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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당지수 이야기

정재훈 약사

편집부

기사입력 2021-11-24 11:14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방송에 GI 지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일단 동어 반복이다. GI는 Glycemic Index의 약어이므로 혈당지수라고 쓰거나 그냥 GI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당지수를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있진 않다. 

밥이나 빵처럼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물 음식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볼 때는 약간의 의미가 있긴 하다. 가령 통곡물로 만든 빵이나 현미밥을 먹으면 그냥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백미밥보다는 당지수가 낮고 그만큼 당분 흡수가 느려져 혈당이 천천히 오른다. 하지만 누가 맨밥만 먹나. 반찬을 곁들여 먹으면 혈당지수가 달라진다. 

치즈피자처럼 곡물 도우에 치즈의 단백질과 지방이 더해지면 당지수가 낮아진다.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은 소화가 어려운 만큼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당뇨환자에게 약 부작용으로 갑자기 저혈당이 오면 초콜릿을 주면 안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초콜릿은 지방 함량이 높아서 당지수가 낮은 편이다. 초콜릿 속 당분은 빠르게 흡수되지 않으니 저혈당인 사람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포도당 캔디나 꿀물, 설탕물, 주스, 청량음료가 낫다. 아카보스를 당뇨약으로 복용 중인 사람은 설탕물도 곤란하다. 아카보스가 소장에서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알파글루코시다아제를 억제하므로 설탕의 소화 흡수가 저해된다. 이때는 포도당 캔디나 주스가 낫다. 

당지수가 무용하다고만 볼 수 없으며 여러 음식을 함께 먹더라도 개별 음식의 당지수가 낮을수록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흰 빵에 피넛버터가 통곡물빵만 먹는 것보다야 혈당이 천천히 오르겠지만 그래도 흰 빵에 피넛버터보다는 통곡물빵에 피넛버터가 낫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렇게 따지다 보면 음식 속의 당에 대해서만 집착하게 된다. 당지수만 따지다가 섭취량을 무시하게 되는 것도 문제이다. 수박은 당지수가 높은 음식이지만 밥 한 공기만큼의 당분을 수박으로 섭취하려면 수박 1/4통을 먹어야 한다. 

당지수는 탄수화물 50g에 해당하는 음식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식품으로 탄수화물 50g을 섭취한 후 2시간 동안의 혈당 변화를 포도당 50g을 섭취한 경우를 100으로 하여 비교한 상대적 수치이다. 당지수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된 음식의 양은 일반적으로 먹는 1회 분량과는 차이가 크다. 당지수가 낮아 혈당이 천천히 오른다는 방송을 보고 잡곡밥을 배불리 먹으면 탄수화물 섭취량이 늘어나 결국 혈당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탄수화물의 흡수 속도에 더해 탄수화물 섭취량까지 고려한 당부하지수(Glycemic Load)를 사용하기도 한다.  

당지수가 낮은 음식 위주로 챙겨 먹는다고 장기적으로 건강상 유익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사람마다 장내 미생물군집이 다르고 이로 인해 동일 음식을 먹어도 혈당치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최근 연구 결과도 있다. 장내 미생물 군집을 살펴보면 사람마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서는 중국 음식을 먹으면 금방 배고프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반대로 중국에 맥도날드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햄버거는 먹고 나도 금방 배가 고프다는 불평이 많았다. 햄버거를 간식처럼 생각해서 먹고 나서 또 밥을 먹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아프리카에 남미의 옥수수가 도입된 것은 17세기였지만 지금 아프리카 농부들은 옥수수를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고 불평한다. 이런 차이는 문화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장내 미생물군집의 영향일까? 장내 미생물에 관한 연구가 더 진행되고 24시간 내내 혈당 측정이 가능한 연속혈당측정기가 더 많이 보급되면 아마도 이런 개인차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듯하다. 

당지수 하나 가지고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나눌 수 없다. 당지수를 따져서 혈당 관리에 도움을 받는 당뇨환자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지나치게 당지수 하나에만 집착하지는 말자. 먹는다는 건 복잡한 일이며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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