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와 언론에 소문으로 돌던 해외직구 신정책 유예안이 현실화됐다. 5월 25일 중국 해관총서 판공청은 해외직구 관련 업체에 기존 정책 개편안을 내년 5월 11일까지 유예한다고 통보했다.
KOTRA에 따르면 발표 핵심 내용은 △향후 1년간 10개 시범 지역(상하이, 항저우, 닝포, 정저우, 광저우, 선전, 충칭, 톈진, 푸저우, 핑단)에 대해 이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통관 △ 유예 기간은 1년이며, 2017년 5월 11일(11일 포함)부로 종료 △기존 공지된 세제 개편은 변경 없이 4월 8일 개편안대로 시행 등이다.
보다 세부적인 사항은 보세판매(B2B 및 B2C) 전자상거래와 관련해 ①보세판매 전자상거래 상품은 1선인 해관 특수감독관리지대, 혹은 보세물류센터(B형)에 반입 시 통관신고서를 점검하지 않으며, ②‘국경 간 전자상거래 소매수입 상품 리스트(이하 리스트)’ 발표에 따른 화장품, 영유아 조제분유, 의료기기, 특수식품(건강기능식품, 특수의약용 식품 등)에 대한 최초 수입허가증, 등록 혹은 비안(서류신청) 요구 조건도 잠정 중단하며, ③유예 기간 동안 리스트에 따른 화장품, 영유아 조제분유, 의료기계, 특수식품에 대한 최초 수입허가증, 등록 혹은 비안 요구 역시 잠정 중단한다는 것이다.
‘4.8 해외직구 신정책’ 시행 이후 중국에서는 정책 유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특히 최근까지 중국 주요 경제지 및 주요 전자상거래 업체를 중심으로 해외직구 신정책 개편안에 대한 의견이 끊이지 않았다. 업계 및 민간에서 비판 여론이 생겨난 배경은 갑작스러운 정책 시행에 따른 정책 난맥상, 관련 업체 및 소비자 비용 상승, 해외직구 주문량 급감 등이다.
중국 당국의 해외직구 신정책 시행 이후 보세구 주문량 및 거래량은 급감하고 있다. 4월 항저우 국제전자상거래 종합시범구 내 수입물품 물량은 약 138만건으로, 전월 대비 60% 가까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 시행 직후인 4월 8일부터 15일까지 정저우, 선전, 닝보, 항저우 시범구의 수입 물량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0%, 61%, 62%, 65%가 감소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 해외직구 화장품의 70% 이상이 수입되는 정저우 보세물류구의 경우 대한국 수입 물량(4월 기준) 역시 전년 동월 대비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의 피해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항저우 국제전자상거래 종합시범구 입주 기업(총 2,381개사)의 최근 1년 월평균 거래액은 3억5,000만 위안에 육박했으나 4월 들어 거래량은 57%가 줄어들었다. 국제전자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닝보, 선전, 정저우 지역 내 B2C 해외직구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총 주문량도 지난 한 달 각각 62%, 61%, 30%가 감소했다. 화장품 전자상거래업체인 쥐메이유핀의 주문량도 전월 대비 60% 이상 급감했으며, 티몰과 징둥 등 중국 주요 온라인 기업도 입점 업체 매출이 떨어지면서 수수료(입점료) 수입이 감소했다.
해외직구 신정책이 업계 타격으로 이어진 까닭은 소액의 해외직구 상품에 대한 면세 혜택을 폐지하고 소비세와 수입증치세가 포함된 종합세가 적용되면서 이것이 수입단가 상승으로 직결됐기 때문이다.
메든존슨 분유의 경우 세제 개편 이전의 가격은 약 120위안이었으나 세제 개편 이후 종합세 부과로 인해 가격이 약 15위안 인상됐다. 280위안 수준이던 기저귀도 과거에는 면세 혜택을 받았지만 세제 개편 이후 60위안의 세금이 추가되면서 중국 고객들의 불만이 확대됐다. 대부분의 현지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고객유실 방지를 위해 세제개편 이전의 가격을 유지하고 종합세와 택배 비용을 부담했는데, 이로 인해 업체의 손실은 과중되고 있다.
