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음악회, 두 번의 합창 교향곡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라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내년이면 초연된 지 꼭 200주년이 되는 <합창 교향곡>은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작품이지만 사실 이 작품의 연주를 준비하는 것도 그리고 이를 감상하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이 작품의 연주를 위해서는 오케스트라에 합창단과 4명의 성악 독창자들이 참여해야 하니 오케스트라만 연주되는 보통의 교향곡 연주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연주시간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되니까요. 브루크너(A. Bruckner, 1824~1896)나 말러(G. Mahler, 1860~1911)처럼 장대한 교향곡을 작곡한 이들이 후대에 나타났지만, <합창 교향곡>은 여전히 연주에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연주 시간도 긴 교향곡들 중 하나입니다.
이런 <합창 교향곡>이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달아 연주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연주자들과 청중들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꼭 연주 시간과 체력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합창 교향곡>을 연달아 연주한다면 연주 시간은 두 시간 반이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이겠고 전체 음악회는 휴식 시간 포함 3시간 정도 걸리겠지요. 물론 보통의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이는 매우 긴 시간이지만 사실 이 정도는 우리가 오페라나 뮤지컬을 관람할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음악 안에 내재되어 있는 드라마가 완결되었는데 이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합창 교향곡>은 듣는 이에게 벅찬 감격을 선사하며 매듭지어지는데 그렇게 끝난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고 감상해야 한다는 것은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도 지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연주회에서 <합창 교향곡> 두 번 연주하는 것을 성사시킨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최초의 직업 지휘자로서 19세기 후반에 큰 명성을 떨친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 1830-1894)입니다. 뷜로는 놀랍게도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네 번이나 이런 독특한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그 시작은 1880년 12월, 독일 마이닝엔 궁정 오케스트라를 지휘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뷜로는 그 해 가을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약하기 시작했지요. 1885년까지 뷜로가 마이닝엔에서 상임 지휘자로 있는 동안 <합창 교향곡>은 1881년과 1884년에 그의 지휘 아래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주되었습니다. 뷜로가 마지막으로 <합창 교향곡>을 연달아 지휘했던 때는 1889년으로 이 때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마이닝엔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시 뷜로는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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뷜로는 왜 이렇게 독특한 기획을 하였던 것일까요? 그의 목적은 두 가지였는데, <합창 교향곡> 외 다른 작품을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합창 교향곡>에 더 많은 리허설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것과 청중에게 이 작품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녹음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이어서 사람들이 <합창 교향곡>을 감상하려면 음악회에 오는 수밖에 없었으니 뷜로의 두 번째 목적은 어쩌면 이해가 가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 의아한 것은 첫 번째 목적인데, 음악회에서 다른 작품을 연주하지 않고 <합창 교향곡>만 한 번 연주해도 리허설때 이 작품에 전력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굳이 두 번일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합창 교향곡>이 연주된 몇몇 음악회의 프로그램을 보면, 각각 약 15분과 40분이 소요되는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제3번>과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뒤에 <합창 교향곡>이 배치되어 있는 등 오늘날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긴 경우들이 있지만, 반대로 <합창 교향곡>만 있거나 길지 않은 서곡과 <합창 교향곡>이 배치된 경우들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우리는 뷜로의 베토벤 음악을 향한 열정에서 그의 이 기획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당대의 손꼽히는 베토벤 음악의 해석가였던 뷜로는, 1880년 10월 마이닝엔 궁정 오케스트라에 취임한 후, 11월부터 7주 동안 매주 일요일에 음악회를 열어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과 주요 관현악 작품들, 그리고 협주곡들까지 연주해내는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80일간의 베토벤 여행 (Reise um Beethoven in 80 Tagen)’이라 일컬은 이 일정의 마지막이 바로 <합창 교향곡>을 두 번 연주하는 것이었지요. 이 모든 일정을 위해 뷜로와 오케스트라는 무려 약 200번의 리허설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궁금한 것은 뷜로가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연달아 지휘했을 때 두 연주 간에 해석상의 차이가 존재했는지의 여부인데, 마이닝엔에서의 한 음악회에 참석했던 이로부터 두 번째 연주에서 첫 번째 연주 때와는 다른 템포 설정에 대한 언급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뷜로가 이 작품을 연달아 지휘하며 해석상의 차이를 두고자 시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뷜로는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지휘한 유일한 지휘자일까요? 흥미롭게도 뷜로 이후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이 지휘자의 이름은 발터 담로쉬(W. Damrosch, 1862-1950)인데 그는 1909년 3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뷜로가 이전에 했던 이 기획을 실현시켰습니다. 담로쉬는 1887년 여름 뷜로에게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세세하게 배웠던 경험이 있으니 뉴욕에서 열렸던 그 음악회는 다분히 뷜로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이었겠지요.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달아 연주하는 기획. 물론 다시 실현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그 때는 전반부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원곡을 연주하고, 후반부에는 이를 말러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해보는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훗날 누군가가 오래전의 뷜로처럼 대담하게 이 기획을 실현 시켜 주기를 바래봅니다.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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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음악회, 두 번의 합창 교향곡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라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내년이면 초연된 지 꼭 200주년이 되는 <합창 교향곡>은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작품이지만 사실 이 작품의 연주를 준비하는 것도 그리고 이를 감상하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이 작품의 연주를 위해서는 오케스트라에 합창단과 4명의 성악 독창자들이 참여해야 하니 오케스트라만 연주되는 보통의 교향곡 연주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연주시간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되니까요. 브루크너(A. Bruckner, 1824~1896)나 말러(G. Mahler, 1860~1911)처럼 장대한 교향곡을 작곡한 이들이 후대에 나타났지만, <합창 교향곡>은 여전히 연주에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연주 시간도 긴 교향곡들 중 하나입니다.
