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글로벌 혁신 신약을 3대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선정하고 2025년까지 1조원을 투입한다는 최근 발표에 대해 몇몇 의문이 든다. 우선 ‘글로벌 혁신 신약’의 정의가 과연 무엇인가. 혁신 신약 개발에 중점적 투입되는 1조원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글로벌 혁신 신약에 부합하는 전임상과 임상 개발 단계의 파이프라인 현황은 어떠한가.
신약 범위에는 저분자화합물, 생물학적제제, 플랫폼 기술, 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차세대 치료접근(모달리티) 등 다양한 유형이 포함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혁신치료제, 희귀의약품, 또는 패스트트랙(신속심사) 지정으로 신속한 임상 개발이 이뤄질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치료제 스펙트럼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LG화학은 자체 개발 역량 외에도 타사 기술 도입과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에 입각한 파트너십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글로벌이라는 범주에 미국, 유럽 등 주요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성공적 상업화를 염두에 둔 신약 개발 전략이 포함된다. 일례로 국내에서 연 매출 1천억을 돌파한 LG화학의 베스트인클래스(계열 내 최고) 항당뇨제 신약 제미글로의 성과가 있다. 하지만 제미글로의 매출 발생 대부분은 국내 시장에 국한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 바라본 제미글로는 DPP-4 억제제 계열 약물의 후발주자로서 아직 그 존재감이 옅은 편이다.
그러면 혁신의 범주에서 후발주자 격인 베스트인클래스는 항상 열외되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 중론이다. 예로 퍼스트인클래스와 초기 베스트인클래스 신약의 허가 후 시점에서 파악된 미충족 치료 수요가 크면 클수록 후발주자가 도모할 수 있는 혁신의 기회는 더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일례로 최근 미국 2상이 완료된 LG화학의 통풍 신약은 경쟁 약물인 페북소스타트(febuxostat)의 단점인 심혈관 질환 등의 부작용 발현 가능성을 낮추고 통풍 원인인 요산 수치를 충분히 감소시키면서 차별화된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1조원 투자 의미는 무엇인가. LG화학은 신약을 포함하는 생명과학 전체 연구개발에 2020년 1740억원을 투입했다. 다시 말하면 1740억원에는 신약 뿐만 아니라 바이오시밀러, 감염질환 백신,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히알루론산 필러와 보툴리눔 톡신 개발도 포함됐다. 1740억원이 소요된 전체 연구개발 포트폴리오에서 글로벌 혁신 신약 가능성이 높은 과제를 선별하고 여기에 향후 5년간 1조원을 중점 투입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생명과학 전체 연구개발 투자액이 증가할 전망으로 연간 3000억까지 도달한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렇듯 글로벌 혁신 신약이라는 다면적이고 복잡한 조건에 부합하는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의 연구개발 파이프라인을 약업닷컴이 분석한 결과 현재 미국, 유럽 등 주요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임상 개발이 진행 중인 혁신 신약 과제는 7개로 대사질환, 암질환, 면역질환의 3대 전략 질환에 집중되고 있다. 회사는 2025년까지 임상 개발 단계의 혁신 신약 과제를 현재 수준에서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의 임상에서 대사질환 영역의 통풍 신약(과제명 LR19074)이 올해 2분기 미국 2상을 완료하면서 개발 레이스의 가장 선두에 위치하고 있다. 이어 면역질환 영역의 궤양성대장염 신약(과제명 LR19019)이 미국 2상 단계에 있다. 1상의 경우 대사질환 2건과 암질환 3건이 있고 이 중 대다수인 4건의 임상 개발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사질환에서는 미국 1상 단계의 경구용 비만 신약(과제명 LR19021)이 FDA 희귀의약품 지정(ODD)을 받았다. 다른 미국 1상은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적응증의 신약(과제명 LR20056)이다. LG화학이 중국 트랜스테라 바이오사이언스의 NASH 치료제 후보물질에 대한 중국, 일본을 제외한 글로벌 독점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2020년 확보하면서 미국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암질환에서는 미국 1상 단계의 두경부암 신약(과제명 LR19127)이 있다. LG화학은 플랫폼 기술 기반의 면역항암제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해 미국 큐바이오파마와 파트너십을 2018년 체결했다. 다른 미국 1상은 고형암 적응증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과제명 LR20011)이다.