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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감동과 눈물

편집부

기사입력 2021-02-17 10:3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내가 1950년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매달 월사금(月謝金)을 학교 선생님께 내야만 했다.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현금을 만져 보기 어려운 시골 사람들에게는 만만한 돈이 아니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살기가 좀 괜찮아서 돈이 없어 월사금을 기일 내에 내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종종 기일 안에 돈을 내지 못해 선생님에게 불려가곤 했었다. 또 선생님들은 가끔 월사금을 못 낸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해야 했는데 이는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월사금을 받아 오기 위한 것이었다. 선생님도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교장 선생님의 지시라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월사금을 주실 때 꼭 마감날이 다 되어서야 주셨다. ‘좀 일찍 주시면 선생님께 떳떳하고 좋을 텐데’라고 생각을 해도, 일찌감치 주시는 일은 결코 없었다. 어머니가 내 마음을 헤아리셔서 ‘이왕 줄 것 일찍 좀 주라’고 아버지에게 채근을 해도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셨다. 내가 등 너머 들은 소리와 정황을 합쳐 생각해 보면, 당시 아버지는 ‘내는 돈은 일찍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일제 시대와 광복, 그리고 6.25 전쟁 등의 혼란을 겪어 내시면서 어제까지의 제도와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하셨다.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시국에 뭐 급하다고 돈 내기를 서두르느냐?’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강력한 근검절약(勤儉節約)으로 집안 경제를 일으켜 나가시던 아버지에겐 당연한 원칙이었다.   
한편 아내는 충청도 시골에서 성장했는데 부잣집 아이였던 아내도 마지막 날에야 월사금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제권을 독점하신 할아버지께서 돈을 미리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우리 아버지의 경우와는 많이 달랐다. 할아버지는 “네가 부잣집 아이라고 일찌감치 월사금을 내면 가난해서 못 내는 아이들이 선생님의 닥달을 받지 않겠느냐? 그러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터이니 기다렸다가 다른 애들이 다 내거든 그 때 내거라”고 하셨단다. 
나는 이 할아버지의 이 ‘배려’에 큰 감동을 느낀다. 지주(地主)였던 그 분은 가끔 동네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 등을 갖다 주었는데, 갖다 줄 때에는 꼭 남이 보지 않도록, 또 받는 사람도 눈치채지 않도록 한 밤중에 그 집 문 앞에 몰래 놓고 왔다고 한다.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존중하는 배려가 또한 감동적이다. 

할아버지는 또한 매우 지혜로운 분이셨다고 한다. 전쟁이 나서 인민군이 누군가를 잡아가려고 찾아왔을 때 “누굴 찾는다고? 잘 안들려!” 소리를 외쳐 당사자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 준 일도 있다고 한다.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살아남은 당사자가 얼마나 감사했겠는가!
 
그렇게 살아 오신 덕분일 것이다. 공산 치하가 되어 인민군들이 지주들을 죽이려 할 때,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그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다’라고 진정을 해서 죽임을 면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평소의 배려, 존중, 인정에 감동한 사람들이 또 다른 감동을 낳은 것이다.    
이어령 선생께서는 최근 신문 대담을 통해 “예수도, 석가도, 공자도 모두 울었다. 우리는 지금 사랑과 참회의 눈물이 메마른 사막에 살고 있다”라고 하셨다. 이어서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땀’은 가난에서 벗어나 번영을 이룬 산업화의 뜻이고, ‘피’는 억압에서 풀려난 민주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대립과 분열의 ‘피눈물’로 바뀌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자유와 평등을 하나되게 했던 프랑스 혁명 때의 그 프라테르니테(fraternity, 박애), 즉 관용의 ‘눈물 한 방울’이 아닌가 한다”라며 사랑의 눈물 한 방울이 절실히 필요함을 강조하셨다. 
 
배려, 존중, 감동, 사랑, 눈물 등은 다 같은 뿌리의 감정인 것 같다. 이어령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가 이룩한 민주화와 산업화가 더 이상 대립과 분열의 피눈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감동과 눈물’ 외에 다른 치료제는 없어 보인다. 문득 교회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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