bayreuther Festspielhaus)의 공사 착수를 기념할 때 연주된 곡도, 이 극장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2차 대전의 여파로 중단되다 1951년 다시 재개되었을 때 연주된 곡도 합창 교향곡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순간, 그리고 오프닝 공연과 더불어 합창 교향곡이 자주 연주되는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분명 송년 음악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에서 서울시향과 KBS 교향악단 등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매년 12월에 꾸준히 연주하는 관계로, 송년 음악회에서 합창 교향곡이 연주되는 구성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요.
일본 역시 이러한 구성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곳입니다. 아니, 일본만큼 이 구성이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곳도 드물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일본의 대표적인 홀은 산토리 홀의 음악회 일정을 살펴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데요. 2004년부터 검색이 가능한 산토리 홀의 콘서트 아카이브를 보면, 합창 교향곡 연주되는 일정이 12월 말에 4-5일 연속으로 잡혀 있는 것을 매년 볼 수 있습니다. 연속으로 잡혀 있는 일정 외에도 12월에는 대게 몇 개의 합창 교향곡 공연이 더 자리잡곤 하지요. 얼마 전 실린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사의 제목은 일본 사람들의 합창 교향곡을 향한 애정을 잘 나타냅니다. “일본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다(In Japan, Beethoven’s ‘Ode to Joy’ is a Christmas carol)”
1989년 크리스마스에 베를린에서 합창 교향곡을 지휘했던 번스타인 (© dpa)
한국과 일본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송년 음악회=합창 교향곡’의 전통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이 전통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악단을 찾으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바로 라이프치히에 있는 유서깊은 악단인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입니다. 세계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베토벤 생전에(1825/26 시즌) 해낸 악단이기도 하죠. 송년 음악회에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전통은 1918년,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니키쉬(A. Nikisch, 1855-1922)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100년이 넘은 전통인 것이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이 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던 샤이(R. Chailly, b. 1953)에 따르면, 이 전통은 세계대전 중에도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계적인 전통은 올해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다름아닌 코로나19 때문이죠. 겨울에 접어들며 유럽 각지에서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자, 공연 자체가 취소된 것입니다. 이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이런 뉴스를 통해서도 새삼 깨닫습니다. 길게 이어지던 전통에 타격을 입은 악단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만이 아닙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송년 음악회도, 그리고 새해 첫 날의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도 사상 처음으로 청중 없이 치러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얼마 전 열렸던 서울시향의 송년 음악회도 마찬가지였고요.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방 안에서 수많은 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콘서트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척이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며, 코로나19라는 이 길고 긴 터널을 통과하여, 합창 교향곡을 다시 콘서트홀 현장에서 들으며 감격할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래봅니다.
음반추천: 1989년 크리스마스에 베를린에서 열렸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했던 공연입니다. 번스타인이 지휘했으며, 독일,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나라들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함께 참여하여 음악회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이 공연에서 번스타인은 텍스트 중 환희(Freude/Joy)를 자유(Freiheit/Freedom)로 바꾸어 부르게 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n0IS-vlwCI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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