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마웅호 (녹십자사장 / 제17회 /1978년도)
의약품 輸出 주도 국가관 투철, 혈액제제 分劃化 성공
입력 2016.07.27 09:50 수정 2016.07.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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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웅호 사장
마웅호 녹십자 사장은 군인 출신으로 한평생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굳은 신념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특수분야 의약품 생산메이커인 녹십자를 설립한 것도 마 사장이 평생을 지켜온 이같은 신념과 의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마 사장은 육군 사관학교(5기)를 졸업한 후 소위로 임관, 65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녹십자의 사훈은 희생·봉사·사랑의 3대 지표이다. 이 지표아래 녹십자는 다른 메이커에서 손을 대지 않은 특수 의약품인 혈액분획제제 제품만을 개발 생산함으로써 영리추구에 연연치 않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제약산업을 유지하겠다는 마웅호 사장의 투철한 신념을 실제 경영을 통해 보여 주었다.

마 사장이 혈액 분획 제제를 전문적으로 개발하기에 착안한 것은 당시만 해도 이 제제가 전액 외국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약업계의 중공업이라 할 수 있는 이 분야를 개척, 국가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마 사장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투철한 군인 정신의 소유자로서 검소한 생활 방식을 들 수 있다. 불우한 사람을 돕기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알았다. 사치와 낭비를 일체 배제하고 불우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다. 혈액협회를 통해 헌혈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낙도 주민의 건강을 위해 낙도 병원선에 의약품과 의료 용구를 기증하기도 했다.

회사 대표로서 사원들에 대한 대우도 공평했다. 균등한 인사정책과 복지향상 대우개선 등으로 기업이 남긴 이익은 모두 종업원의 복지와 불우한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

마 사장이 다른 메이커에서 전혀 외면하고 있는 혈액 분획제제에 손을 댄 것은 창의력에 바탕을 둔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평가이다. 수입에 의존하던 이 제제를 국산화 하고 70년대 중반에 1천만불 이상의 수출고를 올려 약업계 수출랭킹 1위를 차지한 것도 결국 마 사장이 보여준 창의적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능력과 판단이 가져다 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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