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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더 정밀하게 찾는다" 아밀로이드 '혈액·PET 진단' 공존시대 개막
최근 치매 진단 분야에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온 기술은 단연 ‘혈액 바이오마커’ 검사다. 간단한 채혈만으로 알츠하이머병의 병리 여부를 판단할 길이 열리면서, 기존 고비용 진단 방식의 대안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 후지레비오(Fujirebio)의 Lumipulse® G pTau217/Aβ1-42 검사 키트가 5월 미국 FDA의 승인을 획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혈액 진단 기술에 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그러나 국내 핵의학과 전문가들은 더 신중한 입장이다. 그들은 “혈액 기반 검사는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감지에 유용한 도구이긴 하지만, 치료 여부 결정이나 임상시험 등록, 확진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아밀로이드 PET 영상 없이는 충분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확진, 치료, 모니터링…아밀로이드 PET이 독보적인 이유아밀로이드 PET 검사는 뇌 속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분포를 직접 시각화하는 영상 진단 기술이다. 단순한 수치 측정이 아닌, Centiloid(센틸로이드)라는 국제 표준화 지표를 통해 아밀로이드 병리의 정도를 0~100점 스케일로 정량화할 수 있어 객관성과 반복 측정이 가능하다. 센틸로이드 0점인 경우 완전히 정상(건강한 젊은 대조군)을 의미하며, 100점은 전형적인 알츠하이머병 환자 평균을 나타낸다.특히 센틸로이드 20~40점 사이의 '경계 영역(gray zone)'에 해당하는 환자들은 혈액 진단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PET 영상은 플라크의 분포 위치와 밀도까지 확인할 수 있어 치료 적합성 판단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실제 FDA가 승인한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 에자이의 ‘Leqembi (레켐비)’와 일라이릴리의 ‘Kisunla(키순라)’는 치료제의 처방을 위해 PET 또는 CSF를 통한 아밀로이드 병리 확인이 치료 개시 전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즉, 치료 여부를 결정하고, 치료 중단 기준을 설정하며, 경과를 추적하는 모니터링의 모든 핵심 영역에서 아밀로이드 PET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핵의학과 전문의 강남세브란스병원 유영훈교수(대한핵의학회회장)는 “혈액검사는 분명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조기 진단을 위한 획기적인 도구"라면서도 "하지만 확진, 치료 결정, 특히 임상시험 참여나 약물 적응증 판단할 길이 PET 영상 없이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혈액검사, 스크리닝으로서의 가치그렇다면 혈액검사는 불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PET 검사 접근이 어려운 1차 진료, 지방 중소병원, 예방적 검진 수요에서 혈액검사는 선별 도구(screening) 목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일본 후지레비오(Fujirebio) 혈액 기반 알츠하이머 검사 Lumipulse® G pTau217/Aβ1-42의 경우, 약 91.7%의 양성 예측도와 97.3%의 음성 예측도를 보였다. 미국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한 선별적 환자 분류 시스템 구축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수치는 치료 결정에 필요한 정밀 진단 수준은 아니다. 여전히 정밀 진단 및 확진을 위해서는 아밀로이드 PET을 찍는 것이 좋다는 게 임상 현장 반응이다.경쟁 아닌 공존과 ‘역할 분담’, 시장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커진다결국 혈액 기반 진단 기술은 PET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 체계 전체를 확장시키는 요소다. 혈액검사를 통해 조기에 위험군을 선별하고, 이후 PET 영상 검사를 통해 확진과 치료로 이어지는 구조는 자연스러운 진단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PET 없이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 치료를 시작할 수는 없으며, 혈액검사 덕분에 조기에 걸러진 환자들이 PET 검사와 치료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치매 진단 시장은 '제로섬 경쟁'이 아닌 ‘역할 분담을 통한 동반 성장’의 구도로 변화하고 있다.치매 진단 시장은 이제 ‘경쟁’보다 ‘확장’의 프레임으로 이해해야 한다. 조기 진단의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혈액 기반 기술은 진입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PET 영상 기술은 치료 결정과 모니터링이라는 핵심 고부가 영역을 담당한다.현재 국내에선 듀켐바이오가 치매 진단용 방사성의약품 시장 9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듀켐바이오 김상우 대표는 “혈액 바이오마커의 도입은 단순히 기술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 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긍정적 신호”라며 “PET 기반 진단의 필요성과 수요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구조적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혁진
202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