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준석 교수의 약업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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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약업현장 혁신의 중심은 누구인가?

방준석교수

기사입력 2020-03-04 12:19     최종수정 2020-03-13 14:2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지난 수 차례에 걸쳐 제4차 산업혁명과 경영혁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현황과 미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역량, 데이터 기술과 고객경험의 향상, 그리고 인적자원관리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필자의 주관을 피력하였다. 이번부터는 약업현장 혁신의 주역인 지도자(leader)와 추종자(follower)의 관점에서 약업의 혁신과 발전을 위한 주제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전문성의 골격

보건의료인력의 전문성을 확보, 증진하는 기본골격은 면허와 전문자격제도, 그리고 평생교육체계이다. 전문성 발휘의 주체는 인간이므로 전문지식, 운용기술, 태도와 윤리성이 학교 교육과 실습의 목표이다. 이후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평가, 수행평가를 거쳐 국가면허를 수여하고, 다시 지난한 임상수련과정을 거친 뒤 전문자격을 취득한다. 그러나 의료계의 면허와 자격은 평생 동안 유효하다는 특징 때문에 은퇴의 순간까지 평생학습을 지속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면허와 전문자격, 평생학습과정의 관리는 엄격하며 주기적으로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110년전인 1910년, 아브라함 플렉스너가 미국정부에 제출한 보고서(Flexner Report)로부터 촉발되어서 세계적으로 ‘의학교육인증제’에 이어 ‘의료기관인증평가제’가 도입, 정착되었으며 지금은 ‘의료인의 자격’, ‘교육 및 양성체계’, ‘의료기관운영’ 등 3가지 영역의 질 관리(QC, QA)체계가 확립되었다. 우리나라의 의학, 치의학, 간호학, 한의학 대학과 각급 의료기관은 위 3가지 영역이 모두 상당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기에, 좀 늦은 감이 있는 약학교육의 6년제 개편은 이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면 약학교육, 약사양성체계, 약사의 전문성 함양과 유지라는 관점에서 일대 혁신이자 글로벌 스탠다드로의 이행인 셈이지만 아직은 세계 표준은 물론, 국내 여타 보건의료인력 분야와 비교해도 갈 길이 멀다.

필자의 견해로는 선진국의 약학은 기초약학, 임상약학, 사회약학, 경영약학이란 4가지 분야가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 중이다. ‘경영약학’은 좀 생소한 표현인데, 실례를 들면, 미국 초임약사의 사회진출은 약국 > 병원 > 제약기업 > 기타 순인데, 특히 사회적 수요와 급여수준이 높은 PBM (pharmacy benefit manager)이나 사보험회사, 제약기업 비즈니스 부서, 약국체인회사의 관리/경영자급 약사가 되려면, 전국 약대의 약 70% 이상에 개설된 7년제(6+1) 약학대학-경영전문대학원 학∙석사 복합과정(PharmD-MBA)의 이수를 선호하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화 추세

약학은 다루는 분야가 광범위한 특성때문에 시쳇말로 잡학(雜學)이라고 불린다. 필자가 대학원에 진학하던 시기에 15개 이내 전공교실이 운영되었기에 약학의 범위가 그런 줄 알았다. 어느덧 1980년대 중반부터 ‘임상약학’과 ‘사회약학’이란 패러다임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전통적 약학분야는 ‘기초약학’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필자가 유학한 미국 약대의 교육/연구 체계는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학부는 임상약사 양성과정으로 특화되었고, 대학원은 연구자 양성과정으로서 (1)기초과학(Basic Sciences), (2)약물학 및 독성학(Pharmacology & Toxicology), (3)약제학 및 응용화학(Pharmaceutical Sciences & Applied Chemistry), (4)임상약학 및 사회약학(Clinical Pharmacy & Pharmacy Administration) 등의 전공분야로 나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초약학’인 (1)~(3)분야는 전문연구자로 훈련되어 학계, 연구기관, 제약기업, 벤처창업 등으로 진출한다. (4)의 ‘사회약학’분야는 약무행정(Pharmacy Administration), 약무정책(Pharmacy Policy), 보건(약물)경제학 및 성과연구(Pharmaco-economics & Outcomes Research), 인문사회약학(Pharmaco-socio-sciences & Patient communication) 등의 전문가로 양성되어 학계나 공공기관으로 진출한다.  ‘임상약학’ 전공자는 감염약료, 종양약료, 의약정보 등 전문인력 양성 공인기관에서 수련과정(clinical practice residency)을 마치고 다양한 전문약사자격(BPS)을 취득한 뒤 병원, 산업체, 학계로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의 위상과 소비자의 의료수요에 비하면 약학전문가 양성체계 및 관련 제도가 크게 미흡하다.

선진국일수록 보건의료의 교육-연구-산업화 영역에서 다양화, 전문화, 융∙복합화가 활발한데, 미국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없는 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 (DO), Acupuncture & Oriental Medicine (OMD), Podiatrists & Foot Specialists, Physician assistant (PA), Asthma, Lung & Respiratory therapist 등의 전문화된 의료(보조)인력이 있고, 간호계도 NP (nurse practitioner), RN (registered nurse), AN (assistant nurse) 등 직역과 자격이 여러 단계로 전문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간호계도 이런 측면에 발빠르게 대처해왔는데, 이미 전문간호사제도가 의료현장에 뿌리내렸고, 장래에는 미국식 NP제도까지 도입하려고 노력 중이며, 심지어 의료계에서 아직도 도입 여부에 찬반이 엇갈리는 보조의사(PA)의 역할을 전문간호사가 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전문가의 활동 생태계 변화

국내외에서 추진 중인 Digital Transformation의 기저에는 (1)자동화된 빅데이터 처리능력을 보유한 ICT 지능체를 개발하여 활용하고, (2)가성비 높은 보조의료인력(paramedic)의 활용을 전제한 고효율성 비즈니스 모델이 핵심을 이룬다고 요약할 수 있다. 결국 미래의 헬스케어는 의료기관에서 의사 주도로 이뤄지는 고도질환 치료중심 시스템이 한 축이고, 자동화된 기계 및 지능체와 의료보조인력을 결합한 질병예방 및 건강관리 시스템이라는 나머지 축으로 이원화되리라 예측한다.

