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며칠 전 대학 동기 셋이서 점심을 먹는데 한 친구가 나보고 “바쁘세요?’라고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왜 자기 술잔에 술을 따라주지 않느냐, 안 바쁘면 술 좀 따르라는 농담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상대방이 같이 마시거나 최소한 술잔을 채워 주기 바란다. 그러나 나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마시고 싶으면 혼자 마시면 되지 왜 꼭 상대방을 끌어들이려 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당연히 상대방의 술잔이 비었는지 안 비었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술 마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나 같은 사람은 남에 대한 배려(配慮)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며칠 전, 큰아들네가 세 손녀를 데리고 우리집에 왔을 때, 아들이 고기를 굽던 나를 돕다가 살짝 손을 데었다. 그 순간 둘째 손녀가 번개같이 냉장고로 달려가 아이스 팩을 꺼내 아빠 팔에 대주었다. 그 민첩함에 놀란 내가 ”냉장고에 아이스 팩이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지? “하고 물었더니, ‘냉장고에 뭐라도 찬 물건이 있을 것 같아 달려가 문을 열었더니 마침 이게 있길래 가져온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나와 아내는 손녀의 배려심과 기민함에 감동하였다.
유난히 아내에게 잘하는 사람이 있다. 모 대학의 C 교수와 부부 동반 식사를 할 때마다 아내는 그 교수의 배려에 감탄한다. 그는 맛있는 반찬을 우리 앞으로 밀어 놓는다. 혹시 술을 마시게 되면 급히 약국에 가서 간장약을 사다 먹인다.
둘째 손녀와 C 교수처럼 배려심 깊은 성품을 우리말로 ‘싹싹하다’라고 한다. 그 싹싹함은 타고나는 것 같다. 손녀가 셋이 있어도 둘째가 제일 싹싹한 걸 봐도 그렇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성품을 타고나지 못했다. 밥을 먹어도 내가 먹는 데 정신이 팔려 맛있는 반찬을 상대방 앞으로 밀어준 적이 없는 것 같다. 둘러보니 자랄 때 우리 식구들이 다 그다지 싹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싹싹한 남자들 하고 오래 사귀면 가끔 부작용이 생긴다. 특히 부부 동반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더욱 그렇다. 결국 아내로부터 당신도 저 사람한테 좀 배우라는 잔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지나치게 싹싹한 사람하고 여행을 갈 때는 아내와 동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나 같은 사람하고 여행을 하는 남자는 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게 된다. 나보다는 자기 남편이 나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친구에게 득(得)이 되는 사람이다.
나는 성장하면서도 싹싹함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길래 평생 아내가, 자기에게 내가 잘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가 하도 그러길래 한번은 내가 “결혼해서 사는 동안 내가 우연히, 또는 실수로라도 당신한테 잘한 적이 없었느냐?” 물었다. 그랬더니 아내는 단칼에 ‘없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가 막혀서 “그렇다면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처럼 초지일관(初志一貫), 완벽하게 잘못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요즘 아내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큰 손녀로부터 “할아버지, 나한테 하는 절반만 할머니한테 해봐, 그럼 훌륭한 사람이라고 텔레비전에 나오게 될 거야”라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아내를 포함한 타인에게 좀 더 싹싹하고 배려심 있는 언행(言行)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나도 상대방이 그리해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안 그러면 서운해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들 며느리가 ‘어떻게 지내세요’ 안부 전화해주면 기쁘고, 어쩌다 빵이라도 사다 주면 흐뭇해진다. 며칠 전 옥상에서 내려올 때 큰 손녀로부터 ”할아버지, 계단 조심해“소리를 들었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이런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이렇다. 나도 이제 아내로부터 싹싹한 사람이라는 평을 한번 들어 봐야겠다. 친구들로부터 ‘너만 혼자 점수를 따면 우린 어떻하냐’는 말을 들어도 할 수 없다. 친구보다는 아내이니, 앞으로 더 자주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해야겠다.
어차피 달리 살 방도(方途)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