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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34> 방학과 휴가는 봄 가을에
편집부
입력 2021-10-27 09:23 수정 최종수정 2021-10-2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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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9월이 되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四季)는 순서대로 오고 가며, 봄의 따듯함, 여름의 더움, 가을의 선선함과 겨울의 추움도 여전하다. 지구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규칙적으로 자전(自轉)과 공전(空轉)을 계속하고 있는 덕분일 것이다. 이런 규칙 일체를 자연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문득 이 지점에서 자연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자연(自然, nature)이란 저절로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정말 자연은 저절로 존재하는 것일지 의문이다. 혹 어떤 거대한 힘이 자연을 존재하게 만들고, 나아가 자연의 규칙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우주의 미물(微物)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의문이다. 다만 나는 우주가 엄청나게 큰 현탁제(懸濁劑, suspension)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현탁제란 약물 입자들이 분산(分散)되어 있는 액제를 가리키는데, 우주에 수많은 혹성이 떠 있는 모습이 마치 현탁제 같다는 생각이다. 소견이 좁은 약제학자의 우주관이다.

약물 입자를 액체 중에 분산, 즉 현탁시키기 위해서는 입자의 크기, 모양, 표면 전하(電荷)와 같은 분산질(分散質)의 특성뿐만 아니라 분산매(分散媒)인 액체의 점성이나 조성 등도 최적 상태로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최적화를 잘해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약물 입자가 분리(分離), 즉 가라앉거나 떠 오르는 현상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그만 현탁제에서도 피할 수 없는 이런 분리 현상이 우주라는 무변광대(無邊廣大)한 현탁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창세(創世) 이래 지금까지 지구 주변의 혹성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회합(會合)하거나,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대한 현탁제인 우주의 이 놀라운 안정성을 그냥 ‘저절로’ 그리된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혹자는 ‘무한히 큰 어떤 힘’이 이 안정성의 비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주 안정화의 비밀이 어디에 있든, 또 무엇이든 간에, 이 안정성에 따른 자연법칙의 항상성(恒常性) 덕분에 나는 일생에 걸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규칙적인 반복을 즐겁게 경험하고 있다. 
 
한편 자연의 법칙 면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나를 포함하여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가끔 실제로 옛날에 비해 요즘의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무식의 소치(所致)겠지만, 옛날의 1시간과 요즘의 1시간의 길이가 똑같다는 것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증명된 사실일까?

각설(却說)하고 우주의 규칙적인 운행 덕분에 다시 가을이 왔다. 때로 하늘이 더할 나위 없이 푸르르고 공기가 선선하다. 단풍이 산을 뒤덮을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하여 바야흐로 놀러 다니기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계절이 좋구나 느낌이 오면 시험 때가 다가왔구나 생각해서 틀림이 없다. 꽃이 피면 1학기 중간고사, 단풍이 들면 2학기 중간고사가 목전에 온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잔인한(?) 일이다. 

전통적으로 각급 학교는 여름과 겨울에 덥거나 추워서 방학을 한다. 그러나 요즘의 학교는 교실마다 냉난방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여름과 겨울에도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제안해 본다. 이제 공부는 여름과 겨울에 하고, 계절이 좋은 봄과 가을에는 마음껏 놀러 다닐 수 있도록 방학을 하면 어떨까? 

최근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농담삼아 이 제안을 말했더니, ‘이걸 공약으로 걸고 대선(大選)에 나가시면 표 좀 나오겠어요’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직장의 휴가도 봄가을에 가도록 하겠다고 하면 더 많은 표가 나올 것이라고 거드는 사람도 있다. 대선? 아무래도 조만간 불출마 선언해야 할까 보다. 

수확물이 풍성하고, 날씨가 좋아 짧게 느껴지는 계절, 특히 저녁달이 아름다운 가을(秋夕)을 맞아 모든 분이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충심(衷心)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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