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권위주의가 21세기를 대변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화장품 마케팅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화장품 프로모션에 애니메이션과 웹툰이 도입되는가 하면, 개그맨이나 예능인들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SNS에 익숙한 젊은층이 ‘B급 정서’에 열광함에 따라 화장품 마케팅의 중심 이동은 갈수록 뚜렷해질 전망이다.
2014년 ‘의리스킨’ CF로 배우 김보성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이니스프리는 최근 국내 화장품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독보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화산송이 무스특공대’라는 기발한 바이럴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니스프리는 지난 7월 1일 시즌 2 영상을 공개했다. 반응은 역시 뜨거웠다. 이 영상은 공개된지 2주가 채 안 돼 유튜브 조회수 500만건을 돌파했다. 시즌 1 영상의 누적 조회수(약 372만건)를 순식간에 넘어섰다.
유명 웹툰 작가 조석, 이말년과 함께 한 ‘포레스트 포맨’ 광고도 연일 화제다. ‘포레스트 포맨 피톤치드 올인원 에센스’를 발라 동안이 됐지만 회사 사람들 모두 같은 제품을 발라 제자리를 유지한다는 코믹한 내용, 브랜드 페이스북 외에 지하철 스크린도어와 극장 화장실 등에 노출한 마케팅 전략 모두 성공적이었다는 게 광고업계의 평가다. 지난 4월 개그맨 이국주와 함께 한 ‘쿠션 먹방’ 광고도 공개 3일 만에 100만 뷰를 돌파하며 인기를 모았다.
앵그리버드를 등장시킨 에뛰드하우스의 ‘청순거짓 브라우 젤 틴트’, 김성주와 안정환의 축구 중계에서 모티브를 따온 토니모리의 ‘수분부자 촉촉매치’, 허경환이 허대리로 분한 잇츠스킨의 ‘잇츠상사 - 열받은 허대리의 두피를 쿨링시켜주는 쿨라우드 비어 헤드 쿨러’, 연예인을 배제하고 아이디어로 승부한 클리오의 ‘안 말랐어 쿠션’과 라벨영의 ‘우정의 빵꾸싸대기’ 등 흥미 코드를 강조한 바이럴 영상은 최근 들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런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화장품 CF와 바이럴 영상, 화보에 개그맨이나 예능인이 등장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위에서 언급된 사례 외에도 서장훈(더페이스샵), 강균성(이니스프리), 김숙·유재환(에뛰드하우스), 셰프 최현석·미카엘·이원일(잇츠스킨), 장도연·유상무(MAC), 박나래(SK-II), 라미란(에스티로더), 유세윤(A.H.C), 김영철(카오리온), 김대성(아이소이), 오나미(아가타코스메틱) 등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전까지 화장품 광고 모델은 미녀·미남 배우나 아이돌 그룹을 비롯한 가수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화장품 모델은 아름답거나 잘 생긴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가 단발성이 아닌 브랜드를 대표하는 전속모델로 발탁되고, 매출 면에서도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클레어스코리아의 이광수다. 클레어스코리아는 지난해 9월 ‘게리쏭 9컴플렉스 크림’과 ‘클라우드9 크림’에 이광수 얼굴을 새겨 넣은 한정판을 온라인으로 선보였는데, 이 제품들은 출시 3일 만에 3만개가 팔렸다.
최근 SNS가 대중화되면서 탈권위주의와 개인주의 가치관의 확산은 사회 각 영역을 빠르게 변모시키고 있다. 특히 화장품은 어떤 분야보다 트렌드와 유행에 민감한 만큼 이런 변화는 화장품 마케팅 패러다임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한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요즘 젊은층은 예쁘고 멋진 배우가 등장하는 광고보다 인터넷에 떠도는 웃긴 영상에 더 열광한다”며 “화장품의 주요 소비자인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별화된 콘텐츠로 SNS에서 얼만큼 화제를 일으키느냐가 관건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마케팅의 이러한 변화는 소수의 문화로 여겨지던 B급 정서가 대중문화의 대세가 된 상황과 일맥상통한다”면서 “물론 미남·미녀 연예인이 화장품 브랜드의 메인 모델로 활동하는 패턴이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SNS·바이럴 마케팅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그 비중이 나날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