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국내 바이오테크 기업인 지놈앤컴퍼니가 기존 면역항암제와 병용임상을 위한 임상시험계획(IND)을 FDA에 제출, 2020년 4월 승인을 획득했다. 비소세포폐암(NSCLC) 적응증의 항암 백신 신약(과제명 LR19125)는 프랑스-벨기에 바이오테크 기업 PDC라인파마와의 파트너십으로 유럽 1상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미국 매사추세스주 보스턴에 위치한 LG화학 연구법인 '글로벌 이노베이션 센터'는 4건의 신약 과제를 보다 더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대사질환의 통풍과 비만, 그리고 암질환의 두경부암과 비소세포폐암 신약이 중점적으로 조명되면서 LG화학이 목표하는 2030년 혁신 신약 2개의 유력한 후보군으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 연구법인에 따르면 과제명 LR19074의 저분자화합물 명칭인 LC350189는 잔틴산화효소(XO, xanthine oxidase)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비 퓨린 계열의 신규 통풍 약물이다. LC350189는 후발주자 격인 베스트인클래스 신약이지만 기존 약물의 심혈관계 부작용 이슈가 있고 따라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통풍 치료라는 미충족 치료 수요를 해결한다는 잠재력이 있다. LG화학은 올해 7월 미국 2상 결과 발표에서 1차와 2차 유효성 평가지표를 모두 높은 수준으로 충족시키며 기존 약물인 페북소스타트와 차별화된 신약 개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만 신약으로서 과제명 LR19021의 화합물 명칭인 LB54640은 최초의 경구용 저분자 멜라노코르틴-4 수용체(MC4R) 작용제다. 베스트인클래스 계열이나 FDA의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MC4R 신호경로의 유전자 기능이상은 렙틴 수용체 결핍, 바르데-비들 증후군 및 알스트롬 증후군과 같은 희귀 유전성 비만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B54640은 렙틴 수용체 결핍성 비만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로 당뇨병 없는 건강한 비만 지원자를 대상으로 1상이 진행 중이다.
항암 신약 과제 LR19127의 생물학적제제 명칭인 CUE-101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16형에 의한 악성 종양을 표적으로 하는 종양 특이적 T세포를 체내에서 직접 활성화 및 확장하도록 설계된 융합단백질이다. LG화학 파트너사인 큐바이오파마의 플랫폼 기술 이뮤노-스탯(Immuno-STAT)을 활용한 IL-2 계열의 CUE-100 시리즈 파이프라인에서 면역항암제인 CUE-101가 선두에 위치하고 있다. 두경부암, 자궁경부암 및 생식기암 등 HPV로 인한 암질환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매년 2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이는 중요한 미충족 치료 수요로 여겨지고 있다. 두경부 편평세포암(HNSCC) 환자를 대상으로 오픈 라벨, 다기관 임상1상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항암 신약 과제 LR19125의 생물학적제제 명칭 PDL-lung-101은 프랑스-벨기에 PDC라인파마의 독보적 세포주 기술 'PDC라인'을 활용한 항원특이적 CD8+ T세포 유도제 항암 백신이다. PDC라인에는 비소세포폐암(NSCLC)에서 광범위하게 발현되는 6개 항원에서 유래한 특정 펩타이드가 탑재됐다. 폐암은 환자의 약 60%가 국소 진행성(3b기) 또는 전이성(4기) 암으로 진단되고 평균 8-13개월의 생존기간 등 예후가 좋지 않다. PDC-lung-101은 NSCLC 환자를 대상으로 항암 백신 치료의 단독 또는 항 PD-1 병용요법에서 안전성, 내약성, 면역원성 평가와 유효성과 관련한 초기 데이터 확보를 위한 유럽 1상이 진행 중이다.
아울러 전임상 단계의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 분석에서는 대사질환 영역에서 과제 4건, 암질환에서 과제 3건, 면역질환에서 과제 4건이 파악됐다. 대사질환 과제의 세부 적응증은 당뇨(1건), 비만(2건), NASH(1건)가 있으며 임상 단계에 진입한 과제와의 일관된 개발 전략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이 형성되고 있다.
암질환에서는 앞서 언급한 큐바이오파마의 CUE-100 시리즈인 CUE-102와 CUE-103이 있다. CUE-102는 소아암의 일종인 윌름즈종양(WT-1)을 적응증으로 한다. 동종유래(allogenic)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도 차세대 항암 세포치료제로서 전임상 단계에 있다. 면역질환에서는 퇴행성관절염 적응증이 주를 이루고 있다. 2건의 파트너십을 통해 중간엽줄기세포(MSC) 기반 세포치료제와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 벡터 플랫폼 유전자치료제가 차세대 치료제로서 개발되고 있다.
LG화학은 대사질환, 암질환, 면역질환의 3대 전략 질환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임상 개발 단계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2021년 11개에서 2025년 17개로 확대한다고 전했다. 혁신 신약에 대한 선택과 집중 투자 전략으로 11개 신약의 임상 개발을 가속화하고 전임상 단계의 신약 후보물질 다수를 임상 단계로 신속하게 진입시킨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