‘4.8 해외직구 신정책’의 주요 내용은 △1회 관세 면제 한도를 2,000위안(기존 1,000위안)으로 조정하고, 1년 면세 한도는 2만 위안으로 설정 △한도 내에서는 증치세와 소비세를 각각 30% 감면하고 상품 관세는 0%로 설정 △그 동안 행우세 50위안 이하 상품에 적용하던 행우세 면제 혜택 취소 등이었다.
규제 강화로 직격탄을 맞은 업체들은 신정책 시행 후 보세창고를 통한 수입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종합세 부과로 인한 단가 인상, 검역으로 인한 시간 소요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한 전자상거래 플랫폼 운영자는 “해외직구 정책 조정으로 인해 우리 플랫폼이 취급하던 95%의 보세수입상품을 수입할 수 없게 돼 최근 재고상품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취급 품목의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2,000위안 이상의 중고가 상품을 수입해온 업체들은 더 이상 감세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수입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식품, 의류, 잡화 등으로 품목 전환했다. 특히 중국 소비자가 많이 찾는 기초화장품, 유아용품 등 생활용품은 11.9%, 색조화장품은 47%의 세율이 부과되면서 구매율이 급감했다.
화장품류에 대한 위생허가가 의무화되면서 색깔별로 각각 허가받아야 하는 립스틱의 경우 사실상 해외직구를 통한 판매가 어려워졌다. 47%의 세율과 국제운송비까지 포함하면 100위안에 구매가 가능하던 한국산 립스틱 가격은 신정책 시행 후 약 147위안으로 약 50% 상승했다.
‘4.8 해외직구 신정책’은 사전 예고 및 의견수렴 과정 없이 시행 하루 전인 4월 7일 발표됨으로써 관련 기업은 수입·통관·검역 등에서 큰 혼선에 빠졌다. 신정책 발표 전후 경과 규정 발표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4월 15일 추가 리스트 발표, 5월 15일 수정 정책 발표 등 지속적인 정책 난맥상을 보이며 기업과 소비자들의 불만은 증폭됐다.
무엇보다 중국 당국은 이번 발표 내용 중 ‘보세판매 전자상거래 모델 신관리감독 방식을 실행하기 위해 해관총서에서 관련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통일적으로 수정한다. 수정 작업이 완료되기 전 각 시범도시 해관은 수동으로 작업을 진행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신정책 시행 후에도 통관 시스템이 지역별로 통일돼 있지 않고 일부에서는 통관 업무를 수작업으로 처리하는 등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자인했다.
해외직구 신정책 유예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문량 및 거래량이 당초 예상보다 큰 폭으로 감소해 기업과 관련 업계의 우려가 확대됐고, 정부 역시 우려하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며 서비스업은 물론 전체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해외직구 타격이 자칫 국내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소비자들의 해외 소비 급증을 중국 내로 유인하기 위한 일련의 ‘소비U턴’ 정책(면세점 확충, 수입관세 인하, 해외직구 장벽 확대 등)은 이번 조치로 당분간 제동이 걸리거나 속도 조정에 들어갈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고 B2B·B2C 시장을 정책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 점, 또 새로운 통관 정책이 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점임을 감안할 때 전반적인 해외직구 정책 방향은 기존과 동일할 것으로 예상된다.
KOTRA 정진우 베이징무역관은 “이번 조치가 폐기나 수정이 아닌 유예인 것은 시장의 적응도 및 수용도를 높인 후 다시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의도로, 1년 후 재시행될 통관 정책에 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면서 “1년간의 유예 기간 동안 해외직구를 진행하는 국내 기업은 세제 변경에 따른 가격대 수정, 제품군 재구성, 온라인 유통채널 심층조사 등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특히 화장품, 조제분유, 건강기능식품 등 중국 해외직구 시장에서 인기가 많지만 수입허가(인증)가 요구됐던 일부 한국 제품군은 유예된 기간 동안 사전 준비를 통한 인증 획득 및 유통망 확보 작업이 필수”라며 “중국 현지에서는 신정책 시행 이후 국내에서의 반응과는 달리 세제에 따른 타격보다 통관 타격이 큰 문제로 부각됐으며, 국내 업체 역시 세율 변경은 불가항력적인 요소임을 감안하고 품질과 경쟁력을 통해 소비자군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