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약국과 의약품 유통산업, 금융산업과 ICT산업이 함께 공생할 소위 ‘약업산업’을 발족시켜 산업적 역량을 갖추고 강화하려면 유능한 인재양성과 운영체계, 그리고 리더십이 튼튼해야 한다. 2년 후에는 전문약사면허 발급이 시작되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아직 준비가 부족한 미래의 디지털화 될 약국과 약업산업생태계 안에서 그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어떤 선행적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현재 약사법 개정안 준비과정 실무진으로는 일군의 학자와 약사가 참여 중인데 이들은 사회약학 전공자들이거나, 임상약학 전공분야에서는 외국에서 전문약사면허를 취득하고 활동하다 귀국했거나, 면허만 취득하고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약사로 활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본 제도의 도입과 정착을 우선적으로 책임지고 수행하는 대한약사회 등은 지난 1년간 중간발표 한번 없이 전문약사 내용이 포함된 약사법 개정안 초안까지 이미 마련한 것으로 보여 매우 아쉽고 우려된다.
전문약사의 필요성과 수요분야(목표와 전문영역), 중장기 인력수급 예측결과(장래성, 기여도), 권한과 책임의 한계(역할과 책임범위, 경제성), 면허취득 요건과 수험내역 및 절차와 사후관리(운영 체계와 조직) 등을 지속적이고 공개하면서 반론이나 제안사항을 수렴하여 문제점이나 미비점을 파악한 뒤 해결안을 모색해도 제도의 정착까지 수많은 진통과 실책이 발생할 텐데, 아마도 제도의 발족 시한에 맞춰 법적 요건과 절차만을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약사면허를 부여하기 전 학생의 선발, 교육, 수험준비는 약학대학이 주관하였다. 그러나 기존 약사면허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약사면허는 자격시험의 실시를 국시원에 위임하더라도 전문성 수련 내역과 과정, 도달수준, 수련자의 전문성 규명, 세부내역 규정, 면허자 관리 등 일체의 업무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은 직능단체의 몫이다. 그렇다면 진작에 대약(大藥), 병약(病藥), 산약(産藥) 등 직능단체와 유관학회가 공동으로 통합기획위원회 및 전문기구를 발족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대약이 중심이 되어 약사직능 개발과 발전을 책임질 전략을 수립하고 전담조직, 인력, 추진체계를 갖추는 것이 적절하다.
약사, 약국, 약업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법제적, 역사적,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약사회 집행부나 소수의 인사들이 본인들의 공명심이나 치적으로 여기거나, 견제와 비판을 우회하여 추진해도 될 단순한 안건이 아니다. 지난 세기에 결정되었던 ‘약사직능분류’, ‘한약분쟁’을 되돌아봐도 성급히 끼운 단추가 지금 어떤 결과를 나타냈는가? 약사는 의료인이 아닌 보건전문인이고, 약국의 업태는 보건업이 아닌 양약소매업이며, 한약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위축되고 한약사 제도가 출범하여 지금과 같은 난맥상을 초래했다. 역대 약사회 집행진과 자문진의 결정이었겠지만, 시대변화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상세전략은 없이 당시의 현실 대응에 급급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얼마전 산업현장 역군들의 개념설계능력의 취약성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우리나라 공학전공 교수들이 제기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약업산업생태계 구축에도 적용하자고 제안한 이후에 필자는 선후배 독자의 질문과 구체적 실현방안 도출을 위한 학술활동을 제안 받았다. 약국의 약료적, 경영적, 산업적 미래상을 설계 및 구현하기 위한 약업계 지도층의 포부와 능력이 신속히 제고되어야 전문화, 디지털화, 뉴 노멀화의 시대에 국민보건향상과 약사직능발전, 약국을 통한 약사의 직업적 성취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 보며
필자는 역사적, 산업적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약국과 약사, 약업의 발전 시대를 3개로 구분한다. 제1기는 해방~산업화의 시기에 너무도 부족했던 1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양질의 의약품 공급처이자 구매처로서 역할이 부각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순차적으로 20개의 약대가 설립되었고, 제약산업의 기틀이 갖춰지면서 약국도 현대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1993년에 한약분쟁이 시작되었고 한약조제자격 면허제도가 도입되었다. 약사의 독점권과 배타적 권리가 독보적이었던 1945년~1996년까지 50년의 격랑기를 지금 50대 이상의 약사들은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더불어 이 기간은 현대적 약학 연구와 교육이 자리 잡히면서 임상약학과 사회약학이란 개념이 소개되었다.
