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항심(恒心)의 메타포
어, 어, 하고 버벅거리다 보니 정해년 한 해가 사그라져갔다.
그만큼 사건사고가 많았던 2007년이다.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난사사건과 모 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이 햇살 바른 봄밭을 뭉개버리더니, 아프간무장세력에게 집단 피랍된 봉사대원 두 명이 희생되고,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에 덧댄 권력형 비리사건은 한 겨울에 이르도록 세간을 범람하며 현직 국세청장이 구속되는 사건 등으로 퍼져 나갔다.
거기에 한쪽으로 쏠려버린 대선과 태안 앞바다의 기름유출 사고까지……. 자고 깨면 왕왕거리는 그 뉴스들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삶의 근간이 통째로 휘둘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이 위기의식은 약업계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한때 불거져 나왔던 식약청 폐지설이 가라앉자마자 의약품 슈퍼판매 주장이 튕겨져 나왔고,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조작에 일조를 했다는 이유로 관리책임자가 받은 형사처벌의 여진은 원료합성의약품 가격을 대폭 인하시켜 제약유통계까지 뒤흔들었다.
게다가 1.7% 인상으로 합의된 공단과의 수가협상, 의약분업 시행 7년 만에 시행된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과 건강보험재정 지출 절감을 이슈로 시작된 '본인부담 정률제'의 부가가치는, 타는 목마름을 해갈하기에도, 대국민 설득에도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그 음울한 지점에서 푸념 같은 넋두리들이 두런거렸다. 새해가 되면, 정권이 바뀌면 나아질 거야.
그렇게 사그라진 묵은해의 꼬리를 잡고 무자년 새해가 왔다. 발 빠른 유통업계의 '새해 결심 도우미 상품' 마케팅과의 동행이었다. 다이어트, 외국어 학습, 금연, 운동…….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나태함과 나약해져만 가는 의지에 편승한 상품화된 희망 텍스트들이다. 섣달그믐이면 누구나 한번쯤 신년 계획을 세워본다는, 허나 대부분 작심삼일에 그쳐 이내 잊혀져갈 촌음의 각성이라는 전제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새 날을 정성스럽게 열어보겠다는 그 마음가짐, 내일을 위한 투자를 도모해 보려는 시도는 최소한의 자기애(自己愛)다.
정신적인 무위, 나는 누구이며 삶은 또 무어냐고 애써 묻지 않고 뚜벅대던 맹목적인 일상으로부터의 그 주체적이고도 상큼한 탈출!
혹여 그대, 지난 섣달그믐 밤 정성스레 그려둔 그 신년 계획을 다음 기회로 미뤄놓진 않았는가. 삶의 어느 지점에 서 있다한들 자신이 오르고자 하는 저 고매한 가치의 설산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수 있으리요만, 아직 정월이다.
그 밤 무엇이 그대를 설레게 하였는지, 상품화된 희망 텍스트들을 불쏘시개 삼아 부디 사위어가는 초심을 깨워 볼 일이다.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듯 촌음의 각성도 항심(恒心)으로 거듭날 수 있고 손에 닿는 현재는 누구에게나 균등한 동력원이다.
하여, 나는 누구이고 내 일의 본질은 무엇이며 나를 구성원으로 하는 이웃과 약사회 안에서의 내 역할은 무엇인지 그 좌표부터 헤아려 볼 일이다.
2008-01-23 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