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의 말 한 마디가 부른 파장이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최근 박 차관이 기자간담회에서 비대면 진료와 관련, 약 배달도 함께 제도화해야 한다고 밝힌 후 약사 단체들은 연이어 성명서를 발표하고 복지부를 항의 방문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 일각에서는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봉쇄하는 식의 약사회 극단적 대응이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서울시약사회는 16일 “국민 건강과 안전이 달린 보건의료시스템을 기업의 목구멍으로 배달하려는 복지부의 무모한 약 배달 망상에 어처구니가 없다”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앞서 박민수 2차관은 최근 전문언론 간담회 자리에서 “비대면 진료와 관련, 약 배달은 약사회와 논의가 안됐지만, 약 배달이 빠진 비대면 진료는 국민 불편이 가중되며, 모든 비난의 화살이 약사회로 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약사회와 경기도약사회는 지난 14일과 15일 각각 성명서를 발표하며 정부 입장에 전면 반발하고 나섰다. 제대로 된 협상도 없이 국민을 볼모로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
지난 14일에는 약사회가 복지부에 항의 방문해 박민수 차관의 약 배달 관련 발언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분간 복지부와 약 배달 관련 논의를 진행하지 않을 계획”이라는 약사회는 복지부를 향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서울시약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최근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비대면 진료에 약 배달이 필수적이라고 발언한 것은 보건의료정책이 갖고 중요한 가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무지의 소치”라며 “비대면 진료에 대응할 수 있는 약사의 전문적인 약물 중재와 약료행위를 무시한 채, 약 배달이라는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대면원칙과 국민 건강을 훼손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전문가 집단인 약사사회와 어떠한 대화나 논의도 없이 언론을 통해 약 배달 관련 정책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협박하는 모습이 과연 복지부 차관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며 박민수 차관의 자질까지 문제삼았다.
또한 약사회는 “약 배달은 국민 건강과 생명이 달린 문제로 단순히 편의성으로 가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약 배달을 기정사실화해 속전속결로 해결하려는 저의는 플랫폼 업체의 수요 때문”이라며 “비대면 진료로 인한 플랫폼 업체들의 편법적인 의약품 배달 영업 행위가 창궐했음에도 손 놓고 있던 복지부가 기본적인 룰을 세팅하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플랫폼 업체들의 중개 수수료를 수가로 보전해주겠다는 발상 또한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이들 업체의 뱃속을 채워주겠다는 심산과 다를 바 없다”며 “보건의료시스템을 플랫폼 업체 먹잇감으로 내줄 경우 보건의료 공공성은 무너지고, 국민 건강은 기업의 이윤창출 도구로 전락해 국민 의료비 상승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꾸짖었다.
특히 서울시약사회는 지금까지의 약 배달 추진을 위한 시도를 멈추고 원점에서부터 충분한 논의를 거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약사회는 “공적전자처방전 도입과 성분명 처방 의무화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어떠한 논의도 무의미하며 한 발짝도 진전될 수 없다”며 “안전하고 올바른 약물 복용과 관리를 위협하고, 국민 생명과 건강을 무시한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에 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한약사회와 경기도약사회도 각각 지난 14일과 15일 성명서를 내놨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14일 “약 배달에 대해서는 복지부와 어떤 협의도 진행된 바 없다”며 “의료소비자가 민간 플랫폼을 통해 처방과 조제 서비스를 구매함에 있어 관련 비용을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부담하도록 할 것이란 말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비대면 진료 관련 정책으로 국민건강을 민간의 돈벌이 수단으로 운용하려는 것이라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약사회는 △개인정보 보호 원칙 △기관 독립 원칙 △소비자 선택권 보장 원칙 △전자처방전 무결성 원칙 △수익자 부담 원칙 등 5가지 비대면 방식 대안 마련의 원칙과, △현재 플랫폼 기업만을 위한 한시적 고시 즉각 철회 △약사사회 동의 없는 약사법 개정시도 즉각 철회 △보건의료계가 함께 참여하는 비대면진료 법제화 논의 마련 등을 촉구했다.
경기도약사회 역시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복지부를 규탄하면서 △약 배달은 벽오지, 코로나19 확진자나 격리자, 65세 이상 거동불편자로 한정 △비급여 의약품 처방 제외 △국회에 발의된 대체조제 간소화 법안 명문화 △비대면 진료 처방의 국제표준명(INN) 사용 의무화 등 4가지 합의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반면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은 약사회의 강한 반발이 이용자들의 피해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종료되면 전반적인 비대면 진료 서비스가 중단돼 비대면 진료를 이용해오던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대면 진료는 지난 3년간 시행 경험이 있는 사안이며, 복지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현재와 다른 점이 많다. 복지부도 전문가 단체뿐만 아니라 업계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한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