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한·중 외교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가운데, 이 사안이 앞으로 국내 화장품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8일 한미 양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지난 2년간 사드 배치 결정을 둘러싼 국내외 논란에 마침표가 찍힌 셈이다.
한미 양국이 이런 결정을 발표하자 중국과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은 즉각 반발했다. 특히 중국 외교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한국과 미국이 중국을 포함한 관련 국가들의 명확한 반대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선포했다”면서 “이는 각 국가와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노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 대사를 불러 강한 불만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정치권의 찬반 논란, 유력 후보지 지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대중국 수출산업의 타격도 우려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1차적으로 가전과 자동차, 화장품, 관광, 면세점 등이 직격탄에 노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국내 화장품업계는 비관세장벽 강화를 통한 무역 보복과 관광 제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제재, 시장 감시 강화, 반한 감정 확산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메르스에 이어 또 다시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발생했다”면서 “법적인 제재가 없더라도 크든 작든 피해는 생길 수밖에 없다. 일례로 통관 담당자들에게 한국 화장품 수입을 당분간 지연시키라는 지시가 비공식적으로 떨어져도 충분히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화장품협회도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업계 주요 관계자들로 구성된 제도위원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회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전체 산업으로 볼 때 화장품은 교역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며, 제재 조치가 취해지더라도 일부 유통 및 제품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하지만 이번 사태가 한국 화장품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반감으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여 타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반응과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안이 중국과의 통상 마찰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12일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의 대한국 보호무역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2001년 일본이 중국산 대파 등 3개 품목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실시하자 중국이 일본산 자동차와 핸드폰, 에어컨에 대해 100% 특별관세를 부과한 것, 센카쿠 영토분쟁이 심화됐던 2010년과 2012년 9월에는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고 중국 정부가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에 앞장선 것 등을 사례로 들어 중국의 무역 보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 특히 “분명히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만큼 국내 화장품업계의 우려와 시름은 갈수록 깊어질 전망이다.
한 화장품업계 전문가는 “우리는 이미 ‘마늘 파동’을 경험하지 않았나. 2000년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내리자 중국은 곧바로 한국산 폴리에틸렌, 휴대폰 수입을 잠정 중단했다”며 “기업과 정부 모두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중국의 무역 규제 가능성을 사전에 검토하고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FTA를 체결한 만큼 신뢰를 깨뜨리는 무역 보복이나 위협이 있다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