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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이는 무늬로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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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05-21 06:40 수정 2008-05-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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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훈(소설가, 서울시약사회 문화복지위원장)

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가 광풍처럼 세간을 휘몰아치고, 산을 깎고 강줄기마저 임의로 바꿔보려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추진여부 역시 하 수상하던 지난 어린이날, 대하소설 『토지』의 저자요 오롯한 생명사상가 박경리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82세. 흙의 품으로 조용히 귀소하는 큰 어른의 영면에, 세상은 옷깃을 여미고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며 애도했다.

문단은 물론 학계‧정계‧방송계‧환경단체들까지 망라하던 숙연한 조문 행렬! 비보를 접하고 달려온 문인들이 빈소에 남긴 경외 어린 만장(輓章)들 중 ‘세상의 밭을 모두 매신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라는 글귀는 서럽도록 비감했다. 권세도 명리도 물리치고, 일 하는 사람만이 산 글을 쓸 수 있노라며 끝내 토지와 교호하는 농부로 살다 남긴 고인의 유작시(遺作詩) 역시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뒤란에서는, 파괴위기에 처한 자연환경이 못내 안타깝다며 ‘대관절 어쩌려고 들 이러는 건가. 어디까지 가야만 사람들의 직성이 풀리는 걸까요… 달리는 기차 앞에 나무막대기 하나의 역할도 못하면서 나는 왜 지치지도 않고 지껄여야 하는지요’ 라고 비탄해마지 않던 고인의 비장한 모습이 전파를 타고 방방곡곡 잔잔한 공명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스스로 경작하는 삶을 고수하며, 환경 문제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근본이 된다고 설파한 고인의 환경론을 굳이 반추하지 않는다 해도 흙은 우리 모두의 요람이요 무덤이다. 돌아가신 어른의 고향 통영처럼, 실용을 앞세운 온갖 편의주의의 산물들과 매 시간 세상이 정해 놓은 그 가치를 좇아 살아가는 부박한 우리들이 종국에는 귀소해야 할 모태! 

  보라! 그 모성(母性)을 도외시한 산업화가 일궈낸 조야한 도시들과, 그 속에서 잉태된 질긴 내성(耐性)을 가진 독종들이 저지른 소름끼치는 악행들이며, 아토피와 비염과 천식으로 대표되는 갖가지 알레르기질환들이며, 고혈압과 당뇨병과 심장병과 안구건조증, 혹은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한 소외감과 우울증 등으로 확산되는 하고많은 문명병들이 자라나온 궤적들을!

 허나, 새삼스레 청신한 눈망울을 하고 그대 사는 도시의 이름을 물어, 혹은 내가 딛고 선 위치를 밝혀 그간의 무심함을 자책한들 무엇 하리. 우린 아직 의로운 큰 어른을 여읜 애상의 오월 속에 머물고, 그리하여 우리와 결코 무연할 수 없는 『김약국의 딸들』을 콕 집어 일독을 권해보기라도 해야 후회 남지 않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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