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온 홍랑은 하루하루가 새롭다. 고죽을 한양으로 떠나보냈어도 뱃속엔 제2의 고죽이 쑥쑥 자라나고 있어서다. 울타리의 개나리와 산수유가 어느 해보다도 화려하고 예쁘게 피었다. 세상만사가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배가 불러올수록 홍랑은 점점 더 행복하고 ‘내가 고죽의 여자다.’라고 저잣거리에서 목이 쉬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소리치고 싶은 속내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가 않다. 고죽이 한양으로 떠난 날부터 소식이 기다려졌다. 하루가 여삼추 같이 길고 길다. 밤마다 꿈에도 잘도 나타나드니 한양으로 떠난 날 부터는 꿈에도 보이지 않는다. 꿈에라도 보면 마음이 좀 놓일 터인데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새 정화수 기도를 하기도 하고 틈이 나면 국수당 고개에 올라가 손을 흔들며 떠나갔던 고죽을 떠올리곤 하였다. 홍랑은 후원에 칠성단을 만들고 밤이면 고죽의 무사를 빌고 낮엔 경서(經書)를 읽으며 태교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죽이 한양으로 떠난 지 20여일이 지난 어느 날이다. 그날도 홍랑은 밤새 기도를 하고 잠시 낮잠이 들었을 때다. “이 댁이 홍랑마님 댁인가요?” 라며 한 사내가 사립문을 지나 성큼성큼 들어왔다. 날랜 발걸음이다. “댁은 누구시죠?” 홍랑이 경계의 시선을 보이며 물었다. “예 저는 고죽 나으리 심부름을 왔습니다.” 고죽이란 말에 홍랑은 맨발로 뛰어나갔다.
전후사정을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고죽이란 말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튕겨져 나갔다. “우리 나으리가 어떠신지요?” 홍랑의 음성이 턱에 받쳤다. “예 최경창 나으리가 지금 저의 집에 계십니다. 말에서 낙마하셔서 저의 집에서 치료를 하고 계십니다...“ 홍랑은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찰나적이지만 상념에 잠겼다가 홍랑은 정신을 가다듬어 “지금 뭐라 했어요? 최경창 나으리께서 어떻다고요?”라고 되물었다. “여기 서찰이 있습니다. 읽어보시지요...” 사내는 홍랑에게 고죽의 서찰을 내어 밀었다. ‘홍랑은 이 서찰을 받는 즉시 덕원으로 오너라!’ 고죽의 서찰은 간단하다.
홍랑은 그렇지 않아도 홍원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 오는데 소식이 없어 궁금해 하던 차였다. 고죽이 보낸 부담마를 타고 홍랑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덕원으로 향하였다. 보고 또 봐도 싫지 않은 고죽에게로 사흘이 걸려 도착했다. ‘서울에서 한번 헤어진 지 삼십년 만에 / 여기서 다시 만나니 도리어 서글퍼라 / 예전의 스님 모습은 지금 어디 있나 / 그 옛날 어린애가 흰머리가 되었으니...’ 고죽의 《삼십년 만에 보운스님을 만나》다. 그들은 비록 남과 녀로 태어났으나 목숨처럼 그리워하는 관계였다.
그랬다. 홍랑은 홍원에서 그렇게 고죽이 태산도 한 손에 떠받칠 듯이 보무도 당당하게 떠났던 모습은 간데없고 어깨와 다리에 상처를 보고 울음이 복받치고 슬픔이 강물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후회까지 되었다.
헤어지기 전에 사랑이 너무 깊었나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라서다. 그들은 동창이 밝아올 때가 되어서야 겨우 떨어져 잠시 눈을 붙이고 고죽이 한양 길에 올랐던 것이다. 천하의 고죽이라해도 뼈가 녹을 듯 한 사랑엔 묘수가 없었을 터다.
홍랑의 하늘같은 사랑이 후회의 눈물이 되었다. “왜 진작 연락을 하지 않으셨어요?” 홍랑이 풀죽어 누워있는 고죽을 빤히 내려다 보며 호령하듯 따졌다. “허허, 나도 낙마한 즉시 서찰을 보내려는 마음이 왜 없었겠느냐! 그런데 명색이 장수인데 말에서 떨어졌다는 것이 말이 되겠느냐? 생각 끝에 이제 부상도 다 나아가서 너를 한 번 더 보고 떠날 생각으로 서찰을 보냈느니라! 너무 섭섭해 하지 말거라...” 고죽의 뜨거운 손이 다가와 홍랑을 끌어 품었다. 홍랑은 잠시 멈추었던 눈물이 또 오뉴월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뱃속의 아이도 더 충동적으로 뛰었다. 한 번 더 보고 떠나려했다는 말에 홍랑은 빨리 불러주지 않아 야속했던 설음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그날은 서로의 몸을 손과 마음으로만 즐겼다. 고죽의 손은 밤새 홍랑의 불록 나온 배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배위의 손은 간혹 사타구니로 가다가도 멈칫하며 되돌아가길 수십 차례를 반복하였다.
홍랑도 고죽의 뜨거운 손을 잡아끌려다 입술을 깨물고 참기를 동창이 밝아올 때까지를 반복하였다. 아무튼 홍랑은 고죽의 낙마는 자기의 지나친 사랑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홍랑이 손을 내밀면 고죽은 못이기는 척 다시 꺼지지 않는 불꽃이 튈 것이 자명하여 여자는 석녀(石女)가 되기로 하였다. 자칫 사내를 너무 밝힌다는 소리를 고죽에게 들을까도 은근히 걱정되었다.
고죽이 한양에 도착한 것은 병조판서가 빨리 상경하라는 서찰로부터 20여일이나 지나서였다. 그 사이에 정세가 많이 바뀌었다. 서인(西人)의 정권이 무너지고 동인(東人)쪽으로 넘어갔으며 영의정도 중도성향의 노수신(盧守愼·1515~1590)으로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자 고죽의 군령 어긴 것은 사라지고 전공 세운 것이 화제가 되었다. 세상인심이다. ‘덜그럭 덜그럭 수레 구르는 소리 / 하루에도 천만 바퀴 돌아간다네 / 마음은 같건만 / 수레는 같이 못타니 / 우리들의 헤어짐 몇 차례일세 / 수레바퀴 자국은 아직도 남았건만 / 아무리 님 생각해도 보이지 않네...’ 고죽의 《헤어지며》다. (시옮김 허경진)
낙마가 되레 행운을 가져왔다. 낙마하지 않고 곧장 상경했다면 서인 병조판서에게 군령 어김에 처벌을 면치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임 노수신 영의정은 중립인사다. 또한 노 영의정은 고죽의 경성에서 전공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한편 홍랑은 홍원으로 오다 그만 유산을 했다. 고죽과 헤어지고 마음이 산란해 부담마 위에서 상념에 젖어 있는데 산짐승 울음소리에 말이 놀라 뛰는 바람에 낙마했던 것이다. 홍랑은 하늘이 무너지는 상처다.
고죽이 그토록 바라던 자식을 실패했으니 다음에 어떻게 뵐까를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떨려 걸을 수가 없다.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오늘로 열흘째다. 정원의 오동나무 잎은 어느새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