이런 <합창 교향곡>이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달아 연주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연주자들과 청중들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꼭 연주 시간과 체력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합창 교향곡>을 연달아 연주한다면 연주 시간은 두 시간 반이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이겠고 전체 음악회는 휴식 시간 포함 3시간 정도 걸리겠지요. 물론 보통의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이는 매우 긴 시간이지만 사실 이 정도는 우리가 오페라나 뮤지컬을 관람할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음악 안에 내재되어 있는 드라마가 완결되었는데 이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합창 교향곡>은 듣는 이에게 벅찬 감격을 선사하며 매듭지어지는데 그렇게 끝난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고 감상해야 한다는 것은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도 지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연주회에서 <합창 교향곡> 두 번 연주하는 것을 성사시킨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최초의 직업 지휘자로서 19세기 후반에 큰 명성을 떨친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 1830-1894)입니다. 뷜로는 놀랍게도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네 번이나 이런 독특한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그 시작은 1880년 12월, 독일 마이닝엔 궁정 오케스트라를 지휘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뷜로는 그 해 가을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약하기 시작했지요. 1885년까지 뷜로가 마이닝엔에서 상임 지휘자로 있는 동안 <합창 교향곡>은 1881년과 1884년에 그의 지휘 아래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주되었습니다. 뷜로가 마지막으로 <합창 교향곡>을 연달아 지휘했던 때는 1889년으로 이 때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마이닝엔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시 뷜로는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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뷜로는 왜 이렇게 독특한 기획을 하였던 것일까요? 그의 목적은 두 가지였는데, <합창 교향곡> 외 다른 작품을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합창 교향곡>에 더 많은 리허설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것과 청중에게 이 작품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녹음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이어서 사람들이 <합창 교향곡>을 감상하려면 음악회에 오는 수밖에 없었으니 뷜로의 두 번째 목적은 어쩌면 이해가 가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 의아한 것은 첫 번째 목적인데, 음악회에서 다른 작품을 연주하지 않고 <합창 교향곡>만 한 번 연주해도 리허설때 이 작품에 전력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굳이 두 번일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합창 교향곡>이 연주된 몇몇 음악회의 프로그램을 보면, 각각 약 15분과 40분이 소요되는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제3번>과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뒤에 <합창 교향곡>이 배치되어 있는 등 오늘날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긴 경우들이 있지만, 반대로 <합창 교향곡>만 있거나 길지 않은 서곡과 <합창 교향곡>이 배치된 경우들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우리는 뷜로의 베토벤 음악을 향한 열정에서 그의 이 기획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당대의 손꼽히는 베토벤 음악의 해석가였던 뷜로는, 1880년 10월 마이닝엔 궁정 오케스트라에 취임한 후, 11월부터 7주 동안 매주 일요일에 음악회를 열어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과 주요 관현악 작품들, 그리고 협주곡들까지 연주해내는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80일간의 베토벤 여행 (Reise um Beethoven in 80 Tagen)’이라 일컬은 이 일정의 마지막이 바로 <합창 교향곡>을 두 번 연주하는 것이었지요. 이 모든 일정을 위해 뷜로와 오케스트라는 무려 약 200번의 리허설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궁금한 것은 뷜로가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연달아 지휘했을 때 두 연주 간에 해석상의 차이가 존재했는지의 여부인데, 마이닝엔에서의 한 음악회에 참석했던 이로부터 두 번째 연주에서 첫 번째 연주 때와는 다른 템포 설정에 대한 언급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뷜로가 이 작품을 연달아 지휘하며 해석상의 차이를 두고자 시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뷜로는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지휘한 유일한 지휘자일까요? 흥미롭게도 뷜로 이후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이 지휘자의 이름은 발터 담로쉬(W. Damrosch, 1862-1950)인데 그는 1909년 3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뷜로가 이전에 했던 이 기획을 실현시켰습니다. 담로쉬는 1887년 여름 뷜로에게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세세하게 배웠던 경험이 있으니 뉴욕에서 열렸던 그 음악회는 다분히 뷜로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이었겠지요.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달아 연주하는 기획. 물론 다시 실현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그 때는 전반부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원곡을 연주하고, 후반부에는 이를 말러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해보는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훗날 누군가가 오래전의 뷜로처럼 대담하게 이 기획을 실현 시켜 주기를 바래봅니다.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