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업신문을 통해 본 한국약업 60년 - 1950년대
입력 2014.03.25 14:55 수정 2014.03.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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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54년 약업신문이 창간된 이후 약업계와 호흡을 같이하면서 영광과 오욕의 순간들을 함께했다. 이에 지난 60년 동안 약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핫이슈 및 사건들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편집자 주>

 

◆1950년대

▷ 환도 이후 의약품 도매업 전성기
피난지 부산에서 오히려 세(勢)를 키운 의약품 도매업계는 원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했던 제약업계와 달리 환도 직후부터 영업을 재개했고, 10여년 동안 화려한 꽃을 피웠다.

▷ 완제의약품 수입 전성기와 폐해
산업기반이 취약했던 데다 전란으로 전 국토가 폐허로 변해버린 현실 속에 1950년대 중‧후반까지 제약산업은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완제의약품 수입이 전성기를 구가했다.

▷ 국산화 수입대체 전략 제약업계에 숨통
정부는 1950년대 중반 무렵부터 ‘외제 국산화 대체’를 근간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덕분에 제약산업은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착수되었던 1962년 이전에 ‘수입대체공업’으로 확고한 성장판 위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ICA 외원자금으로 건립된 동아제약 용두동 항생물질 공장의 테이프커팅 장면.


▷ 제약 인프라 구축 젖줄 ‘ICA 外援자금’
해외원조 가운데 ICA 외원자금(外援資金)은 제약업계에 매년 40만 달러 안팎의 규모로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지속적으로 수혈됐다. 원조자금을 수혈받은 제약사들은 구미(歐美)의 최신설비를 도입하고 사세를 크게 확장했고, 제약업의 재기와 부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 제약산업 부흥 디딤돌 항생제 활기
신한합동(新韓合同)이 제 1호로 허가를 취득한 데 이어 계림화학과 태극약품이 차례로 항생물질 제조 허가업체로 이름을 올리면서 1958년경부터 바야흐로 ‘항생물질 붐’이 조성됐다.

▷ 의약품 도매‧수입업소들의 제약업 진출
1950년대 말부터 의약품 도매업계의 위축이 가속화되자 도매상들이 업종을 전환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사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서독 훽스트 제품들을 수입하던 연합약품이 1959년 한독약품으로 제약업에 진출했고, 영진물산도 영진약품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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