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4년 약업신문이 창간된 이후 약업계와 호흡을 같이하면서 영광과 오욕의 순간들을 함께했다. 이에 지난 60년 동안 약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핫이슈 및 사건들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편집자 주>
◆1960년대
▷ 제약업계 레전드 ‘박카스’의 탄생
구호물자를 통해 한국전쟁 이전부터 국내에 대량으로 들어온 덕분에 익숙한 약품이었다 데 주목한 제약업계는 1960년대 초부터 종합비타민제와 복합비타민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 5월 자양강장변질제로 첫선을 보인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정제와 내복액을 거쳐 1963년 8월 ‘박카스 디’로 허가를 취득하면서 “박카스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 불법 합성마약 ‘메사돈 사건’ 충격파
1960년대 초 무렵부터 고개든 후 1965년 들어 중독성을 지닌 정체불명의 약이 출몰하면서 이 문제가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보건당국이 이 주사약을 수거해 보건연구원에 검정을 의뢰했음에도 불구,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공전을 거듭하던 끝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창기(李昌紀) 연구원이 실체가 메사돈(Methadone)임을 규명하면서 마침내 꼬리가 잡혔다.
▷ 불법 항생제 파동으로 도마 오른 제약업
메사돈 파동의 여파가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함량이 부족한 항생제 유통과 관련한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다. 이에 보건당국이 비밀리에 수거‧작업을 진행한 결과 함량이 크게 떨어지는 불량 항생제들이 굴비 엮이듯 적발되어 철퇴가 가해졌다.
▷ 약학대학 신설 반대 움직임 확산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약사의 과잉배출’과 ‘약학교육의 질적 저하’라는 또 다른 현안이 불거졌음에도 불구, 문교부는 대학의 지방분산 정책과 지역 균형발전을 이유로 들면서 1965년 1월 5일 원광약대의 신설을 인가해 약사회의 강력한 반대투쟁을 촉발시켰다.
▷ 수입대체산업으로 힘찬 날갯짓 ‘飛上’
제약산업은 정부가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한 1962년 이전부터 수입대체공업으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했다. 덕분에 1968년 의약품 생산액이 국민총생산(GNP)의 1%를 처음 넘어선 데 이어 이듬해 10억원 고지를 돌파했다.
▷ 외국인 합작투자‧기술제휴 시동
1960년 1월 1일 정부가 ‘외채 도입촉진법’에 제정․공포함에 따라 합작투자 및 기술제휴에 대해 비로소 제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해 제약업계에 기술제휴 붐이 조성됐다.
▷ 特關稅와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의 파장
1964년 6월 정부가 사치성 물품과 불요불급 품목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제정한 임시 특별관세법에 일부 의약품이 부과대상 품목에 포함되어 제약업계와 의약품 수입업계는 버거운 특관세의 부담으로 위축을 면치 못했다. 뒤이어 정부는 1967년 7월 ‘수출입 링크제’를 폐지했다. 정부는 또 무역정책의 기조를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 동아제약 특판 ‘DSC 제도’ 논란
1965년 들어 동아제약이 특수판매 형태의 독자적인 시판기구로 DSC(Dong-A Sales Circle) 제도를 도입했다. 특약점 제도로 채택된 DSC 제도는 의약품 도매업계가 그토록 반대해 왔던 제약기업의 직거래 방식이 크게 확산될 것임을 알리는 전주곡이 됐다.
▷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공포
1969년 들어 부정‧불량식품, 화장품, 무허가 의약업자 등이 횡행함에 따라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부조리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1969년 8월 4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공포했다. 이 법은 대단히 위협적인 특별조치법이었던 까닭에 제약업계를 위축시켰다.
