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 韓 의약품 임상시험 ‘먹구름’…의료기기 수출도 ‘암울’
보건산업진흥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한-러 보건의료 협력 현황 및 전망’ 분석
입력 2023.05.30 06:00 수정 2023.05.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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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선  안쪽 부분이 지난 4월 기준 러시아에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지난해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내 제약산업도 적잖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래 규모가 크지 않던 의약품 수출은 여파가 크지 않지만, 임상시험 분야는 개발 중단이나 임상 국가 변경 등 당초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최근 보건산업브리프 378호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한-러 보건의료 협력 현황 및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의약품 시장은 2021년 기준 282억 달러  규모로, 유럽 내에서 420억 달러를 기록한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또 러시아의 의약품 수입 비중은 56.3%로 높은 편이다. 반면 한국과 러시아간 의약품 교역 규모는 크지 않은 수준.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의약품 수출 규모는 약 11조3642억원(85억 달러)이며, 이 중 대러 수출액은 1억200만 달러 정도로 비중이 매우 낮다. 국내 의약품 기업이 대(對)러시아 수출에 있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받는 영향력은 예상보다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러시아로 의약품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기업은 2020년 기준 녹십자, 한미약품, 한독약품 순인데, 이들 세 기업의  매출에서 대러시아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 1%도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와는 별도로 러시아가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다국적 임상시험을 많이 진행하는 국가인 만큼, 임상시험 분야의 피해는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러시아는 다른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상시험 규제가 덜 하고, 잘 갖춰진 공공의료 인프라에 비해 치료 접근성이 높지 않아 임상시험에 참여하려는 인구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임상의사의 러시아 입국을 어렵게 만들고, 각종 제재의 영향으로 신규 임상시험 추진을 곤란케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3월에는 우리나라 휴메딕스와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보란파마가 결성한 ‘휴온스글로벌 컨소시엄’이 러시아 코로나19 백신인 스푸트니크V와 스푸트니크 라이트의 위탁생산 사업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종근당은 코로나19 치료제 ‘나파벨탄’을 당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을 포함한 8개국 600여명을 대상으로 임상3상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1차적으로 국내에서 임상을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신풍제약 역시 말라리아 치료제 ‘파라맥스’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던 중 지난 2월 러시아에서 콜롬비아로 임상 국가를 변경했다.

의료기기는 의약품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러시아는 의료기기 수입 비율이 약 70%로 상당히 높은 편인데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독일, 미국, 일본에 이어 러시아에 의료기기 수출량이 다섯 번째로 높은 국가이다. 이에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원자재 및 물류비 인상 등으로 의료기기 업계의 70%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러 의료기기 수출액은 전체 의료기기 수출액의 4.1%인 2억7000만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치과용 임플란트의 수출이 가장 많고, 초음파 영상진단기나 방사선 촬영기기 등도 주요 수출 품목에 포함된다. 2021년 기준 러시아는 90% 이상의 치과용 임플란트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중 우리나라 제품 점유율은 39.8%로 전체 1위다. 양국간 교역 축소의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흥원 김광점 보건산업정책연구센터장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사태로 우리나라가 대러 유엔 규탄 결의안에 찬성하면서 양국 관계는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며 “전쟁이 지속되는 한 보건의료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한-러 양국간 교역 및 교류‧협력이 지금보다 강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지난해 양국간 교역액이 감소하는 등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보건의료는 분야 특성상 정치‧외교‧경제 등에 비해 전쟁의 영향을 덜 받는 것 또한 사실”이라며 “전쟁의 향방을 주시하면서 이웃국가인 러시아와의 보건의료 교류와 협력을 지속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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