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감방생활이란 드라마를 최근에 보게 되었다. 그 드라마엔 마약 사범으로 교도소에 들어온 한양이란 친구가 나오는데 교도소라는 울타리에서 강제로 마약을 끊게되니 추위나 떨림, 현기증등의 금단 현상등을 보인다. 동료 죄수들은 마약쟁이라고 헤롱이라 부르며 놀리고 한양이는 감기약을 모아 다량 복용하는 방법으로 어설프게 금단현상을 해소하려한다.
9시에 약국 문을 열자마자 마이클이 또 나타났다. 매달 꼭 한 번씩 아침 일찍 나타나서 마이클은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한다. 내 Suboxone 처방전이 도착했냐? 물론 방금 문 열었으니 당연히 아직 안왔다. 그 때부터 마이클은 대기실에 앉아 닥터 오피스에 전화하기 시작한다. 왜 처방전 빨리 안 주냐고. 닥터 오피스의 답은 내 귀에 안 들리지만 뻔하다. 의사가 아직 검토중이라고. 10분마다 나에게 계속 묻는다. 아직이냐고. 그리고 또 닥터 오피스에 전화 독촉. 이러기를 5번 쯤 하면 드디어 처방전이 11시쯤 도착한다. 그리고 마이클은 행복한 표정으로 약을 받아 약국을 떠난다.
마이클은 마약 중독자다. 지금은 그 치료를 받고 있다. Suboxone 은 Buprenorphine과 Naloxone의 복합약으로 마약 중독 치료제이다. Buprenorphine도 다른 마약과 같은 효과를 보이지만 마약 리셉터에 부분적으로만 결합하므로 (Partial agonist) 그 효과나 의존성은 일반 마약보다 훨씬 약하다. Naloxone은 급성 마약 중독일 때 해독제로 쓰인다. 단독으론 Narcan이란 브랜드로 nasal spray로 많이 쓰이는데 이유 불문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면 무상으로 약국에서 주게 되어있다. 2019 년에만 마약으로 인해 7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나라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Suboxone은 이 두 약물의 효과로 서서히 마약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약이다.
워낙 마약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Suboxone에 의한 약한 마약 효과라도 누리고 싶어 빨리 달라고 마이클은 저렇게 아우성인거다. 우리 약국에 Suboxone 복용자들이 꽤 있는데 다들 제 날짜가 되기 몇 일 전 부터 전화로 난리다.약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금단 현상이 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Suboxone은 아무 의사나 처방할 수 없다. 교육과정을 거쳐 별도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보통은 통증 전문 클리닉의 의사들이 이 약물을 취급한다.마이클이나 다른 환자들의 예에서 보듯이 Suboxone에도 중독될 수있다. 하지만 partial agonist라 그 중독의 정도가 미약하고 ceiling effect가 있어 과다복용하더라도 약효나 부작용이 증가하지 않는다.
마이클을 비롯한 약국의 환자들은Suboxone 장기 복용자들이다. 마이클은 6개월이 넘었고 2년 넘게 복용하는 사람도 있다. 대개 복용자의 10%는 Suboxone을 졸업한다는데 우리 약국에는 아직 없다. 당뇨병에 평생 인슐린을 주사하듯 이들은 스스로 극복할 때까지 Suboxone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한양이는 출소하자마자 마약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수감되었다. 그만큼 마약중독이 무서운데 마약을 한 번 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만 한 사람은 없다는 동료죄수의 말이 맞아 떨어졌다. 한영이는 드라마에서 내 학교 후배로 나오던데 내가 진작 알았다면 치료제로 Suboxone을 추천해주고 집콕하라고 했을텐데 아쉽다.
이덕근약사는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한후 동화약품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워싱턴 소재 CVS Pharmacy에서 Chief Pharmacist로 재직중이다. 이 약사는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본지에 '닥터리의 워싱턴 약사일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