인기기사 | 더보기 + |
1 | 리가켐바이오, 일본 오노약품공업과 ADC 기술이전 계약 |
2 | 브릿지바이오, 특발성 페섬유증 치료제 임상2상 성공 가능성↑ |
3 | HLB 간암신약,미국 FDA 본심사 Class 2 분류...조만간 현장실사 진행 |
4 | '한의사 2년 추가교육 의사대체 가능' 한의계 내부서도 반박 |
5 | "니클로사마이드 기반 범용항바이러스제, 여러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증 혁신 치료법" |
6 | 2024 식약처 국정감사, 키워드는 '원스트라이크'·'의약품 수급'·'오남용' |
7 | 유바이오로직스, 면역증강 물질 ‘EcML’ 제조법 특허 한국·미국 등록 확정 |
8 | 세계 무대 도전장 낸 '바이오 스타트업'…투자자만 100여명 몰려 |
9 | “가을 캠핑 환경, 날씨…Even하지 않아요” 상비약은 필수 |
10 | "유방암, 조기발견 위해 매달 자가검진 추천...비급여 약제 급여화 필요" |
인터뷰 | 더보기 + |
PEOPLE | 더보기 + |
컬쳐/클래시그널 | 더보기 + |
지난 1954년 약업신문이 창간된 이후 약업계와 호흡을 같이하면서 영광과 오욕의 순간들을 함께했다. 이에 지난 60년 동안 약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핫이슈 및 사건들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편집자 주>
◆1960년대
▷ 제약업계 레전드 ‘박카스’의 탄생
구호물자를 통해 한국전쟁 이전부터 국내에 대량으로 들어온 덕분에 익숙한 약품이었다 데 주목한 제약업계는 1960년대 초부터 종합비타민제와 복합비타민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 5월 자양강장변질제로 첫선을 보인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정제와 내복액을 거쳐 1963년 8월 ‘박카스 디’로 허가를 취득하면서 “박카스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 불법 합성마약 ‘메사돈 사건’ 충격파
1960년대 초 무렵부터 고개든 후 1965년 들어 중독성을 지닌 정체불명의 약이 출몰하면서 이 문제가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보건당국이 이 주사약을 수거해 보건연구원에 검정을 의뢰했음에도 불구,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공전을 거듭하던 끝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창기(李昌紀) 연구원이 실체가 메사돈(Methadone)임을 규명하면서 마침내 꼬리가 잡혔다.
▷ 불법 항생제 파동으로 도마 오른 제약업
메사돈 파동의 여파가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함량이 부족한 항생제 유통과 관련한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다. 이에 보건당국이 비밀리에 수거‧작업을 진행한 결과 함량이 크게 떨어지는 불량 항생제들이 굴비 엮이듯 적발되어 철퇴가 가해졌다.
▷ 약학대학 신설 반대 움직임 확산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약사의 과잉배출’과 ‘약학교육의 질적 저하’라는 또 다른 현안이 불거졌음에도 불구, 문교부는 대학의 지방분산 정책과 지역 균형발전을 이유로 들면서 1965년 1월 5일 원광약대의 신설을 인가해 약사회의 강력한 반대투쟁을 촉발시켰다.
▷ 수입대체산업으로 힘찬 날갯짓 ‘飛上’
제약산업은 정부가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한 1962년 이전부터 수입대체공업으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했다. 덕분에 1968년 의약품 생산액이 국민총생산(GNP)의 1%를 처음 넘어선 데 이어 이듬해 10억원 고지를 돌파했다.
▷ 외국인 합작투자‧기술제휴 시동
1960년 1월 1일 정부가 ‘외채 도입촉진법’에 제정․공포함에 따라 합작투자 및 기술제휴에 대해 비로소 제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해 제약업계에 기술제휴 붐이 조성됐다.
▷ 特關稅와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의 파장
1964년 6월 정부가 사치성 물품과 불요불급 품목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제정한 임시 특별관세법에 일부 의약품이 부과대상 품목에 포함되어 제약업계와 의약품 수입업계는 버거운 특관세의 부담으로 위축을 면치 못했다. 뒤이어 정부는 1967년 7월 ‘수출입 링크제’를 폐지했다. 정부는 또 무역정책의 기조를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 동아제약 특판 ‘DSC 제도’ 논란
1965년 들어 동아제약이 특수판매 형태의 독자적인 시판기구로 DSC(Dong-A Sales Circle) 제도를 도입했다. 특약점 제도로 채택된 DSC 제도는 의약품 도매업계가 그토록 반대해 왔던 제약기업의 직거래 방식이 크게 확산될 것임을 알리는 전주곡이 됐다.
▷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공포
1969년 들어 부정‧불량식품, 화장품, 무허가 의약업자 등이 횡행함에 따라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부조리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1969년 8월 4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공포했다. 이 법은 대단히 위협적인 특별조치법이었던 까닭에 제약업계를 위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