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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편집부
입력 2022-10-28 16: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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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피아노로 모차르트를 연주한다면…

‘한 작곡가가 사용하던 악기로 그의 작품을 연주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매력을 지닌 것일까요? 아마도 그 매력의 정도는 그 작곡가가 살았던 시기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전반에 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명성을 떨친 라흐마니노프(S. Rachmaninoff, 1873-1943)의 피아노로 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보다,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피아노로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 매력의 차이는 결정적으로 그들이 사용했던 악기의 차이에 기인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는 유명한 피아노 제작사인 스타인웨이(Steinway)가 만든 것인데, 그 소리는 기본적으로 현재 우리가 상상하는 피아노 소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반면, 베토벤의 피아노는 현대 피아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포르테피아노(Fortepiano)였기에,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현대적인’ 피아노 소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요. 그렇기에 베토벤의 피아노로 그의 작품을 연주한다는 것은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왠지 베토벤이 작곡하면서 상상했을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요. 어쩌면, 그 소리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체험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연주자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의 악기로 연주할 때, 당대의 연주 양식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그리고 오늘날 사이에는 200여 년의 시간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 시간 동안 악기들의 모습과 소리만 변한 것이 아니라, 연주 양식 또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정 옛 작곡가의 악기로 연주한다는 것의 가치를 살리려면, 당대의 연주 양식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반영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지요. 이는 고된 일이지만, 이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던 음반들은 옛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크게 넓혀 주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던, 베토벤 당대의 악기로 당대의 연주 양식을 살려 녹음된 그의 교향곡 전곡 음반들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지요.

최근 굉장히 가치있고 흥미로운 음반 하나가 발매되었습니다. 모차르트가 사용하던 포르테피아노로 연주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ECM New Series 2710-16)입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이 그의 포르테피아노로 녹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연주는 피아니스트이자 고전음악 특히 모차르트 음악 연구로 명성이 높은 음악학자인 로버트 레빈(R. Levin, 1947- )이 맡았습니다. 이 음반에 사용된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는 안톤 가브리엘 발터(A. G. Walter, 1752-1826)가 1782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차르트가 이 악기를 1785년부터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이 음반의 책자에 해설을 쓴 음악학자 라이징어(U. Leisinger, 1964- )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이미 1785년 이전에 연주용 악기로 이 포르테피아노를 얻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 (출처: classicfm.com)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는 현대의 피아노보다 작습니다. 표준적인 현대 피아노가 88개의 건반으로 7 옥타브 정도의 음역을 갖고 있는데 비해,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는 61개의 건반으로 5 옥타브에 이르는 음역을 갖고 있지요. 건반을 누르면 건반에 연결된 해머가 현을 때려 소리를 내는 원리는 같은데,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는 그 해머가 현대 피아노에 비해 작고, 현을 때리는 속도가 현대 피아노보다 더 빠르다고 레빈은 설명합니다. 현도 현대 피아노에 비해 더 가늘고, 더 느슨하게 조여져 있는 차이가 있지요. 나무로 만들어진 해머가 얇은 가죽으로 쌓여 있는 것도, 양털을 압축한 펠트로 해머를 감은 현대 피아노와 다른 점입니다.

그렇다면, 레빈의 음반을 통해서 울리는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 소리는 어떨까요? 현대 피아노처럼 맑고 영롱하며 부드러운 소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고풍스러움과 생생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울림은 단연 일품입니다. 현대 피아노와는 많이 다른 이 울림은 처음부터 낯설기보다는 신선하게 다가오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요.

그러나, 이 음반의 진정한 매력은 모차르트의 악기로 모차르트를 연주했다는 것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그리고 가장 큰 매력은 18세기 연주 양식 특유의 ‘반복(repeat)’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레빈은 음반 해설집을 통해,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당시 연주에서 반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합니다. 핵심은 그가 인용한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C. Ph. E. Bach, 1714-1788)의 글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지요. “반복에서의 변화는 오늘날 필수적인 것이다.” 즉, 당시에는 어떠한 구간이 반복되어 연주될 때, 방금 연주했던 부분을 악보 그대로 다시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에 의해 상당히 자유롭게 변화되었던 것이었지요. 얼마나 매력적으로 악보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는 당연히 연주자의 능력에 달린 것이었고요.

이러한 양식을 반영한 레빈의 연주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그 변화의 정도는 예상을 뛰어 넘습니다. 선율에 장식음이 조금 섞이는 정도가 아니라 선율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심지어 화성이 바뀌거나 박자가 원래보다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레빈의 매력적인 연주는 정말 모차르트가 자신의 작품을 이런 방식으로 연주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레빈의 연주는 악보의 충실한 재현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물론,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에서 그의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모차르트의 악기로 당대의 연주 양식을 적극 반영한 이 연주는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깊어져 가는 가을, 레빈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모차르트 연주의 매력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추천영상: 레빈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소나타 10번 K. 330 중 2악장입니다. 한 부분이 반복되거나 앞의 선율이 뒷부분에 다시 등장할 때, 어떤 변화들이 있는지 귀 기울여 감상하신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만약 악보를 놓고 감상하신다면, 그 흥미는 더욱 커지겠지요. 반복에서의 변화 폭이 상당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다는 느낌없이 전체적으로 잘 조화되고 있는데, 이는 연주자의 뛰어난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모차르트 당대의 연주 양식이 반영된 레빈의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를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rtBzYSTR8xM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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