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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편집부
입력 2022-12-30 11:27 수정 최종수정 2023-01-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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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주곡과 카덴차, 서로 다른 개성의 공존

1809년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은 그의 다섯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시킵니다. ‘황제’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지난 칼럼에서 언급하였다시피, 카덴차의 역사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베토벤이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카덴차와 당시에 통상적으로 카덴차가 위치하는 곳에 카덴차 대신 써놓은 악구 모두 베토벤이 직접 작곡함으로써, 연주자에 의한 자유로운 변형의 가능성을 없애버렸기 때문이지요. 카덴차가 본래 독주자가 홀로 작품의 주제를 즉흥적으로 변주해가며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부분임을 생각한다면, 황제 협주곡에서 베토벤이 카덴차를 다루는 방식은 그 성격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황제 협주곡이 완성되었던 1809년 즈음에, 베토벤은 다수의 카덴차들을 작곡합니다. 이 카덴차들은 그가 이전에 지었던 피아노 협주곡들(1-4번)과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피아노 협주곡으로 편곡한 작품(Op. 61a), 그리고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의 피아노 협주곡 20번(KV 466)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악보들은 그의 제자이자 중요한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Rudolf Erzherzog von Österreich, 1788-1831)의 음악소장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 존재한 베토벤의 카덴차는 총 17개로, 그 중 대부분이 1809년경 작곡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상당한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자신의 제자의 부탁으로 지은 카덴차들이었지요. 1836년에 출판된 모차르트의 협주곡에 쓴 카덴차와는 달리, 베토벤이 자신의 협주곡들에 쓴 카덴차들은 그가 사망하고 나서도 한참 후인 1864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 때에는 17개의 카덴차들 중 12개가 출판되었는데, 모든 카덴차들이 출판된 때는 1967년에 이르러서였지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4번에서 그가 쓴 카덴차들이 오늘날 연주자들에 의해 가장 빈번하게 선택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이 작품들을 창조해냈고 가장 잘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 작곡가 자신이 만든 카덴차들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베토벤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지요. 이와 같은 생각은 역시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모차르트가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위해 쓴 카덴차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선택하는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카덴차. 그런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아쉬움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그만큼 연주자 개인의 카덴차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그들만의 개성이 줄어든다는 데에 그 아쉬움이 있습니다. 같은 베토벤의 카덴차를 연주하더라도, 연주자 A와 B의 연주는 당연히 다르고, 이 다름을 비교하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카덴차 자체가 다르다면, 그 흥미는 더 커질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연주자만의 개성 넘치는 카덴차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작곡가가 지은 카덴차가 그 협주곡에 가장 이상적으로 조화되는 것이 아닐까?’ 이 지점에서 살펴봐야 할 것은, 베토벤이 지은 피아노 협주곡 1-4번의 카덴차에 대한 평가입니다. 대부분 1809년경 지어진 이 카덴차들은, 각각의 협주곡이 완성된 시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806년에 완성된 4번 협주곡과는 3년여의 차이를, 1801년에 최종 완성된 1번과 2번 협주곡과는 8년여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요. 1801년에 최종 버전이 탄생했다지만, 이 두 협주곡들의 작곡이 1790년대에 사실상 거의 끝났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8년이라는 차이는 조금 더 늘어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 카덴차들은 두말할 필요없이 훌륭하지만, 그 스타일이 원래의 협주곡들과 차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토벤 연주로 명성이 높은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W. Kempff, 1895-1991)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4번을 연주하면서 베토벤의 카덴차가 아닌, 자신이 직접 작곡한 카덴차를 사용했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시간 차이를 두고 완성된 협주곡과 카덴차 사이의 스타일 차이는 악기의 차이에서도 기인합니다. 카덴차를 작곡하던 당시, 베토벤은 새로운 피아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를 만드는 회사마다 소리의 차이가 상당했으며 피아노의 성능이 빠르게 변화하던 베토벤 당대에 ‘새로운 피아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안에 담겨진 변화가 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베토벤이 카덴차들을 작곡하면서 당연히 새로운 피아노의 성능을 잘 살리는 것에도 최선을 다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는 카덴차에서의 음폭이 일부 협주곡에서보다 더 넓은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베토벤의 새로운 피아노가 그가 이전에 사용하던 것보다 더 넓은 음폭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베토벤이 작곡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KV 466) 1악장 카덴차, 첫 페이지
(출처: Beethovenhaus Bonn 홈페이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과 카덴차에서 보여지는 스타일의 차이가 그의 카덴차의 가치를 다소 떨어뜨릴까요?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지점을 제시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1809년 당시의 베토벤의 스타일을,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작품 안에서 느낄 수 있으니까요. 서로 다른 두 스타일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이 협주곡을 위한 베토벤의 유명한 카덴차에서 잘 드러납니다. 베토벤만의 개성은 모차르트의 이 협주곡이 갖고 있는 극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켰지요.

작곡가가 비워둔 카덴차의 매력은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예전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았던 작곡가 자신의, 혹은 크라이슬러(F. Kreisler, 1875-1962)나 요아힘(J. Joachim, 1831-1907)처럼 유명한 연주자의 카덴차를 연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적지 않은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카덴차를 선택함으로서 그 표현의 다양성을 더하였지요. 때로는 작곡 당시의 연주 양식을 충분히 살리면서, 또 때로는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하며 협주곡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작품 안에서 서로 다른 개성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협주곡 안의 카덴차. 익숙한 협주곡의 울림 속에 예상치 못한 특별한 흥미를 더해줄 개성 넘치는 카덴차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탄생되기를 바래봅니다.

추천영상: 베토벤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피아노 협주곡으로 편곡하였습니다. 이 편곡 작품은 현재 자주 연주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원곡에는 존재하지 않는 베토벤의 카덴차가 이 편곡 작품에 존재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지요. 독주 피아노에 팀파니를 포함시킨 1악장 카덴차의 독창적인 면은 특별한데, 적지 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카덴차를 바이올린으로 편곡해서 연주했습니다. 소개하는 영상은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의 연주입니다. 코파친스카야는 베토벤의 카덴차에 본인의 개성을 거침없이 녹여냈는데, 원래의 팀파니에 바이올린과 첼로를 더하였지요. 강약의 폭을 확대시킨 매우 강렬한 느낌의 이 카덴차 연주는 베토벤의 스타일과는 상당히 이질적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현대의 연주자만이 선보일 수 있는 카덴차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지요. (카덴차는 19분49초부터 등장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r9KmgDFwMc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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