의사중심 의료계는 아무리 인공지능과 로봇이 고도화될지라도 아직은 가까운 장래에 인간 의사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의사의 역량을 현재보다 더 고도화, 전문화시키는 방향이 아닌, 의료적 최종판단은 의사가 하더라도 진단의 정확도, 정밀도를 높이고, 처치를 정교히 보조하는 인공지능 및 로봇이 의사와 의료현장에서 공존하는 방향으로 대응 중이다. 

반면, 고령화에 의해 의료비용이 증가하므로 결국 생애 전주기적 만성질환 예방과 생활습관 교정 및 돌봄을 기계에 의존하되 여기에 필요한 단순노무와 기계관리는 보조의료인력을 훈련시켜 활용하는 저비용-고효율 모델이 보편화 될 예정이다. 단순 업무나 저난이도의 노동을 수행 중인 보조인력을 업그레이드하면 중간정도 난이도의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한 중급전문가를 대체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전망이며, 미래 인간노동력에 대한 기계의 대체 여부는 그가 지닌 특유성과 효율성이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또한,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장차 고령사회를 맞이하여 국민의 헬스케어와 삶의 질 향상방안을 이미 단기적으로는 보건의료기술이나 의료기관시스템의 혁신으로써 추구하지만, 향후 5~10년 이후의 중장기적으로는 스마트시티 혹은 스마트타운이란 빅데이터-사물인터넷-인공지능 네트워크 속에 ‘커뮤니티 케어’ 서비스까지 구현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려는 정책수립과 사업기획이 이미 추진 중이다. 즉, 보건의료와 건강관리 서비스는 가까운 미래에는 약국이나 병의원에서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닌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그림 1].

그림 1. 스마트시티 추진 전략(출처: 경기도형 스마트시티 조성 전략 보고서)▲ 그림 1. 스마트시티 추진 전략(출처: 경기도형 스마트시티 조성 전략 보고서)

약사나 약국보다 약무의 혁신이 우선

이렇게 빠르고 광범위한 변화 속에서 약국은 한 명의 특별한 약사가 아닌, 약국구성원 전체의 팀웍과 총체적 서비스에 의해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기에 약업에서의 혁신이란 약국, 약사에 앞서 악무(藥務)의 혁신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약무의 범위를 정하고 점진적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이 필요하고, 약무는 약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약무수행의 파트너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약국 약무는 처방조제, 복약지도, 경영능력, 고객 커뮤니케이션, 사회참여 등이 주류였지만, 미래에는 환자중심의료팀의 일원으로서 보건의료분야의 불합리성을 개선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2017년도 우리나라 연구결과에 따르면, 약국은 3대 업무인 처방감사, 조제, 복약지도에 심하게 편중되어 있고, 약물요법모니터링, 의약품정보제공, 자가치료(self-care)지원, 약물부작용이나 유해작용 예방, 공중보건증진 같은 선진국형 서비스는 2% 미만인 실정이다. 

이런 문제점의 원인으로는 시간, 공간, 전문지식의 부족, 경제적 이익의 취약성, 약국직원교육체계의 낙후성, 환자정보접근의 한계성, 약국의 낮은 노동생산성, 신규 서비스에 관한 지식이나 기술이 빈곤함 등이 지적되었다.

‘공중보건’이란 개념은 19세기에 태동하여 6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오타와 선언(Ottawa Declaration)’을 계기로 5가지 핵심영역이 규정되고 미국을 중심으로 10가지 영역에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약사들은 공중보건의 4대 업무인 ‘건강정책(일차의료, 건강영향평가)’, ‘건강증진(건강생활실천을 위한 지식, 건강위험의 감소)’, ‘예방(1차, 2차, 3차 예방)’, ‘보건관리체계의 관리(전국민 건강보장, 일차의료 및 예방적 보건서비스)’를 당연한 약무영역으로 인식하나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외연 확장은 불충분한 상태에서 서구가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서비스를 도입하려는 기대감은 높고 보험수가 제공이나 약국을 문턱이 낮은 ‘건강돌봄센터’로 변환하려는 의지나 상세전략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공중보건증진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5개 핵심역량으로 역학(epidemiology), 생물통계학(biostatistics), 사회행태과학(social and behavioral science), 환경과학(environmental health science), 건강정책(health policy and administration) 등이 강조되었지만 아직 6년제 과정에서는 교육프로그램이 부실하므로 우리나라 약국에서 선진형 약무를 제대로 제공하려면 이상의 한계점을 극복하면서 약사양성체계의 질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약사가 처한 약국 약무서비스의 현실은 조제업무에 과다한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는 반면, 고객에게 제공해야 할 선진형 임상서비스의 양과 질은 인식하지만 시간과 준비부족 등의 이유로 소비자의 미충족요구에는 적절히,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약사제도, 면허와 전문자격의 재인증제도, 약학교육 인증평가제도 등의 도입을 고려하면서, 연수교육제도의 혁신, 지역사회 공중보건업무를 포함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약무의 정의와 프로세스를 재정의하고 약무조무원을 훈련하여 단순 반복적 업무를 위임함으로써 약사의 직능범위를 확장하고 고도화하도록 대학, 직능단체, 학술단체, 정부기관 모두가 중지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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