제2기는 1996년부터 2022년까지의 약 25년이라고 본다. 이 시기는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2000년도 의약분업의 실시와 약대 6년제의 시작, 1987년도부터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한 뒤 1995년경부터 신약개발을 국가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제약산업의 기틀은 세계적 수준으로 정비되며 고도화 되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더불어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힘겨운 파도와 싸웠으며, IMF구제금융과 세계금융위기를 연이어 겪으면서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를 피부로 실감하였다. 이 기간에 약대는 노령환자의 증가를 이유로 17개가 증설되어 총 37개가 되었다.
국내외 경제사회적 위기가 이어지는 동안 약사의 기능과 독점권은 축소되고, 한약사 직능이 등장하고, 약사인력의 공급과잉에 따른 약국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되었다. 병원약학은 정부의 병원/의료산업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회원의 증가와 더불어 임상전문화의 길을 착실히 진행하였다. 더불어, 2013~2017년, 2018~2022년 2회에 걸쳐 정부주도의 ‘제약산업육성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제약바이오산업의 호황기가 찾아왔고 대한약사회, 병원약사회에 이어 ‘산업약사회’가 발족하였다.
마지막 방점은 전세계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 및 디지털 전환 패러다임이 시작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면서 약업은 다극화, 고도화, 전문화 되고 외부인은 약사의 역할에 대해 존폐의 위기를 언급하는 실정이다.
파괴적 혁신이 일상화 될 향후 12년
제3기를 2023년~2035년까지 12년으로 구분해보는데 약업, 약국, 약사 생태계의 변환 사이클은 앞으로 더욱 짧아지고, 더욱 가속화되고, 더욱 파괴적인 양상일 것이라 예측한다.
12년째 시행했던 기존 2+4학제는 2022년도부터 통6년제로 전환되면 약사는 4년제 출신 약사 및 한약조제자격 여부, 2+4년제 출신 약사, 6년제 출신 약사, 10여개 분야의 전문약사로 다양해진다. 어쩌면 동질성과 일체감이 약해지면서 공동체 의식이나 결집력이 예전과 달라질 것인데, 약사의 수급과 처우가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면서 약사 간 상호이해가 심각해지면서 전문약사들부터 단체를 결성하여 차별화된 처우를 주장할 것이다.
세계는 디지털헬스케어 시대로 진입하면서 정부 및 기업 주도의 원격의료산업이 발전하고 종래의 약국과 약업, 약사 직능의 재정의를 요구하는 외부의 도전은 심화될 것이다. 여전히 이에 대응할 전략과 리더십과 비즈니스모델이 미흡하다면 향후 6년 이내, 혹은 6년제 약사가 청 2만명을 돌파할 시기에는 더욱 강력한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등장할 것이다.
‘제약산업’으로 인식되던 영역이 ‘제약바이오산업’과 ‘디지털헬스케어산업’으로 확연히 재편되어 더욱 차별화되고 융합된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다.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약업계의 주류 세력은 더 이상 제약기업이나 약사, 약국이 아닐 수 도 있다. 2028년부터 매년 2천명의 약사가 배출된다. 3년제 법전원체제로 학제 변경 후 10배로 증가한 변호사시험 합격생이 배출되는 법률시장을 보면, 약업계의 비상한 대비가 필요하다. 신규 약사는 취업과 전문약사면허 취득 경로 또는 대학원 진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면서 대학원 진학률은 절대적으로 급감할 것이다.
