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 제약·바이오
"R&D 삭감에 제약바이오는 무너졌다" 과학 살릴 다음 대통령은 누구인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차기 대선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대권 주자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면서, 정국은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대선 후보들이 어떤 과학기술 정책과 국가 연구개발(R&D) 전략을 제시할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윤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대폭 단행된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제약바이오 산업과 기초과학 전반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 같은 후퇴를 되돌리고, 미래 성장동력을 다시 구축할 수 있는 리더십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지난해 국가 R&D 예산은 26조5000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전년 대비 약 4조6000억원, 14.7%나 줄었다. 이는 1991년 이후 33년 만에 R&D 예산이 전년보다 감소한 사례다. 특히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과 KAIST, GIST, DGIST, 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의 운영 예산이 일괄 삭감되면서, 연구 현장에서는 과제 중단 사태가 이어졌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25개 출연연의 주요사업비는 전년 대비 평균 25.2% 감축됐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등 주요 기관은 30% 안팎의 예산이 삭감됐다. 일부 기관에서는 박사급 연구자의 과제가 중단되는 등, 연구의 연속성이 심각하게 저해된 것으로 나타났다.제약바이오 산업 역시 이번 R&D 예산 축소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대규모 자본과 오랜 개발 기간이 요구되는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분야다. 특히 기초연구 단계는 단기간 내 수익 창출이 어렵고 실패 가능성도 높다.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 없이는 민간 기업이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산 삭감으로 인해 바이오헬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의 연구 기반은 급격히 위축됐다.코스닥 상장 신약개발 기업 관계자는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기간과 수천억 원 규모의 R&D 자금이 투입되지만, 성공 확률은 10% 안팎에 불과하다"면서 "정부가 초기 위험을 함께 부담하지 않으면 제약바이오 생태계는 유지되기 어렵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일부 기업은 신약 R&D을 중단하거나, 연구 거점을 외국으로 이전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정부는 2025년 R&D 예산을 29조7000억원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4년 대비 약 12% 증가한 수치지만, 2023년 예산인 31조1000억원 규모에는 여전히 못 미쳐 실질적인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증가한 예산 대부분이 반도체, 인공지능(AI) 등에 집중되면서, 제약바이오와 기초 생명과학 분야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상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 일부 기관의 예산이 소폭 회복되긴 했지만, 삭감 이전 수준을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다.제약바이오 산업계와 학계는 정치권이 단기적인 지지율에만 집중함에 따라 국가 R&D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분야는 당장 수치나 성과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인 국가 성장과 글로벌 기술 경쟁력 확보의 핵심 기반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특히 초고령 사회 진입, 감염병 재확산 가능성, 암·치매·희귀질환 등 복합적인 보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제약바이오 분야에 대한 안정적인 예산 지원과 인프라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출연연에 재직 중인 박사후 연구원은 "출연연은 민간이 수익성 문제로 외면하는 미래의 필수적인 기초과제를 수행하는 기관"이라며 "정부가 지원을 줄이고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향후 10년 안에 한국은 기술 주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주요 선진국들은 한국과 달리 R&D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프로그램을 통해 생명과학, 유전체 기반 기술, 바이오경제 등 핵심 분야에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하며 기술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을 통해 바이오경제를 전략적 산업으로 지정하고, 바이오 기술의 자립화와 공급망 내재화를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특히 백신, 유전자 치료, 합성생물학 등 첨단 바이오 분야에 대규모 국가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한국 제약바이오 생태계는 현재 중대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 지난 정부에서 단행된 R&D 예산 감축은 과학기술계 전반에 '정치 무관심'을 실감하게 한 계기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차기 대통령이 어떤 기초과학 및 R&D 정책을 펼칠지가 향후 10년 대한민국의 기술 경쟁력을 좌우할 중대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약 30년간 생명과학 분야의 산학협력에 참여해온 대학교수는 "과학기술과 신약개발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R&D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투자할 준비가 된 대통령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혁진
202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