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지난 7월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란 책을 냈다. 음식에 관한 한 정답이 없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정답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과 요리의 기본은 과학이기 때문이다. 가령 ‘라면을 두 개 끓일 때 물을 두 배로 넣는 게 좋은가 아니면 물의 양을 줄이는 게 나은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존재한다.
라면을 두 개 끓일 때는 물의 양을 20퍼센트 줄이는 게 좋다. 표면적이 넓을수록 기화가 더 빠르게 일어나고 국물이 줄어든다. 같은 냄비에 물을 두 배로 넣고 끓이면 냄비 표면적은 그대로여서 물이 덜 날아간다. 그래서 단순히 한 개일 때의 두 배로 물을 넣으면 국물이 싱겁게 된다. 일상 음식에는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러 질문이 숨어있다. 그저 매일 같이 오랫동안 먹는다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정답은 없다. 어떤 답이 존재하는지 사실을 들여다봐야 비로소 음식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속설과 사실은 다를 때가 많다.
요즘 과일은 너무 달아서 당뇨환자에게는 해롭다는 주장은 어떤가? 연구 결과는 이와 상반된다. 2013년 덴마크 연구에서 2형 당뇨환자에게 과일 섭취를 제한하도록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했다. 그 결과 혈당 조절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고 과일 섭취 제한 그룹의 과일 섭취량만 줄어들었다. 이전보다 과일이 단맛이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과일이 건강에 나쁘다고 안 먹도록 하는 경우보다는 과일 섭취에 제한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더 건강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 섭취량을 고려하지 않고 과식한 뒤에 과일까지 더 먹어서 배를 꽉꽉 채우는 게 좋을 리는 없지만, 당뇨라고 과일을 무조건 피할 이유도 없다.
따뜻한 밥보다 찬밥을 먹어야 살이 덜 찐다는 말은 사실일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기대할 정도는 아니다. 효과가 미미하다. 찬밥에는 저항성 전분 함량이 높아서 소화가 더디 된다. 하지만 찬밥과 더운밥의 저항성 전분 함량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2015년 인도네시아 대학 연구에 따르면 더운밥 100g에 저항성 전분 함량이 0.64g, 10시간 실온에서 식힌 찬밥의 100g에 1.30g이다. 이론상 저항성 전분 함량이 높은 찬밥을 먹으면 혈당치가 서서히 올라가고 소화 흡수가 덜 되는 만큼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반찬 없이 밥만 먹는 경우는 드물다. 식사 후 소화흡수 속도는 더운밥, 찬밥의 저항성 전분에만 관계되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음식을 곁들여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방, 단백질, 섬유질이 풍부한 반찬을 곁들여 먹으면 맨밥만 먹을 때보다 소화 흡수가 느려진다.
게다가 찬 음식보다 따뜻한 음식을 먹었을 때 포만감이 더 오래갈 수도 있다. 온도가 낮으면 냄새가 덜하고 반대로 음식이 따뜻하면 풍미 물질이 더 많이 휘발되어 음식 냄새가 더 진해진다. 따뜻한 음식은 그런 진한 풍미로 인해 뇌가 포만감을 더 오래 느끼도록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찬 음식이 위에서 장으로 더 빠르게 배출된다. 똑같은 밥인데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나면 헛배 부르고 배가 더 빨리 꺼지는 이유다. 소화 흡수에는 여러 변수가 이렇게 복잡하게 작용한다. 굳이 살이 덜 찔 거라는 생각에 찬밥을 먹을 이유는 없다.
찬밥이 더운밥보다 빨리 배고픈 것은 문화적 학습효과일 수도 있다. 중국인은 햄버거를 먹고 나면 배가 고프다고 느끼고 미국인은 반대로 중국 음식을 먹고 나면 배가 고프다고 불평한다. 찬 음식을 먹으면 배가 더 빨리 고픈 것도 식문화로 인한 심리적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 여러 답이 가능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이렇게 여러 요소가 작용하는 복잡한 현상이다. 질문이 생겨나는 게 당연하다. 그 질문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음식에서 얻을 수 있는 묘미이다. 그러니 음식 너머의 이야기를 알게 될수록 삶이 더 즐거워질 수밖에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