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준의 클래스토리

<그 음악가의 직업>

편집부

기사입력 2021-05-07 10:52     최종수정 2021-05-07 11:04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2019년, 음악계에는 흥미로운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DanielHarding, 1975- )이 프랑스의 대표적인 항공사인 에어 프랑스(Air France)에 조종사로서 입사하였고, 2020/2021 시즌에 지휘에서 잠시 물러나, 조종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뉴스였지요. 그가 조종하게 되는 비행기 기종(A320)과 직책(부기장, co-pilot)도, 그리고 비행기 조종과 지휘를 앞으로 계속해서 병행할 것이라는 그의 의지도 전해졌습니다. 2017년 상업 여객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하딩은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밝혔는데요. 파리에 있던 예전 그의 집에는 조종사들이 연습과 훈련을 위해 사용하는 비행기 시뮬레이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싶네요.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지휘자가 하딩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이지요.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던 카라얀은 개인 비행기를 소유하였으며, 그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멋지게 차려입고 비행기 옆에 서 있는 카라얀의 사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요. 카라얀이 작은 개인 비행기를 조종하는 정도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하딩은 많은 승객이 탑승한 여객기를 직업적으로 조종하는 것이어서, 그의 에어 프랑스 입사 소식은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조종사와 지휘자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직업을 가졌던 음악가들은 예전에도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중세시대의 작곡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98-1179)입니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빙엔은 작곡가이자, 수녀, 언어학자, 약초학자, 의사, 철학자, 시인, 운동가, 예언가 등으로 소개됩니다. 대체 한 사람이 이 많은 역할을 다 감당해낼 수 있었을까 싶지요. 그런데, 빙엔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열된 직업 중 하나만 잘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현대에서, 음악과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직업을 소유했던 음악가의 예를 들으라면,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 1874-1954)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예일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직업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고, 보험 회사에 취직하며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리고, 1907년 동료와 함께 보험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고, 은퇴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지요. 하지만, 아이브스는 보험 회사 일을 하면서도 작곡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다만, 그의 작곡 활동은 평생 지속되지는 않았고, 1927년 그가 53세 되던 해 까지만 이어졌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그의 생애 말년에야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그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인정받고 있지요.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다니엘 하딩 (사진: Arne Hyckenberg, 출처: Financial Times)▲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다니엘 하딩 (사진: Arne Hyckenberg, 출처: Financial Times)


하딩, 빙엔, 그리고 아이브스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음악과 별다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이 음악에 도움이 될까?” 왠지 막연한 대답만 나올 것 같고, 그 대답을 증명해 내기란 쉽지 않은 질문으로 보입니다. 하딩의 비행기 조종이 그의 지휘에 영감을 줄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참고해 볼만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뇌과학자 정재승의 책 <열 두 발자국>에서였는데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하나가 ‘창조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입니다. 흥미로운 제목이지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질 때, 뇌에서는 평소에는 연결되지 않는, 멀리 떨어져 있는 영역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합니다. 

이는 어떤 문제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거나, 상관없는 개념들을 서로 연결하고, 추상적인 두 개념을 잇는 일이, 창조적인 사람들의 뇌에서 벌어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를 하딩에게 적용해 본다면, 비행기 조종과 지휘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비행기 조종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성찰, 특별한 느낌과 생각 등이 그의 음악적 창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과연 하딩은 여객기 조종사로서의 첫 발을 잘 내딛였을까요? 아쉽게도 지휘자이자 조종사가 되고 싶던 그의 꿈이 실현되기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전세계의 항공 산업이 위축되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하딩이 지휘자와 조종사라는 두 개의 직업을 갖는 것을 오래도록 계획해 왔으므로, 그의 꿈이 이루어질 날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 다시 자유로워질 때, 유럽의 어느 비행기에서 조종사 하딩을 만날 날을 기대해 봅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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