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타이틀 텍스트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32> 부정부패의 추억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편집부
입력 2021-09-23 12:05 수정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과거에는 온갖 부정부패가 만연했었다. 내가 아는 사례만 하더라도 다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중 몇 가지만을 소개해 본다. 

88올림픽 전에 ‘이경규의 양심 냉장고’란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옥상에서 도로를 관찰하다가 빨강 신호등에서 정지선을 지키는 차를 발견하면 뛰어나가 칭찬을 하며 냉장고를 선물로 주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상당 시간을 관찰해도 아무도 냉장고를 타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며칠 전 TV에 나온 터키 여성이, 터키에서는 노란 신호가 들어오면 차들이 더 빨리 달리는데, 한국에서는 다 멈추더라며 부러워하는 것을 보았다. 아직도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 운전자가 많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나라가 되었다.

또 예전에는 운전면허증 뒤에 5,000원짜리 지폐를 끼워 놓고 다니는 운전자가 많았다. 교통경찰이 차를 세웠을 때 면허증을 제시하면, 그 돈을 빼 가고 교통위반을 눈감아 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관행(?)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런 관행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때에는 시험 중 커닝하는 학생이 많았다. 앞이나 옆 사람의 답안지 보기는 초보적인 커닝이었다. 쪽지에 깨알 같이 메모를 해 와서 답을 적는 사람, 옆 사람과 답안지를 바꿔 답을 쓰는 사람, 심지어 대리시험을 치르는 사람도 있었다.

교수들의 학점 관리도 엉망이었다. 자기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고 A 학점을 준 교수도 있었다. 학점이 불량해서 졸업을 못 하게 된 학생이 읍소(泣訴)하여 거의 모든 교수로부터 A 학점을 받아낸 일도 있었다. 제자 사랑(?)이 지나쳐 제자들에게 약사고시 예상 문제를 누설했다가 서울대 학생들로부터 약사고시 보이콧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대학마저 도덕적 불감증을 앓던 시절이었다. 

동사무소 같은 관공서에 가면 민원인이 너무 많아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소위 급행료를 담당자에게 몰래 주면 내 일을 남보다 먼저 처리해 주곤 하였다. 1979년 일본 유학을 하러 가려고 여권 발급을 신청하였더니 신원조회를 담당하는 경찰이 찾아와 급행료를 받아 간 일도 있었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대기 번호를 받아 순서대로 일을 볼 수 있게 되어, 급행료를 주는 관행은 완벽하게 없어졌다. 관공서의 업무가 자동화되어 민원인이 오랫동안 기다리는 일이 없어진 덕분도 있을 것이지만, 아무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군대의 부패가 심했다. 은사 고 김신근 교수님이 6.25 전쟁 직후 약제 장교로 근무할 때, 하루는 옷에 생기는 이를 방제(防除)하는 DDT라는 약이 한 드럼 왔으니 인수증에 서명하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약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 부대까지 내려오는 도중에 이리저리 다 없어지고 하나도 안 남았다고 하더란다. 

내가 50년 전에 경험한 군대도 크고 작은 부정과 부패가 만연(蔓延)했었다. 무언가 부정한 수를 써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었고, 군대에 가서도 요령을 피워 고된 훈련을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장하라고 나온 무를 주고 막걸리를 받아먹는 사례나, 뇌물을 주고 휴가를 가는 정도는 애교에 가까웠다. 더 상세한 이야기는 국격(國格)의 손상 우려가 있어 생략하기로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참외 서리, 수박 서리, 나무 서리는 무용담의 소재가 되거나 심지어 아름다운 풍습으로 추억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명백한 도둑질로 인식되게 되었다. 

부정과 부패는, 최근의 아프가니스탄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나라를 붕괴시킨다. 나라가 붕괴될 상황에 이르면 부정과 부패는 더욱 기승(氣勝)을 부린다. 부정부패와 붕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지금, 과거에 비하자면 놀랄 정도로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법을 잘 지키는 나라가 되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기적이고,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이제 과거의 도덕적 기준으로 살 생각을 하다가는 언제 법의 신세를 지거나 패가망신을 당할지 모른다. 뉴스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인기기사 더보기 +
인터뷰 더보기 +
"듀피젠트, 아토피 '증상' 조절 넘어 '질병' 조절 위한 새시대 열 것"
[인터뷰] 미래의학연구재단 김기영 투자총괄 “따뜻한 자본이 바이오 생태계 혁신 일으킨다”
세상에 없는 제품 고민에서 ‘키보’를 만들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332> 부정부패의 추억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332> 부정부패의 추억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