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캐나다 앨버타 대학의 매티아스 괴테 박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인 렘데시비르(remdesivir)의 작용 기전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내연기관(engine)'과의 비유로 국내외 제약바이오 연구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렘데시비르의 작용 기전에 대한 가설로 괴테 박사는 일반 가솔린유가 필요한 내연기관에 디젤유를 주입하는 상황과 견줄 수 있다고 전했다. "더 많은 디젤유를 주입하면, 내연기관은 천천히, 더 천천히 가동될 것이다"고 그는 설명했다.
괴테 박사는 '도로 봉쇄(roadblock)'라는 추가적인 가설도 덧붙였다. 그는 "잘못된 디젤유 주입과 함께 도로 봉쇄라는 순탄치 못한 주행 상황으로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상당히 늦게 도착할 것이다"라는 비유적 설명과 함께 렘데시비르의 작용 기전에 대한 가설을 이해하기 쉽게 묘사했다.
렘데시비르는 최근 국내에서 조건부 허가를 득한 셀트리온의 중화항체 치료제 레그단비맙(regdanvimab·브랜드명 렉키로나)과는 전혀 다른 작용 기전을 갖고 있다. 바이러스의 체내 증식 억제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두 치료제가 서로 공유하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접근법에서 차이가 난다.
일례로 지난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셀트리온의 레그단비맙에 대해 "기존 바이러스와 영국 변이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있지만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레그단비맙은 기존에 알려진 변이 6종(S, L, V, G, GH, GR)과 그 이후 등장한 영국 변이에 대한 우수한 효능을 보였으나 남아공 변이에는 효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방대본 권준욱 부본부장의 설명이 있었다.
권 부본부장은 "남아공 및 브라질 변이주에는 'E484K'라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있는데 E484K처럼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할 때 활용되는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결정적 변이가 일어난 경우 미국 (중화)항체 치료제도 효능이 매우 낮았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표적 치료제(targeted therapy)' 성격의 레그단비맙은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의 E484K라는 표적의 기능을 무력화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바이러스가 체내 숙주세포로 침투하면서 바이러스 증식 억제라는 효능이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방대본의 판단이자 결론인 것이다
스파이크 단백질의 침투 기능의 무력화로 바이러스가 인체 숙주세포로 침투하는데 실패한다면 바이러스 증식은 일어날 수 없다. 반대로 바이러스가 숙주세포 침투에 성공한다면 바이러스의 리보핵산(RNA) 유전체 복제를 통한 새로운 개체의 증식이 시작된다. 괴테 박사의 비유적 표현처럼 '내연기관'이 가동되는 시점이다.
렘데시비르는 코로나바이러스 RNA의 유전체를 복제하는 RNA 중합효소(RdRp) 억제제다. RNA-의존성 RNA 중합효소와 렘데시비르가 숙주세포 내 결합하여 이 효소의 활성을 억제함으로써 호흡기 상피세포에서 바이러스의 복제를 막는다는 기전이다.
'프로타이드(ProTide)'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렘데시비르는 전구약물(prodrug)과 뉴클레오티드(nucleotide)의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전구약물은 세포 내로 흡수된 이후 활성을 띄는 형태로 전환되는 약물을 의미한다. 렘데시비르 전구약물은 세포 내에서 활성형인 렘데시비르 뉴클레오티드로 전환되고 이는 아데노신 3인산(ATP)으로 알려진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뉴클레오티드와 유사한 구조다.
바이러스 RNA 합성 과정에서 렘데시비르 뉴클레오티드 '디젤유'는 ATP '가솔린유'와의 경쟁으로 ATP 대신 삽입되고 복제 '내연기관'에 문제를 일으킨다.
렘데시비르는 인체 세포에 침투한 코로나바이러스의 복제 과정을 억제하면서도 특정 변이에 국한되지 않는 치료제로 평가 받고 있다. 일례로 방대본은 렘데시비르의 경우 기존 변이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영국·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모두 억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제조사 길리어드사이언스(길리어드)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20년 회계연도에서 렘데시비르는 28억1100만 달러의 매출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한화로 3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미국 FDA가 지난해 5월 긴급사용승인(EUA)을 결정하고 이어 10월 정식 허가를 결정한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 확진자 중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에 투여되는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으로서 임상적 근거와 수익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