6년의 약대과정, 3년 이상의 전문약사면허 취득과정, 4~5년의 대학원 과정 등 10여년의 기간과 2.5배나 상승한 교육비를 투자할 만한 매력적이고 보람되고 자랑스러운 직업을 만들 책임이 악업계 리더십 그룹에 주어졌다. 그래서 내년에 출범할 약사회 리더십은 4~5년 안에 지난 70년과 비교할 때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와 혁신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할,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약업은 ‘가치산업’을 넘어 ‘확장가치산업’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약업생태계를 역동적이고 발전가능성이 넘치도록 육성할 구조를 설계하고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지도력, 거센 반발과 어려움이 있어도 설득하고 포용하는 소통의 지도력, 미래 약사직능가치를 향상시킬 복안을 갖춘 지도력, 세상의 변화 방향과 속도를 감지한 지도력, 인재를 등용한 뒤 합리적, 능률적으로 조직을 구축하고 운용하는 지도력, 구습이나 관행을 벗어나 세계적 변화의 조류를 이해하고 국제적 감각과 역량을 지닌 지도력이 약업계에 절실히 필요하다.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색다른 시야와 인내심을 가져야
필자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큰 의욕을 가지고 회사에 입사했지만 일은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한 상황을 많이 겪었다. 그때 모시던 CEO께서 소중한 조언을 하셨는데, 당신도 지난 세월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반드시 변화시켜야 할 사항을 써서 자신의 책상서랍 안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인식과 해결방안이 15년간 축적되었고 이제 CEO의 자리에서 추진하려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으니 곁에서 도와달라고 하셨다.
장기판에서 훈수를 두면 왠지 문제가 잘 보이고 해결의 실마리도 잘 떠오른다. 좋은 지도자는 참모나 조력자를 잘 활용해야 한다. 권한을 위임하고 실수가 생기면 대신 책임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크고 중요한 조직의 지도자일수록 이런 여유와 기회를 선용하면 좋겠다.
위기의 때에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내가 권한을 위임해줄 때 열심과 능력을 보여줄 조력자가 몇 명 있는지부터 먼저 헤아려보자. 대부분 내 사람이라 하면 나에게 표를 던져 줄 사람인 경우가 많지만, 이에 앞서 나와 함께 길을 갈 역량 있는 사람부터 육성하자. 내가 발굴하고 육성한 약업계의 인재가 없다면 아직은 큰 일을 도모하면 안된다. 내가 못보는 것을 보는 인재, 나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충언할 인재, 초심이 흔들리지 않고 사리사욕이 없는 인재, 지혜로운 마음과 실행력을 가진 인재 등이 있는 사람이 진짜 지도자이다.
이제 약사공동체 및 약업환경 변화의 제3기로 접어들며 더 큰 변화가 더 빨리 더 자주 찾아올 것 같다. 지도력 곧 리더십이란, 주변에 밥 잘 사주고, 잘 놀아주며, 한자리씩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을 발굴하고 육성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신상필벌하며, 결과를 책임지는 경영예술이다.
약사들은 1천명 이상, 1만명 이상이 함께 일하는 대형 조직에 근무해본 경험이 대체로 없기에 인사역량, 조직역량, 소통역량이 다소 부족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어떤 조직의 인원수가 2배로 늘면 조직의 역량은 4배쯤 커진다. 하지만 조직통솔에 필요한 소통은 8배 이상 늘어난다. 좋은 지도력이란 진정한 소통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인내와 책임을 동반한다.
너무도 변화무쌍한 약업계와 불투명한 약사직능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들이 많이 등용되어 다양성의 시대, 전문화의 시대, 융복합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가 일반화된 시대를 지혜롭고 아름답게 헤쳐나가면 좋겠다.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