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신산업이 글로벌 수준의 제조 역량을 갖추려면 정부가 3가지 측면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인력, 제조 기술혁신, 미국과 유럽의 GMP 획득을 위한 지원이 그것인데, 한국 백신기업의 제조 역량, 인적수준, 품질 관리가 높은 수준으로 분석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정책연구센터는 지난 24일 발간한 ‘프리미엄 백신 개발전략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인플루엔자 백신을 제외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이 소수에 불과하지만, 프리미엄 백신으로 분류된 4개 질병(폐렴구균, 대상포진, 자궁경부암, 로타바이러스)의 글로벌 백신 파이프라인에서는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는 비록 초기 임상 단계가 대부분이지만, 백신 R&D에 국내 기업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한국 백신산업 전망은 나쁘지 않으며, 빅4로 불리는 글로벌 백신 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백신기업의 제조 역량, 인적 수준, 품질 관리 등이 높은 수준인 것으로 평가됐다. 우리 정부가 K-글로벌 백신허브화 정책을 통해 세계 시장에 백신을 공급하는 핵심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만큼, R&D 등 투자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보고서는 특히 ▲백신을 포함한 바이오의약품 제조인력의 교육과 훈련 지원 ▲제조 기술혁신 지원 ▲미국과 유럽의 GMP 획득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력양성의 경우, 현재 정부는 한국형 K-NIBRT 사업을 중심으로 바이오의약품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부터 연세대학교가 바이오공정인력양성센터를 개소해 프로그램을 운영 중으로, 본격적인 운영은 오는 2024년부터 예정돼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백신 특화교육도 별도로 추진하고 있다. 보고서는 정부 주도의 K-NIBRT 사업이 기업 수요에 맞게 적절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면 국내 백신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두 번째로 제조 기술혁신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 이유는, 프리미엄 백신이 값비싼 장비‧시설이 필요한 만큼 백신 제조시설도 항원 당 5,000만 달러에서 5억 달러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궁경부암 백신 제조의 VLP 플랫폼이나 폐렴구균 백신의 단백질 접합 기술은 매우 복잡한데다 고난도의 공정 기술이 필요하고, 최근 개발되고 있는 mRNA 등 핵산 백신도 생산 공정 난도가 높다는 것. 이에 따라 국내 백신산업이 제조 중심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한 장기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PIPS(Pharma Innovation Programme Singapore)는 정부와 함께 민관협력파트너십(PPP) 형태로 바이오의약품 첨단 제조기술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는 2018년부터 싱가포르 무역산업부가 국가 R&D 비용을 지원하고, GSK‧MSD‧화이자 등 3개 회사가 3,400만 달러를 투자해 시작됐다. 제조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고, 대학이 연구를 진행하며, 기업이 시설을 제공해주는 형태로 국내에서도 이 같은 모델의 추진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필요하다고 보는 정부 지원은 미국과 유럽의 GMP 획득을 위한 지원이다. 현재는 보건복지부가 제약산업 전주기 글로벌 진출 강화 지원사업을 통해 컨설팅 비용 지원 형태로 해외 GMP 인증을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향후 국내 백신 및 바이오기업의 미국과 유럽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와 관련한 포괄적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전문기업의 컨설팅 지원, 해외 GMP 전문가 초빙 및 컨설팅, GMP Mock Inspection 지원, 국내 GMP 인력의 재교육 지원 등과 관련해 정부 지원사업이 확대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편 진흥원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국내 프리미엄 백신 개발을 위해서는 초기 백신 기술 플랫폼 확보와 장기간 연구진행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진흥원에 따르면 프리미엄 백신의 초기 특허일부터 승인까지는 평균 16.3년이 필요하며, 임상시험은 약 6.5년이 걸렸다. 3상 완료부터 허가까지는 약 1.46년이 필요했고, 임상 단계별 비용은 1상이 1,200만 달러, 2상이 8,700만 달러, 3상이 17억 달러가 필요했으며, 평균 18억 달러가 소요됐다.
프리미엄 백신의 제조시설은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등으로, 이들 국가들은 백신 제조기술 수준이 높고, 고급 인력 확보가 용이하며, 현지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또 프리미엄 백신의 시판부터 최대 매출까지는 약 9년이 소요됐으며, 백신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필수예방접종 포함 국가 확대, 백신접종 대상 확대, 특허권 유지를 위한 에버그리닝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진흥원 관계자는 “국내 백신산업 도약을 위해서는 자국 프리미엄 백신 개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간 백신 R&D 협력과 글로벌 임상 역량 강화 등이 있어야 한다”며 “정부는 클러스터 조성과 유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