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허법 제284조는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자의 행위가 고의적이었음을, 즉 고의적 침해(willful infringement)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경우, 판사가 손해배상액을 3배까지 증액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 배심을 두고 재판을 하는 경우, 고의적 침해 여부는 배심이 판단하고, 증강된 손해배상의 인정 여부는 판사가 결정한다.
여기에서 고의적 침해는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입증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고의적 침해가 있었으면 무조건 증강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의적 침해
고의적 침해를 입증하는 요건은 어떤 시기에는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적도 있었고 어떤 때에는 특허권자에게 불리한 적도 있는 등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고, 또는 배심 혹은 판사에 따라 일관되지 않은 판단이 내려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시대별로 보면, 1980년 대의 사건들에서는, 잠재적인 침해자가 다른 사람의 특허권에 대한 실제 통지를 받은 경우 (예를 들어 경고장), 그 잠재적 침해자는 자신이 타인의 특허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일 적극적인 의무 (affirmative duty to exercise due care)가 있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래서 본인의 행위가 타인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피고가 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7년 Seagate 사건에서는 잠재적 침해자에게 지우던 엄격한 기준을 완화시키고, 침해 당시 침해자의 마음 상태의 여부를 더 이상 묻지 않는, 소위 객관적-무모함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2단계 기준이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의해 마련되었다. 이 객관적-무모함 (objective-recklessness)을 판단하는 2단계 분석법은, 피고가 (1) "그 행위가 유효한 특허의 침해를 구성할 것이라는 객관적으로 높은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했다"는 것과 (2) "이 객관적으로 정의된 위험이 … 피고에게 알려져 있었거나 또는 너무 명백하여 피고에게 알려져 있었어야만 했다”라는 것을 특허권자가 입증하도록 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의적 침해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특허권자가 지게 되었고 그 입증의 기준도 높아진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특허권자가 고의적 침해에 대해 증강된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2016년 미국대법원은 Halo Electronics, Inc. v. Pulse Electronics, Inc.사건에서, 연방순회법원이 정한 2단계 객관적-무모함 분석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는 것을 이유로 파기하고, 침해자가 주관적으로 침해의 의도가 있었거나 침해함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증강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Halo 사건의 대법원은, 증강된 손해배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지방법원 법관의 재량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증강된 손해배상은 일반적인 침해 이상의 행위를 포함하는 심각한 위법 행위가 있는 경우에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침해 이상의 심각한 못된 행위”가 어떤 행위들을 포함하는 지 혹은 어떤 행위나 요건들이 증강된 손해배상을 부여하게 할 만한 심각한 못된 행위로 인정될 지에 대해서는 거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 않고 있어, 그 이후 계속되는 혼동과 일관성이 결여된 판결 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대법원이 확실하게 한 사항 중의 하나는 증강된 손해배상은 징벌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므로, 침해자가 고의적으로 못된 행위 (willful misconduct / egregious conduct)를 하는 경우에는 증강된 손해배상을 인정할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또 대법원의 Halo 판결이 있은 후에 이루어진 연방순회항소법원 판결들은 일관되게 특허침해자가 특허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을 필수요건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 회사들은 (인텔, 모토롤라 등) 타사의 특허를 검토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만드는 사례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는 더 큰 위험을 불러오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회사 정책이 배심 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는 두고 볼일이다. 특허법에서는 고의적 실명 (willful blindness)이 “알고 있었음” 요건을 대체할 수도 있는데, 고의적 실명 정책 자체 만으로 고의적 침해가 있었다고 인정하거나 손해배상을 증강시키는 판결이 나올 것 같지는 않고, 대신 그런 정책을 만들게 된 배경이나 그런 정책의 결과나 그 이후 회사의 대책/반응 등 여러 사실 변수에 따라 다른 평결이나 판결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증강된 손해배상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침해자가 특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 만으로는 증강된 손해배상을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또 의도적으로 혹은 알면서도 (intentionally or knowingly) 침해한 행위 (willfulness)는 증강된 손해배상을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요건 (threshold question)일 뿐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특허의 존재를 알거나 침해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거나 침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알고 있었어야만 하는 것 만으로는, 고의적 침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증강된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증강된 손해배상을 지우기 위해서는 고의적 침해의 존재에 덧붙여 그 이상의 나쁜 행위가 더 필요한 것이다.
최근 SRI International, Inc. v. Cisco Systems, Inc. 판결에서 연방순회항소법원은 willful infringement의 성립과 증강된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것이 별개의 사안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 배심은 “심사숙고에 의한 혹은 의도적인 침해 (deliberate or intentional infringement)”가 있었으면 그것만으로 고의적 침해 (willful infringement)의 평결을 내릴 수 있지만, 법관이 증강된 손해배상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피고가 무모하고, 악의적이며 나쁜 마음을 먹고 한 행위가 있어야만 한다고 설시하였다. 피고의 이런 행위들은 특허침해 행위 뿐만 아니라 소송이 진행 동안 이루어진 행위들도 포함 될 수 있다. SRI 사건에서 증강된 손해배상을 인정함에 있어, 연방순회법원은 Cisco가 비침해라고 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의적인 침해가 있었다고 평결한 배심의 결정을 확정하고, 또 Cisco가 재판 도중에 여러가지 무모하게 공격적인 꼼수를 쓴 것 등을 근거로 증강된 손해배상을 인정하였다.
연구개발 과정 중에 발견되는 제3자 특허 혹은 특허출원 들에 대해 검토하고 competent한 opinion을 받는 것이, 설사 고의적 침해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증강된 손해배상을 피하는 데 유효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선희 변호사는 30여년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출원 뿐만 아니라, 특허성, 침해여부, 및 Freedom-to-operate에 관한 전문가 감정의견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해오고 있다. 또한 생명과학, 의약품, 및 재료 분야 등에서 특허출원인이 사업목적에 맞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도록 자문을 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한미약품이 아스트라제네카를 대상으로 하여 승소하였던 미국뉴저지 법원의 에스오메프라졸 ANDA 소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